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moiyaru Nov 24. 2023

퇴사의 이유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이유'가 있다는 말과 같다.

그만큼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사건이나 과정은 누구에게나 동일하지 않으며,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나에게 그 정도의 '이유'가 된다면, 그 이유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행동'을 해야 한다.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내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그전부터 혼자서 마음속으로 생각해 왔지만, 글로 정리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에는 그 마음이 흐려지기도 하고, 그 이유들이 가물가물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금 그때 그 마음을 먹었던 순간을 또렷이 상기시키고 나면 억울함과 분통함이 명확하게 살아났다. 결론적으로 나는 나를 살리기 위해, 나의 행복을 위해 퇴사를 선택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지금 회사에서 겪었던 혹은 겪고 있는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시와 모멸감'이다.


나는 7년 가까이 한 곳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여기저기 부서를 옮겨 다니다 보니 명확하게 내 업무를 갖지 못하였다. 회사가 체계적이지 못하다 보니 이런저런 일을 다 맡아하게 되었고 그날그날 주어진 일들을 해결하다 보니 나는 이 안에서 나도 내 포지션을 명확하게 만들지 못하였다. 여러 일을 하긴 하는데 정확하게 뭘 하는지는 알 수 없는, 그렇지만 또 없으면 불편한 그런 애매한 위치에 내가 있었다.


이런 위치에 있다 보니 사람들이 시키는 일들도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직무가 명확하지 않은 탓에 여러 업무들이 나에게 흘러왔다. 결국 직무의 불명확함이 나를 고통으로 몰게 된 것이다. 조직에서는 수많은 판단을 내릴 때 '합당한 근거'에서 찾는데 합당한 근거가 되는 '직무'가 없다 보니 흘러들어오는 일들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나에게 그들이 하기 싫은 일들을 떠넘기는 소위말해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일들을 수행하며 나는 무시와 모멸감을 느꼈다. 나는 주체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이 아닌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그저 '하녀'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돈을 벌기 위해 누군가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할 수 있지만 회사 내에서 나의 포지션이 점차 이렇게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이건 아니다'라는 말할 때가 왔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참고 견디던 이 감정이 폭발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내 밑으로 여직원이 들어오면서부터였다. 내가 해오던 일들을 나는 '막내'라는 이유로 참아왔던 부분도 있었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서 내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새롭게 들어온 여직원에게는 그런 일을 일절 시키지 않는 것을 보고 '차별당한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고 애초에 새로운 직원을 뽑는 과정에서 팀원으로서 나에게 공유되는 정보는 일절 없었다.


같은 팀이라는 상사들의 의견과 판단으로만 결정된 사안이며, 그 이후에 일어난 업무 인수인계에 있어서도 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나를 그 정도로 필요 없는 사람으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굉장히 많이 분노했다. 내가 하는 일들이 그 정도로 의미가 없다면 나는 사라지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 준비를 하게 된 것도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가스라이팅'이다. 물론 내가 원해서 하는 업무가 아니다 보니 적극적인 자세로 업무에 임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나 개인의 문제로 치부시키는 말과 시선과 행동을 계속해서 겪다 보니 자연스럽게 업무를 더 소극적으로 처리하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내 의견이 항상 반박당하는 곳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견을 내지 않게 되고 동조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가스라이팅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게 나는 나의 사고방식마저 통제당하다 보니 이것이 내가 하는 게 맞는 일인지 아닌지도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없고, 거거기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뇌를 당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퇴사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짜증이 나는 마음보다는 정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조금 더 여유롭게 바라보게 되었는데 이대로 내가 진짜로 퇴사를 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때의 나는 감정정리가 어느 정도 되어 좋게 좋게 일을 마무리하려는 마음도 갖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퇴사를 하며 이런 감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오히려 내가 '배신자' 또는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며 피해를 입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미리 정리를 하게 되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애초에 잘 안 맞는 회사와 직무를 그저 버틴 것, 빠르게 잘라내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었다. 일이 여기까지 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분명 첫 단추를 잘못 꾀었기 때문이었다. 취준생시절 직무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던 나는, 직장과 직무의 중요성을 그다지 크게 인지하지 못한 채 회사생활을 지속했다. 안 맞으면 그만두고 다른 거 하지 뭐~ 하며 커리어 플랜이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에게도 실수가 있었던 것을 인정한다. 


커리어 플랜은 결국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명확한 목표의식을 갖고 대학을 준비한 것이 아닌 나는 대학교와 전공을 선택하면서도 같은 방식의 실수를 범하였었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전공으로 선택하였고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공부에만 최선을 다했다.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에 나와 활용하고 살릴 지에 대한 분석과 준비가 되지 않아 취업준비를 하면서 애를 먹기도 했었다. 


졸업을 한 지도 거의 1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같은 실수와 고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 스스로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이번의 경험을 통하여 또 하나 배웠다는 생각으로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서면 된다. 그리고 가능하면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나에 대한 탐구를 더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진정으로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것, 그리고 오랜 시간 할 수 있는 것, 잘하는 것을 잘 파악해서 직업으로 삼고 꾸준하게 해 나가는 것이 남아있는 인생을 조금 더 윤택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일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한번 해외 생활을 꿈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