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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Nov 26. 2022

길냥이 메루 일기 (3)

대화가 통하기 시작했다.

별장에 드나든지도 어언 1년이 되었다. 별장 사람들과 거리에서 만나도 눈 맞춤 정도 하는 꽤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만 그 정도 거리를 유지 중이다.

내가 눈을 깜빡여 인사를 하면 저들도 내 이름을 한번 부르고는 눈을 깜빡인다. 신기하다 점점 내가 인간화되는 것인가 저들이 고양이화 되는 것인가.

그래서 점차 대화를 늘려보기로 했다. 아침에 와서 기다리고 앉아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면서 별장 사람이 '메루야 왔어?' 하면 '에웅' 대답해주고, 또 부르면 배고프니까 그만 부르고 밥이나 달라고 '에에에웅'도 하고. 마음에 드는 음식을 가지고 나와서 줄까 말까 거리면 빨리 주라고 '에에에웅' 한번 하고. 난 분명 잔소리 중인 것 같은데 저들은 좋다고 웃는다.

가끔은 밥 먹으러 왔는데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집에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서 별장 사람들이 나타나길래 나도 모르게 고양이 언어로 폭풍 잔소리를 쏟아냈다. '어디 갔다 왔어!! 밥도 안 주고 이 시간에 들어오면 어떻게 해?!! (에에에웅,에에웅,,에에에에웅?!)'.

'어, 미안해 메루! 와 있었어? 배고팠겠다. 밥 줄게!' 이 사람들 뭘까. 내 말을 다 알아듣는다. 그런 날은 거의 쓰리 코스 식으로 밥을 먹는다. 닭가슴살 애피타이저 - 사료 밥 메인디쉬 - 과자 디저트 삼단 콤보로.

  

내가 밥그릇 앞에 앉으면 배고픈 줄 알고, 내가 그냥 널브러져 졸린 눈을 하면 자러 온 줄 알고, 내가 밥을 잘 안 먹으면 헤어볼 토해낼 시기인가 걱정해주고, 여러모로 나의 의사를 전달하며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니 이것도 아주 좋다. 내가 앉아서 쉴 곳도 있고, 얼굴 비추면 밥이 나오고, 따뜻한 눈으로 날 바라봐주는 사람들도 있고 (가끔은 귀찮지만), 나름 꽤 호화로운 길냥생이라 생각한다.


그럼 오늘도 대화를 나누러 가봐야겠다. 에에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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