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좋아했다. 지금은 거의 끊었지만(아주 가끔 집에서 아내와 맥주 한 잔은 한다) 남부럽지(?) 않게 많이 마셨다. 술이라면 자다가고 뛰어나갔고, 술 약속이 있는 날엔 아침부터 두근거렸다. 술 마신 다음 날의 숙취의 고통은 잠시, 야간 근무를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마셨다. 알코올 중독은 아니더라도 알코올 의존증은 분명했다.
나름 술 버릇이 있었는데 그것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대는 것이다. 늦은 밤 가족, 친구, 지인 등 술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기억하지도 못하는 말을 쏟아냈다. 좋은 마음으로 했다고 해도 받는 사람은 여간 곤욕이 아닐 것이다. 잘 시간에 전화 받으니 혀 꼬부라진 말로 어쩌고저쩌고하면 난감함이 이를 데 없다. 그래도 나는 그것이 나름의 애정표현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 전화를 가장 많이 받은 아내에게 따끔하게 혼나고 나서부터는 전화하는 버릇이 조금 사그라들긴 했지만 술을 끊기 전까지는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다. 지금은 물론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그럴 일도 없겠거니와 가끔 나와 같은 버릇을 가진 지인이 술 취해 전화 오면 받는 사람 마음을 알겠기에 그렇기도 하다.
다른 술 버릇을 가진 사람도 많을 것이다. 술자리에서 했던 말을 또 하는 사람, 스킨십이 많아지는 사람, 그냥 자는 사람 등등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형태도 다양하다. 민폐(?)만 끼치지 않는다면 말 그대로 술 버릇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술 마시고 한 행동에 대한 묘한 관대함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넘어서면 곤란하다.
해수욕장 근무를 하면 사실이지 낮보다 밤이 두렵다. 낮은 시야가 확보된다. 근무인원도 많다. 수십 명이 망루나 바다에서 혹시나 모를 사고를 예의주시한다. cp라고 불리는 지휘 통제 사무실에서도 매의 눈으로 감시한다. 매시간 해변을 순찰하며 사고를 대비한다. 하지만 밤은 다르다 인력이 10분의 1로 줄어든다. 저녁 6시 이후로는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감시 인력을 철수시키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밤바다를 차분히 즐긴다. 해변을 걷거나 사진을 찍는다. 아름다운 야경을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는다. 연인들은 모래사장에 나란히 앉아 쏟아지는 별을 본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나온 사람들도 밤바다가 주는 매력을 흠뻑 느낀다. 지켜보는 우리도 마음이 흐뭇할 만큼 예쁜 모습들이다.
문제는 술이다. 깊은 밤이 되면 취객들이 등장한다. 보통 밤 11시에서 새벽 2시쯤 사이라 보면 된다. 틀림없다. 여기저기서 고성이 들린다. 웃고 떠드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취객이다. 어쩌랴 즐거우니 그러는 것을. 하지만 119의 긴장은 여기서부터 고조된다. 그들은 결국 바다로 뛰어들기 때문이다.
놀랍지도 않다. 젊은 혈기와 술기운에, 그리고 자기들만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시커먼 밤바다로 마구 들어간다. 여지없이 신고가 들어온다. 다행인 것은 정말 극소수의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며 지켜보는 시민들은 119나 경찰에 신고를 한다. 당연히 신고를 해야 하며 또한 당연히 우리가 출동한다. UTV라는 해변 순찰용 차량을 타고 사이렌을 울리며 그들에게 다가간다.
취객들은 사이렌 소리도 번쩍이는 경광등을 봐도 반응이 없다. 그저 자기 할 일만 한다. 물에서 허우적거리고 웃고, 소리친다. 가관도 아니다. 확성기로 나오라고 해도 알 수 없는 말만 해댄다. 결국 구조 대원이 들어가 강제로 끄집어 내다. 이쯤 되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난감하다. 살리려고 하는 사람을 거부하는 그들의 외침이 황당하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내가 있는 해운대는 외국 사람도 많다. 술 취해 하는 행동만큼은 글로벌화되어 있나 보다. 겨우 뭍으로 데리고 나오면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변명도 다양하다. 친구의 생일이었다. 오랜만에 바다를 봐서 그랬다. 나는 수영을 잘한다. 등등... 좋게 말해 들으면 다행이지만 소리 지르며 항변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두말도 안 한다. 당장 해변에서 나가라고 나 역시 소리친다. 모래바닥에 당신들이 마시고 던져놓은 소주 병을 들고 당장 나가라고...
씁쓸함만 가지고 다시 들어온다. 간단한 보고서를 쓰고 있노라면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데 술이 원수지라는 말이 슬그머니 입에서 나온다. 즐겁게 마신 술이 되돌릴 수 없는 참변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구구절절 말하기도 지쳤다. 그런 사례를 들기도 입 아프다. 코로나 방역 따윈 가볍게 무시하니 그것도 언급하지 않겠다.
이성을 잃어 하는 행동이 목숨을 잃게 한다. 즐기자고 하는 일이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러지 말자. 자기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행동이다. 바다는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다. 조심하고 도 조심해서 즐겨도 모자라다. 술기운에 물에 들어간다면 용왕님 만나기 딱 좋다. 농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