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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걍 Sep 02. 2020

예절 교육


1.

상냥한 손가락에는 얼룩이 더러 묻는다

잊지 말렴 얘야, 세상의 모든 아픔은 여기서 시작된단다

외출한 후에는 손을 씻고 고요한 낯을 하거라

너는 종종 뺨을 맞고 속죄 기도를 하게 될 거야

양 손으로 물잔을 머리 위에 끼얹으며 외치거라

내가 죄인이오 내가 죄인이오

일러 주던 사람에겐 그림자가 없었다


2.

나는 물을 삼키고 숨을 쉰다

이미 죽은 사람이어서 숨 쉴 줄 모르는 것처럼

발톱 아래로 새로운 발톱이 자라나 벗겨진다

가슴을 도닥이던 목소리는 모자이크화처럼 쪼개졌고

먼 나라의 말처럼 소란한 잠속에 빠지길 기다린다

말을 한 게 언제였더라

그사람은 그사람, 그렇게 되었다


3.

나는 슬프고 싶을 땐 언제든 슬퍼질 수 있는 재주를 지녔어

엄마는 자면서도 한숨을 쉬었고

그건 아마 습관적인 것이었을 테지만

그만 베개를 들어 꿈을 꾸었을 얼굴을 덮기로 해

착한 아이는 잠꼬대를 하지 않는다지만

이젠 필요 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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