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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소방관 Aug 31. 2021

[소방관이 읽은 시] 산양

#좋은시#시읽기#글쓰기#이건청시인#좋은글#글쓰는소방관

아버지 등 뒤에 벼랑이 보인다. 
아니, 아버지는 안 보이고 벼랑만 보인다
요즘엔 선연히 보인다
옛날, 나는 아버지가 산인 줄 알았다


차령산맥이거나
낭림산맥인 줄 알았다
장대한 능선들 모두가 아버지인 줄 알았다
그때 나는 생각했었다
푸른 이끼를 스쳐간 그 산의 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닿는 것이라고
수평선에 해가 뜨고 하늘도 열리는 것이라고


그때 나는 뒷짐 지고 아버지 뒤를 따라갔었다
아버지가 아들인 내가 밟아야 할 비탈들을 앞장서 가시면서
 당신 몸으로 끌어 안아 들이고 있는 걸 몰랐다
아들의 비탈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까마득한 벼랑으로 쫓기고 계신 걸 나는 몰랐었다
나 이제 늙은 짐승 되어 힘겨운 벼랑에 서서 뒤돌아보니 
뒷짐 지고 내 뒤를 따르는 낯익은 얼굴 하나 보인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쫓기고 쫓겨 까마득한
벼랑으로 접어드는 내 뒤에 또 한 마리 산양이 보인다
겨우겨우 벼랑 하나 발
딛고 선 내 뒤를 따르는 초식 동물 한 마리가 보인다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 이건청, 서정시학, 2007  


어릴적 살던 곳에 큰 산불이 났습니다. 우리 동네가 아닌 꽤 먼 다른 동네의 산불이었는데 화세(火勢)가 얼마나 거셌는지 동네 어귀에 나가 보면 먼 산 너머로 벌건 불길이 보일 정도였죠. 그쪽 산 아래에는 '직지사'라는 꽤 유명한 절이 있었는데 산불도 산불이었지만 천년고찰이 불에 다 탈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산불이 나기 시작한 날부터 보이지가 않습니다. 불은 사흘을 넘게 타다가 겨우 진압이 되었는데 그때까지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죠.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아버지가 집에 들어왔습니다. 까만 재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로 말입니다. 매캐한 불 냄새를 풍기며 집안에 들어온 아버지는 대청마루에 쓰러지듯 드러누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며칠 밤낮 불을 끄고 왔던 것이었습니다. '의용소방대'. 정식 소방관은 아니지만 지역에서 자원한 사람들의 자치 소방조직입니다. 아버지는 지역 의용소방대원이었습니다. 이때의 일이 내가 소방관이 되는 계기가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오늘의 시와 맞닿아 있어 오랜 이야기를 꺼내보았습니다.




아버지 등 뒤에 벼랑이 보인다. 
아니, 아버지는 안 보이고 벼랑만 보인다
요즘엔 선연히 보인다
옛날, 나는 아버지가 산인 줄 알았다


산불이 났던 그날 밤. 산불도 산불이지만 아버지가 없는 집이 무서웠습니다. 밤이면 벌건 산불이 동네를 덮칠 것 같았거든요. 평소에도 아버지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둘째 아들이었던 저였습니다. 어머니와 부부싸움이라도 하는 날에는 아버지는 '이 놈 데리고 나가 살란다!'라며 나를 어깨에 들쳐 매고 집 밖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한 살위 형도 있는데 굳이 저를요. 하지만 그런 아버지가 저는 좋았습니다. 든든했습니다. 산 같았습니다. 산 뿐이겠습니까? 


초등학교 운동회 때 학부모 달리기나 힘자랑이라도 하면 죄다 아버지가 1등을 했습니다. 달리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뛰어가는 모습 뒤에 흙먼지가 날릴 정도였으니까요. 커가면서 느낀 건, 그런 아버지를 저는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아버지의 모습을 말입니다. 




그때 나는 뒷짐 지고 아버지 뒤를 따라갔었다
아버지가 아들인 내가 밟아야 할 비탈들을 앞장서 가시면서
 당신 몸으로 끌어 안아 들이고 있는 걸 몰랐다
아들의 비탈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아버지 같은 남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내 앞에서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해줄게', '걱정하지 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안된다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난 뒷짐 지고 아버지 뒤에만 서 있으면 됐습니다. 가는 길이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도 아버지가 앞에 있어 두렵지 않았습니다. 설령 가다가 힘들더라도 아버지가 나를 들어 올려 끌어주었습니다. 당신의 몸이 벼랑으로 몰리는 것도 모른 채 말입니다.


까마득한 벼랑으로 쫓기고 계신 걸 나는 몰랐었다
나 이제 늙은 짐승 되어 힘겨운 벼랑에 서서 뒤돌아보니 
뒷짐 지고 내 뒤를 따르는 낯익은 얼굴 하나 보인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쫓기고 쫓겨 까마득한
벼랑으로 접어드는 내 뒤에 또 한 마리 산양이 보인다
겨우겨우 벼랑 하나 발
딛고 선 내 뒤를 따르는 초식 동물 한 마리가 보인다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본 것도 아니고 불현듯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가느다란 팔다리를 보자면 가슴이 아려옵니다. 쌀가마니 너끈히 짊어지고 뛰어다니시던 모습이 저는 아직도 선한데 말입니다. 아버지의 굽은 등을 보자면 한숨이 나옵니다. 당신 덩치만 한 나무 밑동을 도끼로 찍어내리시던 모습도 선한데 말입니다. 모습만 보자면 지금 아버지는 벼랑끝에 서 있는 듯 느껴집니다. 조금만 더 물러서면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벼랑에 선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늙은 짐승처럼 아버지는 아슬아슬하게 까마득한 벼랑 위에 어느 순간 서 있었습니다.


나이 든 내가 더 나이 든 아버지를 벼랑 끝으로 몰아버린 거 같아 웁니다. 아버지 허리춤 붙잡고 졸졸 따라다니던 내가 이제 내 앞에 아버지, 벼랑을 등 진 아버지를 보고 슬퍼합니다. 그런 나를 아버지는 되려 아프게 바라봅니다. 더는 나를 들어 올릴 수 없어 당신이 더 미안해합니다. 당신의 등 뒤의 벼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내가 가야 할 비탈길을 걱정합니다. 여전히 '걱정하지 마'라고 말합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저는 또 웁니다.




여간해서는 울지 않는데... 이 시를 읽으며 몇 번을 훌쩍거렸습니다. 굳이 시의 내용이 아니더라도 지금 제 나이에 와서 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슬프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예전만 못하니 그런가 봅니다. 몸이 그렇고, 눈빛이 그렇습니다. 마음도 괜시리 서글프기만 합니다. 괜찮다 하시지만 분명 지금의 아버지는 벼랑에 서 있습니다. 


죽고 사는 거 매일같이 보고 사는 119 구조대원 아들입니다만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제 아비를 보는 마음이 어디 쉽겠습니까? 편히 모셔도 쉬원찮을텐데 여전히 아버지 뒤에 졸졸 따라가기만 합니다. 못할 짓입니다. 늙어 죽는 것이 삼라만상의 당연한 이치일지라도 내 아버지만큼은 비켜갔으면 하는 생각이 옹졸하게도 듭니다. 


다 같지는 않더라도 대개는 그럴 겁니다. 산 같은 아버지의 모습만 기억되다가 어느 순간 늙어버린 산을 마주하면 모든 게 자식 탓 인양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습니다. 산비탈길 올라가는 산양처럼 평생을 아버지 뒤를 따라가는 자식들이 대개는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내 뒤를 따른 산양도 이제야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습니다. 아. 나도 아버지구나. 나도 산이었구나. 내 아버지 늙는 동안 나도 나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미칩니다. 그렇겠죠. 이런 게 어디 가르쳐서 될 일입니까? 내가 산을 보고 자랐으니 나도 내 자식 앞에서는 산이 되는 자연스러운 거였습니다. 벼랑이 가까이 오는 줄도 모르고 나 따르는 새끼 건사하느라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아버지가 그랬듯 나도 그랬습니다. 


그러고 보니 너무 섧다 할 일도 아닙니다. 아버지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산이 되어보았구나라고 생각하니 아버지한테 죄스러운 마음이 약간은 상쇄됩디다. 내가 설령 벼랑으로 가더라도 그 길이 아비의 길이라면 기꺼이 그러겠노라는 마음도 듭니다. 세상 모든 아버지가, 세상 모든 자식이 그렇게 오르고 벼랑으로 갑니다. 그래도 괜찮은 것은 아비와 자식이기에 그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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