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가현진 Feb 04. 2024

실패해도 괜찮아, 새해니까!

온갖 실패를 반복하는 건 실패 안 하는 사람

연초에 해인사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1월 초에 또 새해다..라며 글을 쓰려 다 미루고 미뤘더니 웁쓰 벌써 2월이라니. 1월은 항상 이렇게 꼭 누군가에게 강탈당한 느낌이다. 어쩜 매번 똑같을까.


싱글땐 새해 첫날이 되면 강남 교보문고에 가곤 했다. 새해 첫날, 실패와 좌절 투성이인 작년과는 다른 삶을 살겠노라 의지 충만해 눈에 불을 켜고 올해의 트렌드, 성공적인 계획 실현과 셀프 브랜딩 노하우, 베스트셀러 자기 계발서 따위를 잔뜩 사 와서 읽곤 했다.


하지만 굳은 결의와 의지는 대체로 3월도 되지 않아 사그라들고 매년 결심과 (이를 지키지 못한) 낙심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힘이 많이 빠졌는지 어느새 새해가 와도 시큰둥, 딱히 가슴속에서 변화에 대한 욕망이 끓어오르지 않는다.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이젠 정말 어떤 작은 성취도 해내지 못할 거란 자조와 함께 가벼운 무기력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맞이한 또 새로운 한 해.


새해인데 그냥 늘어져서 있으려니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뒤가 켕기는 게 찜찜하긴 했다. 결국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꾸역꾸역 짬을 내 2024 스벅 다이어리 한 페이지에 N년째 연초마다 하는 온갖 다짐들, 공허해서 헛웃음 나는 거창한 목표, 버킷리스트나 투두리스트를 올해도 써봤다.


올해 목표

1. 상반기 3킬로 감량

2. 매일 글쓰기+책 읽기 1시간

3. 해부학 및 요가 공부 매일 꾸준히

4. 아이와 잠자리 독서 매일 5권

5. 주말마다 아이와 도서관

6.1일 1 집밥, 떡볶이 줄이기

7. 점심약속 줄이기 (주 1회 이하)

8. 수입의 50% 저축

9. 월 1회 남편과 둘이 외식


이 외에도 쪽팔려서 차마 공개 글에는 쓰지 못한 속되고 천박하기? 짝이 없는 목표도 여럿 있다.


1월이 다 끝난 지금 위 목표 중 지킨 건 하나도 없다. 대충 흉내라도 내는 건 4,5,7 정도. 1은 목표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고 8은 내가 썼지만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9를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서서 약속을 잡아야 하는데 목표를 세워놓고 바로 까먹어서 버렸다. 단둘이 외식에 대한 큰 의지가 없는 건가. ㅋㅋ


무엇보다 큰 문제는 1년을 관통하는 대계획이 없고 5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인생계획도 없다는 거다. 새해니까 그냥 책상머리에 앉아 뭐라도 써보자며 그냥 계획 흉내만 내고 있지 진짜 인생을 개선할, 지킬 의지가 충만한 계획적인 계획이 아닌 거다. 무계획이 계획인 enfp의 계획표답다.


쓱 대충 분석해 봐도 문제 투성이 계획이긴 하지만 아마 나는  앞으로도 새해가 되면 계획 세우는 일을 멈추지 못할 거 같다. 주먹구구에  뒤죽박죽이지만 발전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갈망과 노오력은 아마 죽을 때까지 내려놓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무계획 무대뽀 주제에 삶에 열정만 많은 스타일.





 

그래도 찾아보면 최근 몇 년간 스스로를 칭찬할 만한 부분도 꽤 있다. 자책만 하지 말고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스스로를 칭찬해보자.


우선 지난 1 년간 주 5회 화상영어를 꾸준히 했고(지금은 쉬는 중) 작년에는 연초에 작심 선언을 하고 요가 자격증 취득 후 실제로 티칭을 시작했다.


혹시 나처럼 생각만 많고 실행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선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부터 내라고 말하고 싶다. 내뱉은 말이 쪽팔려서라도 뭐라도 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1월이 되자마자 아침 명상 온라인 모임을 신청했다. 매일아침 7시부터 15분간 줌으로 명상을 하는데 거의 매일 7시 딱 맞춰 눈떠서 가수면 상태에서 미팅 참석, 1월 중순 이후부터는 그마저도 누워서 꿈 결에 들었다.


결국 마지막 날 수업은 늦잠 때문에 결석을 했는데 이쯤이면 안 되는 거 그냥 애쓰지 말고 잠이라도 푹 자는 게 낫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명상 대신 2월부턴 글쓰기 오픈채팅방에 들어가기로 했다. 혼자는 힘든 매일 글쓰기 습관을 여럿이서 독려하며 함께 해나가는 것이다. 작년 말 어느 오픈 채팅방에서 육아 관련 좋은 책을 선정해 한 달간 필사를 하면서 좋았던 기억이 있어 다시 신청해 보았다.


또 연 초에는 절에 다니는 친구와 합천 해인사에 1박 2일로 템플 스테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20대부터 십 수년간 매 연초에 3천 배를 하러 해인사를 방문하는 친구를 따라 올해는 나도 1080배에 도전했다.


아이를 부모님께 맡겨두고 경남 합천까지 내려가 3시간 넘게 걸리는 1080배를 하고, 처음 보는 낯선 보살님들 사이에 껴서 쪽잠을 잤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스님들의 법고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절 마당을 걸으며 나의 하느님께, 또 해인사의 부처님께 올 한 해 잘 보내게 해달라고 정성껏 빌었다.



새해에는 싱잉볼을 배우고 싶다


최근의 나는 지난 수년간 딱히 큰 변화나 발전이 없이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만 같은 내 삶에 조금 지쳐있다. 나이는 먹어 가는데 이제 더 이상 획기적인 기회나 발전은 기대할 수 없겠구나, 그냥 내 인생이 이대로 별 일 없이 천천히 저물어 가겠구나 싶어 내심 위기감도 든다.


그래도 새해이고, 나는 원하든 원치 않든 또 하루하루를 쌓아갈 테니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가만히 있어도 세월에 끌려가는 인생, 의미 있는 삶을 위해 또 소소하게 허공에다 하이킥을 날려보자.


이 시도가 내 삶에 의미가 있으려면 무엇보다 준비성, 실행력, 꾸준함 등에 있어 타고난 타인과의 비교를 하지 않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오랜 시간 꾸준하고 집요하게 한 우물을 파서 성과를 내는 것이 내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인정하고, 대신 잔잔바리로 이것저것 시도하고 노력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거다. 대단한 걸 이뤄내지 못하더라도 온갖 실패를 반복하는 건 실패하지 않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2월, 다이어리 한편에 1월에 쓰려고 했던 한 해 계획을 아직도 다 완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가보자. 유통기한 너무 짧은 결심, 작심삼일도 아닌 작심 하루, 이틀이 모이면 그래도 길게 볼 때 유의미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