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소방관 Jul 28. 2021

간절함에서 슬픔으로

두 아이의 죽음

새벽녘 출동은 일상이지만 이 날의 아픔은 길고 컸다. 살길이 구만 리인 어린 학생 둘은 결국 주검으로 돌아왔다. 함께 들어 간 세 아이 중, 한 아이는 살았고, 두 아이는 죽었다. 죽은 아이 중 한 아이는 그나마 일찍 찾았지만 다른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바다는 온전치 못했다. 태양은 작열하는데 파도는 태풍을 몰고 올 듯 거셌다. 수색에 참여한 모든 것을 뭍으로 튕겨냈다. 그 속에 인간이 있기에 우리는 들어가야 했지만 바다는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잔잔할듯하여 몸을 들이면 이내 거세져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물을 쏟았다. 나약한 우리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무력감이 몰려왔고 마음은 타 들어갔다.


멈출 수는 없는 없었다. 나와 나의 후배들은 어딘가 있을 한 아이를 찾아 우리의 목숨을 걸었다. 업이 아닌데도 발 벗고 나선 민간 구조 대원과 또 다른 제복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해경, 경찰 등 수많은 인력이 오직 한 아이의 육신을 다시 건지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모두의 간절함. 그것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위치가 달라졌다. 늘 물속에 있었는데 이젠 물 밖에서 후배들을 바라본다. 나는 집채만 한 파도 속으로 후배들을 밀어 넣었다. 눈물겹게 미안했다. 오래되지 않은 언젠가, 나를 밀어 넣던 나의 선배는 뭍에서 하늘에 기도를 했다고 한다. 죽은 자도 찾고 산자도 돌아오기를 바라며 말이다. 내가 딱 지금 그랬다. 다만, 찾아야 한다는 그것. 나의 목표가 그곳으로 들어가는 나의 후배들의 목표와 같기에 나는 멈출 수도 없었다.


그렇게 서른 시간이 넘어 두 번째 아이를 찾았다. 우리의 간절함을 아이가 알았을까? 아이는 몸을 스스로 물 밖으로 보였다. 동생, 조카를 안듯 우리는 아이를 온몸으로 껴안아 들어 옮겨 마른 모래에 뉘었다. 태양에 달궈진 뜨거운 모래에 차갑게 식은 아이의 몸이 누웠다. 몸은 온전했지만 입술의 청색증 그리고 뿜어져 나오는 입안의 선홍빛 피거품이 그 아이가 죽었음을 짐작케 했다. 


그리고 곧... 아이를 본 가족의 오열은 거센 파도 소리보다 컸다. 누이로 보이는 또 다른 어린 여자의 울음은 찢어지게 슬펐다. 바닷가를 산책하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같이 울었다. 아이를 찾기 위해 온 몸을 던진 구조대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거나 돌렸다. 찾는 이의 간절함이 슬픔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인지상정이고 진심이었다.


깨어나지 못할 아이를 구급차에 실어 보냈다. 가족은 아이를 위해 상을 치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다에 들락거린 모든 것을 깨끗한 물에 씻었다. 소금기가 가셔야 온전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나 기계나 다르지 않다. 간절함과 슬픔의 기억까지 씻어내실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씻고 말렸다. 


다시 일상은 계속된다. 또 같은 사고도 반복된다. 작년 가을 다대포에서 그랬고 지금 해운대에서 그렇다. 중학생이었고 두 명이 죽었으며 바다였다. 죽음이 주는 교훈은 없다. 하루가 지난 오늘도 새벽 바다에 사람들은 들어갔다. 아이가 죽은 똑같은 곳으로. 스무 살 남짓의 세 사람은 우리의 경고에도 웃기만 한다.


지금은 피곤하고 힘들다. 창밖의 해운대는 여전히 뜨겁고 시끄럽다. 죽은 이의 명복을 빈다. 또 산 자의 안전을 기도한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6095596&code=61121211&cp=nv

작가의 이전글 있을 때 잘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