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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Nov 27. 2022

길냥이 메루 일기 (5)

냥 TV의 매력

어느 날 별장에서 저녁을 먹고 잠시 멍을 때리고 있을 때였다. 어둑어둑 해가 질 때쯤 집 안쪽에서 별장 주인 딸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창문 앞에 베개를 켜켜이 쌓더니 그 위에 네모난 것을 올려두고 나보고 보라고 손 짓을 했다. 뭐길래 그러지 싶어 가까이 다가가 봤다.


작은 네모 안에서 개구리가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그 후에는 오리도 지나다니고 두루미도 지나다니고,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벌레도 그 안에서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네모 안에서 눈앞을 서성이니 신기하고 이게 뭐지 싶어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런 게 중독이라는 걸까 처음에는 거의 한 시간을 한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잡힐 듯 안 잡히는 것들이 걸어 다니니까 신기해서 창문을 눌러봤지만 아무리 만져보고 싶어도 만져지지 않는다. 결국 주인 딸이 네모를 치우고 나서야 나도 정신을 차리고 밤 산책에 나섰다.

 

다음 날은 또 다른 영상이 틀어졌다. 오늘은 새들이 많이 나오는 영상이다. 어제의 벌레들이 많이 나오는 영상만큼은 아니지만 이 것도 매력이 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새들이랑 비슷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흥미가 가지 않는 것도 있다. 푸른 배경에 새도 벌레도 아닌 것들이 헤엄을 치면서 다니는데 태어나선 본 적이 없는 생명체라 별로 흥미가 가진 않는다. 무엇보다 벌레 영상이 최고로 재미있다. 평소에도 나의 최애 장난감들이니깐.


나름 중독을 피하는 방법이 생겼다. 영상을 보다 보면 중간에 사람들이 나와서 벌레들의 움직임이 사라질 때가 있다. 그럼 그때 다음을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뜬다. 이것도 오래 집중해서 보다 보니 허리도 찌뿌둥해지고 눈도 아프다. 비록 만질 수 없어 아쉽지만 나름 하나의 취미생활을 찾은 것 같다. 앞으로도 종종 틀어주면 좋겠다. 가끔 주인장이 들고 나오는 절대 죽지 않는 무서운 쥐 나 주인 딸이 던져주는 내 얼굴만 한 테니스 공보다 훨씬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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