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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iyaru Sep 05. 2023

1년 만에 재수술을 준비하다

수술은 나에게 곧 쉼의 시간이다.
그렇기에 두렵지 않다.



작년 7월 나는 클라이밍을 하다 발목골절 수술을 받게 되었다. 무리한 일상을 보내던 나는 결국 '발목골절'이라는 큰 사고를 겪게 되었다. 난생처음으로 겪었던 개복수술로, 나의 뼈가 부러진 적도 내 몸에 이렇게 큰 흉터가 생긴 것도 처음이었다. 첫 수술이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긍정 of the 긍정'으로 회복하는 시간을 보냈었다. 사실 수술을 하고 나서 몇 달을 거의 누워있다시피 했기 때문에 통증 자체는 크게 체감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한두 달 쉬다 보면 저절로 뼈는 붙을 것이고 나는 이전처럼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의료진들도 나를 절망에 빠트리지 않기 위해 비관적인 이야기들 보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계속해주셨던 것 같다. 뼈만 잘 붙으면 문제없이 걷고 뛸 수 있다는 이야기들. 사실 맞는 이야기이긴 하다. 다만, 예전처럼 "아프지 않고" 걷고 뛸 수만 없을 뿐이다. 수술을 마친 지 1년이 지난 시점까지 나에게는 아직 발목 통증이 있다. 매일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자세를 할 때와 발목을 비틀 때 철심에 살이 찔리는 듯한 통증이 계속해서 있다. 이것이 이번에 내가 다시 수술대에 오르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통깁스를 하며 쓰지 못한 발은 특히 아킬레스건 쪽이 많이 뻑뻑해져서 스쾃 자세처럼 발목을 최대한 연장시키는 자세를 취할 때에는 아직 어색함이 있다. 발목부위의 연골, 근육조직들은 연약해진 상태라 갑작스럽게 체중을 싣게 되거나 뛰기라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오른발이 먼저 나가게 된다.


작년 수술로부터 1년이라는 시간도 어느덧 흘러 나는 15일 뒤, 드디어 철심제거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후 실밥을 제거하고 회복을 하는 데까지 넉넉하게 2주라는 시간을 빼야 했기에 회사의 업무 스케줄에도 어느 정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조직에 가담하고 있는 사회인의 Rule이라는 것이라는 것도 첫 수술에서 알게 되었다. (조직 내에서 이러한 사회인의 Rule을 어기면 눈밖에 나고, 그러면 삶이 피곤해진다.) 그래서 나는 7월이 아닌 9월로 수술시점을 맞추게 되었다. 연차와 정기휴가도 모두 끌어다 써야 했기 때문에 추석이라는 연휴 기간을 일부러 이용한 것도 있다. 그 사이 팀원도 한 명 충원이 되어 자리를 비우면서 더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었다. 


아무래도 수술을 하게 되면 입원도 하고 당분간 제약을 많이 받게 되니 주변 사람들과 약속을 잡으면서 이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수술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도 많이 받게 되었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수술대에 또 오르는 것이 두렵기는 하다. 솔직한 심정으로. 하지만 그 또한 지나갈 일이라고 놓고 봤을 때 나는 수술 그 자체보다는 수술 후 주어질 휴가 같은 휴식의 기간이 기다려진다. 지금까지 피로에 고통받던 내가 못 잤던 잠도 충분히 자고 잘 챙겨 먹고 지낼 수 있는 '허락된 휴식'이 아닌가. 두렵지만 한편으로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작년에 수술대에 오를 때에도 나는 항시 바쁜 아이였기에 이참에 잘 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수술 이후 심경의 변화도 많았기 때문에 그 전의 삶에 비하면 꽤나 내려놓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다시 재수술을 하게 된 지금의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 '바쁜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 정도면 그냥 '바쁠 팔자'를 타고난 게 아닐까 싶다. (합리적 의심)


또한, 나는 이제 나름 수술 경력자(?)라고 첫 수술에 비해 준비성이 강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보험료에 대해 미리 알아보았다는 점이다. 입원 후 퇴원 시에 필요한 서류를 전부 요청하고 받으려면 사전에 필요한 서류정보를 파악해 둘 필요성이 있다. 또한, 나처럼 사고로 인한 첫 수술 이후 180일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받는 철심 제거 수술의 경우 수술비와 입원, 의료비 지원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오래된 실비보험이 그러했다.) 다행스럽게도 회사에서 가입된 실비에서는 수술비 지원은 안되지만, 입원, 의료비 지원 및 입원일당이 지급된다고 하여 이걸 이용하여 수술을 진행할 생각이다. 이런 것도 미리 파악을 해두야 내가 최대 얼마나 입원이 가능할 지에 대해서도 판단이 선다. 또한, 살을 절개하는 개복수술 후 흉터를 제거하기 위해 흉터에 좋은 연고와 흉터밴드를 미리 구입해 두는 치밀함도 선보였다. 지난 수술에서는 흉터를 제대로 케어하지 못해 엄청 큰 지렁이가 생긴 상태이다. 물론, 2차 수술을 할 생각이었기에 다시 한번 수술을 하며 흉터부위를 절개할 생각이었다. 수술 흉터를 제거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제왕절개 후 사용 후 사용하는 흉터밴드와 연고이다. 이 제품들은 실밥을 제거한 이후부터 사용하면 된다고 하는데 여러 개를 구비해 뒀으니 나중에 효과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수술부위가 물에 닿지 않게 도와주는 '발목 깁스 방수커버'라는 걸 구입했다. 이걸 몰라서 예전에는 비닐봉지를 발에 씌우고 그저 테이프로 칭칭 감았는데 세상은 넓고, 기발한 제품들은 많았다. 이런 사전 준비내용은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알려주기도 했고 카페나 블로그 후기를 찾아보며 알게 된 것들이다. (내가 이번에 다치지 않았더라면 평생 몰랐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역시 이런 과정들을 보면 사람은 '닥치면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 당장은 '~가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더라도 막상 그 상황에 닥치면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지금은 회사에 가기 싫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모아놓은 돈을 다 쓰고 쓸 돈이 떨어지면 어떤 식으로든 돈을 구하러 다닐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닥치면 뭐든 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자기 계발 영상을 보다 보면 가끔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의지가 부족해서 뭔가를 결심했다가도 자꾸 포기하고 못하게 된다면 아예 그걸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를 몰아넣어라!라는 말이다. (비슷한 예시로 나는 혼자 있을 때보다 남들이 다 공부하고 있는 독서실이나 도서관에 가면 공부가 더 잘된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는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게 어쩌면 머리로만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해결책이다. 이런 사고방식 하에 있으면 "퇴사하고 싶으면 해!", "그러다 돈 필요해지면 그때 일 해!"라는 말을 시원하게 내뱉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다 안되면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는 마인드. 나도 그래서 수술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이 없는 것 같다. 일단 나 자신부터가 수술을 하고 싶고, 쉬고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고 글도 마음껏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른 고민 걱정은 잠시 미뤄놓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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