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소방관 Aug 29. 2021

[소방관이 읽은 시] 문어의 꿈

#글쓰기#문어의꿈#안예은#나는문어#생각의힘#좋은글#좋은시

나는 문어 꿈을 꾸는 문어
꿈속에서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어
나는 문어 잠을 자는 문어
잠에 드는 순간 여행이 시작되는 거야
높은 산에 올라가면 나는 초록색 문어
장미 꽃밭 숨어들면 나는 빨간색 문어
횡단보도 건너가면 나는 줄무늬 문어
밤하늘을 날아가면 나는
오색찬란한 문어가 되는 거
야 아아아 아아 야 아아아 아아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 애애애 애애 야 아아아 아아
그래서 나는 매일 꿈을 꿔 이곳은 참 우울해
<문어의 꿈>, 안예은


"오늘은 무슨 생각했어?"

제가 딸아이에게 매일 묻는 말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여자 아이에게 묻는 말 치고는 제가 생각해도 뜬금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시작은 딸아이였습니다. 

"아빠, 왜 하늘은 파란색이야?"

"아빠, 왜 엄마는 매일 화를 내?"

"아빠, 만두(키우는 고양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다들 이런 경험 있으시죠? 아이들의 질문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엉뚱하고 뜬금없지만 기발하고 신기합니다. 대답하기 참 힘들더라고요. 얼른 휴대전화를 화면을 열어 검색을 해서 딱 맞아떨어지는 대답을 찾기도 합니다만 그런 대답은 찾기도 힘들뿐더러 아마 아이가 바라는 답도 아닐 거란 생각에 이내 포기하고 혼자 아무 말이나 답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의 생각이 궁금해졌습니다. 


당최 이 아이는 하루 종일 어떤 생각을 할까? 그래서 제가 위에 있는 말을 묻기 시작했어요. 내가 묻는 질문에 딸아이는 살짝 당황하더니 이내 하루 중에 가장 많이 했던 아니면 가장 재미있었던 생각을 말해주고는 했습니다. 대부분이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생각이었지만 그냥 들어주고 서로 깔깔거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딸아이가 입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는 문어 꿈을 꾸는 문어
꿈속에서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어


초등학교에서 가르쳐주는 동요인 줄 알았습니다. 노래의 멜로디가 콩짝, 콩짝거리는 것이 딱 아이들 노래 같았거든요. 간단한 멜로디에 붙여진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아이는 친절하게 '안예은'이라는 가수의 노래고 자기는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한다며 친절하게 설명을 합니다. 노랫 말이 재미있어 한참을 듣고 또 가사를 들여다봤습니다. 문어가 꿈을 꾼다는 말부터가 재미있습니다. 꿈속에서 무엇이든 된다니 아이들 좋아할 만한 말이겠지요?


노랫말을 한번 볼게요. 꿈을 꾸려니 잠을 자야겠고 잠을 자니 꿈을 꿉니다. 그렇게 문어는 꿈속에서의 여행을 시작합니다. 녹음(綠陰)이 우거진 산에 오르니 문어의 몸뚱이가 초록색으로 변했다네요. 장미 꽃밭을 어슬렁거리면 문어의 반질반질한 몸이 빨간 장밋빛으로 물들기도 합니다. 가장 재미있는 노랫말은 그다음입니다. 까만 아스팔트에 그려진 흰색 횡단보도를 건널 땐 줄무늬 문어가 된다고 하니 이 부분에서는 혼자 피식 웃습니다. 그러다 결국엔 밤하늘을 날아버리네요. 휘향 찬란한 달빛, 별빛에 휩싸인 문어는 오색찬란해지기까지 합니다. 


화룡점정이 이어집니다. 가수의 특이한 창법에 '야아 아아아아', '해애 애애애애'라고 하는 후렴구가 나오면 흥겨움이 절정에 달합니다. 고백하건대 이 부분은 차에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딸아이와 신나게 따라 해야 제맛입니다. 끝내 여기서 나도 문어에 빙의됩니다. 


그러다 반전이 일어납니다.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 애애애 애애 야 아아아 아아
그래서 나는 매일 꿈을 꿔 이곳은 참 우울해


문어가 잠에서 깼나 봅니다. 네. 그렇죠. 문어가 언감생심 어딜 산에 갑니까? 장미꽃밭은 상상도 못 할 일이고요. 도로가의 횡단보도를 걷다간 큰일 날 일이지요. 또 밤하늘을 난다는 것은 무슨 황당한 생각이겠는지요? 문어가 있을 곳은 어둡고 차갑고 무서운 바닷속인걸요. 노래의 멜로디도 이 부분에서는 슬그머니 느려지고 작아집니다. 폴짝폴짝 뛰며 신나던 가락이 마지막엔 문어의 기분 따라 피아노 소리만 띵띵 거리며 들립니다. 덩달아 제 기분도... 아. 참 거. 씁쓸한 입맛만 다십니다.




가사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니 고것 참 볼수록 남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문어가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았으면 그런 꿈을 꿀까 생각되더라고요. 밤마다 자기가 바라던 모습을 생각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요런건 지금 나 사는 세상에 빗대어도 좋을 듯합니다. 결국 내 이야기라는 생각에 미쳐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문어처럼 상상하는 일들이 나도 많은데 사는 현실에 눈을 뜨면 참 김 빠지는 게 사실이거든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요목조목 따지고자 함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꿈꾸는 무언가가 있는 것일진대 현실이 이래저래 해서 안 되는 것도 분명히 있지요.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세상 일이 어찌 다 생각대로 되겠습니까? 다만 생각의 힘은 한번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현실이야 어떻든 생각은 멈추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무엇이 되고픈, 무언가를 이루고픈 생각은 결국 힘든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내 아이는 하늘을 나는 생각을 가끔 한다는데 제가 그랬어요. 계속 생각 하다 보면 꼭 이루어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물리적으로 하늘을 나는 것이 가능하리라 여겨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무엇이 되었든 자기 생각을 마음껏 머릿속에 펼쳐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면 응당 그리 해야 안 되겠냐는 뜻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너무나 현실적인 것만 좇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엉뚱하고 불가능한 상상일지라도 하다 하다 보면 끝자락에서는 비슷한 무엇이더라도 얻어걸려 현실로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봅니다. 인류가 지금의 풍요를 얻기까지 누군가의 생각과 상상이 마구 펼쳐졌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가 그런 거 아닐까요?  요리조리 생각하다 보니 문뜩 무엇 하나가 우연히 자기에게로 나타나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비록 현실은 깊은 바닷속처럼 어둡고 차갑더라도 물 밖 세상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에게 묻습니다. 

"오늘은 무슨 생각을 했어?"

문어도 사람도 언젠가 꿈을 이루길 바라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소방관이 읽은 시] 약한 생명들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