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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소방관 Sep 11. 2021

[에세이] 불안과 공포는 생존에 필요하다

스쿠버 다이빙을 통해 배우는 생존의 감정


두려움은 생존에 필요한 절대적 감정이다

                                                           _한나 아렌트


그렇다. 불안과 공포라는 두려움은 어쩌면 생존에 필요한 절대적 감정일것이다. 어두 컴컴한 밤길을 걸을 때 걸음이 빨라지고, 높은 곳에 오르면 자연스레 몸이 움츠려드는 것이 '생존'이라는 본능적 욕구에 의한 행동이듯 말이다.


같은 두려움인듯 하지만 불안과 공포는 다르다. 불안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면, 공포는 존재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예를 들어, 일어날수도 그렇지도 않을 수 있는 일을 괜히 걱정하는 것이 불안이라면, 자연재해같은 실체적 현상을 걱정하는 것은 공포에 가깝다.


그렇다면 불안과 공포를 감내하면서까지 굳이 한 모금 숨조차 쉴 수 없는 시커먼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스쿠버 다이빙이라는 레저가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뭘까? 아름답고 몽환적인 바다속 풍경을 즐기고 대자연이 주는 평온함을 느끼기 위해서라고만 하기에는 위험도가 자못 크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감히 판단해 보건데 앞서 언급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바다라는 곳, 즉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자연에게 배우기 위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불완전한 신체구조는 물위에 떠 있기도, 그 속으로 들어가기도 벅차기만 한데, 그것을 극복하고자 만든 많은 장비들과 기술들을 배워 나가는 일련의 과정. 그것이 바로 알수 없는 심연에 대한 '불안' 그리고 끝없이 보이는 수평선에 몸을 던져야 하는 '공포'를 이겨내게 한다.


이러한 두려움(불안과 공포)은 매우 보수적인 다이빙 교육체계를 만들어 왔다.(그 과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가 있었음은 인정하자) 결국 수많은 스쿠버 다이빙 교육단체 교육철학의 정점은 물속의 아름다움을 즐기자도 아니고 바다를 보호하자도 아니며 오로지 '안전'이라는 것에 귀결된다.


가령 많은 활동성 다이빙 강사들은 매일 물속을 들락거리는데 그들의 지상과제는 단연코 교육생의 안전일것이다. 그래서 불안과 공포에 직면해 있는 나약한(?) 교육생들에게 그러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이론적 지식과 기술적 경험을 전수한다. 바다속이 주는 즐거움은 그런다음에야 오롯이 다이버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다. 주절주절 이런 글을 쓰는 이유가 말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평생 불안을 겪고 이겨내야 할 운명이다. 정도가 다를뿐이지 하루에도 인간의 머릿속은 온통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차 있다.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다만 불안과 공포를 스스로 알아차리고 받아들일 수가 있느냐의 나름의 트레이닝이 필요할 뿐이다.

'스쿠버 다이빙'은 그러한 불안을 즐거움으로 변환시키는 일이다. 평범함을 뛰어넘는 익스트림이라는 말이 다이빙에 적용되는 이유가 그렇다. 숨을 쉬어야 하는 본능적 행위를 제한당하는 이 기가막힌(?) 레저가 주는 짜릿함이 결국 여기에 있다.

성취감과 즐거움은 불안의 크기만큼 비례할테니 이 또한 스쿠버 다이빙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또 수십 억 인류중에 몇 퍼센트도 되지 않는 '다이버'에 속한다는 자부심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스쿠버 강사님들을 나는 존경한다. 그들이 끊임없이, 어쩌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까지 해가며 이루어가는 다이빙의 세계 한 귀퉁에 나를 서 있게 해준 그들에게 감사한다.




나 역시 스쿠버 강사 트레이너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업(業)을 삼고 있는 분들에 비하면 나의 활동이 조족지혈임을 안다. 다만 사람 목숨 살리고자 일하는 업(業)이 내 일이기에 스쿠버라는 레저가 내 일에서 결코 멀리 있지 않음 역시 누구보다 잘 안다.

찾아오는 소방 동료들만 가끔 교육을 하며 보이지 않는 불안과 공포를 마음과 몸에 자연스레 스며들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소방관들이 뜨거운 불속에 들어가는 일과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는 일을 하며 양극단을 만나는 접점에는 역시 불안과 공포가 있다. 두 가지 모두 극복해야할 일이다.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후배들에게 꾸준히 이 부분을 강조한다. 바다가 주는 두려움을 이기려 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그것을 내것으로 만드는 기술과 경험을 축적해라라고.

부디 많은 다이버들이 더 생겨나길 바란다. 이글을 읽는 분들이 다이버라면 더 안전하게 다이빙을 즐기길 바라겠고 다이버가 아닌분들이라면 꼭 한번 근처에 있는 스쿠버 강사님들을 찾아보길 바란다. 그렇게 당신의 삶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배우기를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그리고 지금도 밤낮으로 많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성취감으로 승화시키며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스쿠버 다이빙 강사님들이 건승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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