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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소방관 Aug 21. 2021

[소방관이 읽은 시] 누구나 그렇게 서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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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당연한 건 없었다
고된 시간을 견뎌낸 꽃이라 해서
모두가 제때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조금 느리고 서투르면 어때
우리의 서른은, 아직 피어나는 중인 걸
<누구나 그렇게 서른이 된다>, 편채원, 자화상, 2018


서른을 눈앞에 둔 2006년 11월. 저는 소방관이 되고자 마음먹고 노량진이라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소방관 시험공부를 딱히 서울에서 할 이유는 없었지만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고 어디서 주워 들어 그랬던 거 같습니다. 그곳에는 더 많은 기회가 있고, 더 좋은 정보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영등포역에 내려 늦가을 저녁의 찬 바람을 맞으며 바글바글한 인파들 사이를 겨우 비집고 걸어 시장 한 구석에 있는 허름한 고시원에 도착했습니다. 


창은 없고 한평 겨우 넘는 고시원 방에 들어서자 쿰쿰한 냄새가 코끝으로 맡아졌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방 안이 한없이 낯설었습니다. 대충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불편함은 둘째치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불쑥 들이닥칩니다. 6년이나 몸 담았던 군대를 전역하고, 나쁘지 않았던 회사를 잠시 잘 다니다 뭣에 홀려 냅다 그만두고 소방관이 될거라 나서긴 나섰는데 이제 어쩌지라는 생각에 한숨만 길게 나옵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호기롭게 군대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UDT. 지금 들어도 가슴 두근거리는 세 글자. 내가 몸담았던 그곳은 세계 최강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는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대한민국 해군의 특수부대였습니다. 부사관으로서 직업군인의 길을 걷던 제가, 꼬박꼬박 잘 들어오는 월급을 마다하고 군복을 벗을 거라 마음먹은 이유를 지금도 딱히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그냥 그곳이 싫어졌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영화보다 더 영화처럼 살던 그 시절을 굳이 놓아버리려 했던 게 솔직히 아쉬움으로 남기도 합니다.


뭐든 자신 있었습니다. 20대를 고스란히 군인으로 살며 그것도 강한 정신과 육체를 가진 특수부대원으로 있으면서 까짓 거 세상따위 내가 마음먹은 대로 다 만들어버릴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그게 당연한 거라 여겼습니다. 


"야! 내가 누구냐!! 전역하고 딱 1년만 기다려라. 벤츠 타고 다시 찾아올게!!!"


전역하기 전날 동기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호기롭게 소리쳤던 나였습니다. 그까짓 거(?). 돈? 명예? 내가 원하는 대로 다 가질 거라 큰소리쳤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꽃 다운 청춘, 6년의 시간을 나라를 위해 바쳤으니 세상은 나의 말을 들어주리라 믿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된 시간을 겪은 나라면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고 '나'라는 꽃은 그렇게 사회에서 활짝 피어 날줄 알았습니다.


고된 시간을 견뎌낸 꽃이라 해서 
모두가 제때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 말을 그때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디 나뿐이겠습니까? 각자의 삶이, 누구나의 시간이 모두 고되고 어려운 것임을 그대 알았어야 했습니다. 젊음을 고스란히 바쳐 아프고 슬프고 그렇게 힘든 시간을 살아내는 삶이 나 혼자가 아닌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이 어느 순간 뾰로롱 하며 바뀌기 만무하다는 것도 알아야 했습니다. 당장 처한 현실인 군대를 벗어나 또 다른 현실인 사회에 들어가면 마치 세상이 나를 알아줄 거라는 착각만 한 것이었죠. 같은 현실인 것을 모르고 말이죠.


그러니 조급했습니다. 나만 뒤쳐지고 나만 바닥에 있는 거 같이 느껴집니다. 주위를 보니 다들 그렇게 잘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같은 세상에 사는 같은 20대인데, 누구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고 하고, 누구는 주식이 대박 났다고 하고, 또 누구는 금수저 집안이라 살날이 걱정도 없다고 합니다. 이쯤되니 내가 보낸 고된 시간들이 미워지기도 합니다. 나는 그동안 도대체 뭘 하고 살았지? 나의 부모님은 왜 부자가 아닐까? 

느리고 서투른 내 삶이 싫어집니다.


느리고 조금 서투르면 어때


피워내고 살아야 할 앞으로의 시간이 두렵습니다. 호기롭던 마음은 사라지고 세상이 무서워집니다. 남과 나를 비교하니까 그 순간 그렇게 내가 초라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같은 군복을 입고 같은 훈련을 받으며 같이 살고 죽기를 바랐던 군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인생을 볼 때마다 나 보다 더 나아 보이니 참 내 신세가 딱해 보입니다. 그래도. 그렇다 하더라도. 굳게 믿는 하나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내 인생도 활짝 필 거다. 두고 봐라 느리고 서툴더라도 나는 내 갈 길 간다'


가지지 못했고 세상을 대하는 것은 서투르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을 멈추지 않으려 다짐했습니다. 더 고되더라도, 더 걸리더라도 괜찮았습니다. 나의 20대가 그렇게 끝나더라도 괜찮았습니다. 그렇게 마음먹고 시작한 노량진의 시간이었습니다. 29살. 서른을 목전에 둔 내가, 누군가는 활짝 피어있을 시간에 나는 이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더 넘긴 뒤 서른 하고도 한살이 더 먹은 뒤 결국 소방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서른은, 아직 피어나는 중인 걸


그렇습니다. 결국 서른이 되어보니 꽃은 여전히 피어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마치 다 이루어놓았을 거라 굳게 믿었던 그날이 왔는데 '나'라는 꽃은 여전히 고된 시간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세상만사 착착 다 이루어질리야 있겠습니까? 자빠지고 뒤집어지고 그러는 거지요. 서른이 되어 서투른 시간이 계속되더라도 언젠가 만개할 꽃을 생각하면 그때의 고됨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마흔이 넘은 지금에서 돌아보니 별것도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땐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두려움과 설렘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냥 지나가고 거쳐야 하는 숫자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을. 누구나 그렇게 되는 서른이 되는 것을. 억지로 꽃을 피워낼 수 없듯 굳이 서른이 아니더라도 삶은 언젠가 활짝 피어날 거라 이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시를 저자의 책에서 본 것은 아닙니다. 어느 분의 블로그에 읽었는데 못난던 저의 그 시절이 생각나 주절 되어 봅니다. 그런데 참 공감하는 게 그렇습니다. 서른이라는 시간이 오면 '짠'하고 뭔가 이루어질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20대를 보내는 내내 있었거든요. 스무 살부터 이어지는 고됨의 결과가 반드시 서른에 나타날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그러하겠습니까? 서른도 결국 인생의 한 자락일 뿐인걸요. 노래로 치자면 이제 1절의 반도 안 부른 거거든요. 꽃이, 서른이 그렇게 피어난다는 시 속의 말이 그렇게 귀에 콕 박힙니다. 어쩌면 꽃은 마흔에도 오십에도 활짝 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꽃이 제각각이듯 각자의 삶도 다를진대 어디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피워낼 수 있겠습니까?


찬찬히 가더라도 멈추지 않으면 될 일입니다. 삶의 꽃은 서른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피워낼 겁니다. 느리더라도 멈추지 말라고 했던가요? 그게 더 값질 겁니다. 삶은 그렇게 서서히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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