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갈걍 Mar 18. 2023

D에게

고마움을 담아, D에게




D에게...



 D야 안녕! 잘 지내니? 세상에, 첫 안부 인사를 적으며 진심으로 소식이 궁금해진 건 오랜만이야. 연락이 끊긴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거든너를 친구라 칭하면서도 네가 아직 날 친구라 생각할는지 궁금하구나. 그랬으면 좋겠다. 난 여전히 너를 친구라고 생각하거든.


 일상에서 널 잊고 지냈던 시간이 다수였을지라도 가끔은 네 생각이 났어. 너와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몇 있는데 하나같이 날 즐겁게 하는 기억뿐이라서 말이야. 특히 내가 한창 페이스북을 할 적에 너는 내게 숱한 칭찬을 퍼부어줬었잖아. 그중에서도 네가 날 음악에 비유해줬던 거 기억나니? 네가 나를 음악으로 말하자면 쇼팽의 에올리언 하프라고 했잖아. 니체에 따르면 아름다움에는 두 가지 분류가 있는데 그중 나는 아폴론적인 것이라고 했지.


 그 댓글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난 마구 웃었어. 별난 칭찬이라고 생각하면서, 요즘 말로 주접에 가까운 네 말들이 쑥스럽지만 기뻤단다. 이제 와 말하지만 네가 나를 에올리언 하프에 비유해준 그 말이 여태껏 다른 사람이 나를 표현해 준 말 중에 가장 좋았어. 그래서인지 그 뒤로 종종 그 음악이 생각나더라. 쇼팽 에튀드, 네가 꼭 들어 보라기에 들었더니 처음엔 분명 취향이 아니었거든?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곡을 찾아 듣고 있는 내가 있었어.


 나는 그 곡을 들으면서 느긋하고 햇살이 만만한 이미지를 떠올려. 플레어가 반짝이는, 가슴이 부드럽게 울렁일 것 같은 이미지 말이야. 그건 내가 로망으로 품고 있는 이미지들 중 하나였는데, 그런 이미지를 내게 덧씌워줘서 고마워. 어느덧 쇼팽의 음률은 내 귀에 편안해져서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클래식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에올리언 하프라고 답할 테야.


 고작 말 한마디가 타인에게 깊게 남아 그를 기쁘게 하고 취향까지 만들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야. 그런데 막상 그때는 네 말이 멋지다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네가 멋지다고 네게 직접 표현하지 못한 게 아쉬워. 그땐 그냥 받아넘겼던 네 칭찬이 날이 갈수록 고마워질수록, 그때 네가 내게 전해준 마음이 점점 더 귀하게 느껴져.


 우리가 소식이 끊긴 몇 년 사이 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전보다 능숙해졌고, 좋은 건 좋다고 표현해야함을 배웠거든. 네게도 선물 같은 말들을 끌어모아 전해주고 싶은데, 어떤 말을 해야 내가 받은 기쁨을 네게 갚을 수 있을까? 


 널 생각하면 떠오르는 우리의 깔깔거림이 벌써 십 년 전의 것이 되어버렸기에,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진 아직 모르겠어. 그 사이 내가 변했듯 너도 조금은 변했을 테지. 그래도 나는 많이 변하지 않은 같은데 너도 그럴까? 시답잖은 말을 뱉어대며 깔깔댈 만큼은 철이 없을까? 이상한 유행어를 따라 하고, 입꼬리가 시원하게 벌어지며 밝게 웃고, 단발이 어울리던 그 모습이 남아 있을까?


 네가 그 모습을 갖추고 있다면 반가울 테고, 변한 부분이 있다면 네 새로움이 즐거울 거야. 모르는 게 많다는 건 그만큼 가까워질 거리가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네게 말을 선물하기 위해서는 너를 다시 알아갈 시간이 필요할 테지. 그러니까 우린 또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언젠가 우리 한 번 만나자. 살아만 있다면 만날 수 있겠지, 판데믹 이후론 이 말을 진심으로 쓰곤 해. 너도, 네 주변도 무탈하길.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만날 수 있을 우리를 위해서.


 다음 연락은 내가 먼저 할게.



2021년 4월 15일

여전히 너를 친구라 생각하는 이가.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이 궁금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