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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Sep 18. 2023

군살 공식

 추 훌쩍 지나 어느새 9월 끝 근처. 여름 지나기 전에 써야지, 써야지. 하다 만 것들 투성인 채로 여름을 보냈다. 층간 표시가 없어 더 약 오르던 회사 계단, 오를 때마다 흐르던 땀도 이젠 두어 달 전 게 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도 여름 같다는 투정들이 나를 위로한다.


 지독한 약속과 일로 나를 속여도 곧 되묻는 속 빈 여름이 나를 응시한다. 할 말 없이 일기장을 펴고 맥주캔을 줄 세우고 나서야 손가락이 삐걱거린다. 보지도 않을 사진과 듣지도 않을 음악, 아직도 나는 우연에 움직인다.



 정적, 그런 말이 괜시리 싫다. 허울 좋아 사업가, 사실상 낚시꾼 K의 내력인지. 얼마 전 막회집에서 만난 친구가 내게 건넨 안정적이란 말, 고민 없으면 좋지 뭘, 하고 싶은 거 없으면 됐지 뭘. 숭고한 일의 의미 앞에 솔직함이 짐이 된다.


 솔직함, 그런 말이 이기적이라고 느낄 줄 몰랐다. 나만 솔직하면 됐지, 몇 년 전 새해 다짐으로 썼던 사랑하자는 말이 무색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약삭빠른 잇속이 치고 나간다. 오랫동안 내 양심을 괴롭힌 어릴 적 반찬 욕심이 커서도 변할 줄을 모른다.



 이 쪄도 아무렇지 않다. 무던한 사람이 되는 게 어색하다. 살이 찌고, 머리가 가늘어지고, 얼굴에 주근깨가 어디 새로 생겼는지, 발에 상처가 어디 새로 났는지, 그때그때 따라잡은 지 좀 됐다. 섭취량이 운동량을 넘는다는 간단한 법칙, 그게 군살을 만든다. 느낀 만큼 살아내지 못하는 내가 문득문득 체하는 이유다.


 그래도 일상에 산다. 푸른 들과 하늘을 보면 마음이 놓이고, 막걸리에 편육 놓고 수다를 떨면 근심이 덜하고, 주말 오후 세 시 산책하면 없던 여유도 생긴다. 수정, 수정, 효율, 효율. 깎아내고 지우고 살지만 일상 비탈에 서있긴 하다. 그래, 가끔 사람들 욕도 하면서 산다.



 새삼 본격적으로 살자는 말, 영화 감상평엔 남겨 놓고 생색만 냈다. 살 빼자는 말, L에겐 해 놓고 야금대기만 했다. 좋은 어른으로 살자는 말, 아이만 예뻐하고 투정만 냈다. 여름은 다 갔다는 말, 해야지 하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살쪘다는 말, 운동하겠다 하고 체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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