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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소방관 Jul 24. 2021

있을 때 잘하자

내 곁에 소중한 사람

아침 일찍 출근하며 또 한숨이다. 아침잠이 많은 아내는 아직 한밤중인데 그런 아내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얼마나 곤히 자는지 출근 준비로 이것저것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에도 깨지 않는다. 측은한 마음에 한참을 보다 현관문을 열었다.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찮아야 할텐데...'


일주일 전 아내가 골반이 아프고 몸이 피곤하다며 부인과 진료를 받았다. 다음 날, 증상이 좋지 못하다는 말에 조직 검사를 또 했다. 의사 말인즉슨 '자궁경부암' 검사란다. 아내가 덤덤히 그 말은 나에게 전하는데 나는 숨이 턱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암'이라니... 식사 중에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하는 아내를 앞에 두고 끝내 밥을 다 먹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밤 산책을 나갔는데 딸아이와 앞서 걷는 아내 뒤에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검사 결과가 나쁘면 어떡하지?', '암 진단이라도 받으면?' 나는 온갖 무서운 생각에 걷는 내내 다리가 후들거렸다. 걸으면서 네이버에 쉴 새 없이 검색했다.

'자궁경부암', '자궁경부암 생존율', '자궁경부암 명의' 등등...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러다 혼자 남은 딸아이를 엄마 없이 키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결국 눈물이 앞을 가린다. 갑자기 앞서 걷던 아내가 힐끔 뒤를 돌아보는데 얼른 고개를 돌렸다. 아내가 뭔가 눈치챘는 듯 혀를 끌끌 차며 말한다.


"빨리 좀 걸어!"


난 대꾸도 못하고 눈물을 훔치며 종종걸음으로 아내와 딸아이의 뒤에 바짝 붙었다. 남자 체면이고 뭐고 콧물까지 훌쩍거린다. 산책길을 걷던 주변 사람들이 힐끔거린다.

내가 서른하나, 아내가 스물다섯에 결혼했다. 그전에 4년 연애했으니 아내는 20대를 고스란히 나와 보냈다. 그러고 평생을 나와 더 보내기로 하며 몸과 마음을 나에게 맡겼다. 생면부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부산에 와 나이만 많았지 철없는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15년 가까이 삶을 가족을 위해 고스란히 바쳤다. 신혼 초 아침 뉴스에 소방관이 죽거나 다쳤다는 소식이라도 나오면 그게 나인 줄 알고 울면서 금세 전화했던 아내다.

그럭저럭 살다 보니 어느새 아내도 서른 후반이 되어 몸이 여기저기 아프단다. 하는 일도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라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와 다르게 밤잠이 없고 아침잠이 많은 아내는 아침 늦게까지 원 없이 자보는 게 소원이란다. 열정이라면 열정이고, 욕심이라면 욕심이라 집안 살림이나 자기 일을 얼마나 야무지게 하는지 모른다. 그런 아내가 몸이 아프다고 하니 지난날이 원망스러웠다. 나 자신이 죄스러웠다.


출근해 일을 하며 아내에게 전화했다. 괜히 다른 빙빙 돌려 하다가 병원에서 아직 결과는 안 나왔냐 물으니 되려 타박이다. 별일 아닐 테니 그만 걱정하라고 버럭 한다. 난 멋쩍게 웃으며 '괜찮겠지?'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안절부절못한다. 그놈의 검사 결과는 왜 이리도 오래 걸리는지...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퇴근길에 차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이문세 노래를 듣는다. 이문세의 '사랑은 늘 도망가'라는 노래... 차에서 듣는 노래가 그날따라 얼마나 슬피 들리는지. 나지막하게 따라 부르다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가 꺼이꺼이 운다. 눈물이 닭똥같이 흘러 운전을 못할 지경이었다. 노랫소리와 함께 아내의 어린 모습이 떠올랐다. 연예시절. 아내는 나만 보면 부끄러워 고개도 잘 못 들던 어린 아가씨였다. 오빠 오빠 하며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던 세상모르던 여자아이였다. 그런 예쁜 아내가 암이라도 걸려 무슨 일이라도 난다 싶으니 아내의 인생이 너무 불쌍했다. 흐르는 눈물은 닦다 말았고, 새어 나오는 콧물은 휴지로 풀었다. 참으로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보던 책도 눈에 안 들어오고, 하던 일도 손에 안 잡히던 한 주였다. 결과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려니 또 혼날 거 같아 혼자 속앓이만 한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하니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오늘. 바쁜 오전 시간을 보내고 후배들과 점심을 먹다가 구석에 던져 놓았던 휴대전화를 봤다. 아내가 남긴 카톡 메시지가 바로 눈의 띈다.


"암 아니래! 걱정하지 마!"


나는 먹던 숟가락을 놓고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종교는 없지만 하느님과 부처님, 예수님과 공자님께 감사의 말을 속으로 쉴 새 없이 되뇌었다. 후다닥 밥을 먹고 아내에게 전화했다. 역시 아무 일 없는 듯이 말하는 아내. 그냥 간단한 치료만 받으면 된단다. 그냥 그 말이 끝이다. 그제야 난 모든 게 괜찮아졌음을 느꼈다.

하루가 천년 같았다. 괜한 걱정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아내와의 이별이 주는 고통을 미리 학습했다. 소방관으로 일하며 수많은 죽음과 이별을 목도했음에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생각은 가히 견디기 힘든 괴로움임을 깨달았다. 멘탈이 무너지고 육체는 흐물흐물해졌다. 앞날의 두려움보다 지난날의 후회가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더 잘해줄걸... 더 사랑할걸... 술 좀 엉가이('어지간히'의 경상도 방언) 처먹고 더 잘해줄걸... 이 못난 놈...


술끊고, 글 쓰고 나서 아내가 그렇게 좋아했다. 아내가 좋아하니 나도 좋았다. 여전히 술 생각도 나고 여전히 티격태격하지만 예전과 달라졌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살림이 더 좋아지지도 않았고, 대단히 이룬 일도 없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은 더 좋을 거라 믿는 요즘이다. 그런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니 매일 함께 하는 소중한 가족이 건강히 내 곁에 있어주기 때문이었다. 더 부릴 욕심도 없다. 그냥 내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좋다. 건강하게 말이다.


말만 좋게 했다. 글 쓰고 여기저기 강의하며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감사히 생각하고 잘하라는 말을 수없이 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잘 하고 있는지 이번에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매일 그 자리에 있어줄 거 같은 사랑하는 아내가 어느 날 나를 떠날 수도 있다는 현실을 잠시 느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진 무엇도 아내의 빈자리를 결코 채울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느낀다. 다른 거 없다. 있을 때 잘하자. 그 말뿐이다. 그리고... 건강검진 주기적으로 잘 받자.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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