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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정 Jun 09. 2023

2. 시작된 동상이몽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VS 집사와 살아주고 있습니다

시작된 동상이몽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2)


샤샤의 등장은 우리 가족 모두의 일상에 부드러운 파장을 일으켰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4kg 남짓의 이 작은 생명체는 집안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가족들의 몸냄새를 맡고 새로운 장난질로 행복을 주었다.

똑같아 보이는 고양이 모래의 성분표를 들여다보게 했고 유기농 사료를 알아보려 상품 리뷰를 수없이 읽게 했다.

샤샤는 식탐이 없었다. 임보처에서 여러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지냈으니 제 밥그릇도 못 챙겼을까 짐작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임보처의 다른 고양이들 중에서도 샤샤는 몸집이 작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좀 더 잘 먹이려 애를 쓰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샤샤는 사료 욕심을 부리는 법이 없었다. 정량을 먹고 나면 밥그릇에 밥이 가득해도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기호에 맞는 간식도 찾아주려 했지만 샤샤는 간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고양이라면 사족을 못쓴다는 짜 먹는 간식도 냄새만 맡을 뿐이고 일절 사양했다. 샤샤의 취향을 맞추려 사들인 간식과 장난감이 쌓이다가 이내 폐기되곤 했다. 쓰담쓰담을 요구하거나 함께 있자고 따라다니기는 해도 손이 많이 가지 않았고, 잠자리도 까다롭지 않은 듯 잘 잤지만 그럼에도 샤샤는 예민한 고양이었다.

고양이라 함은 우아한 걸음이며 깃털 같은 움직임으로 집안을 누비다가도 흔들리는 물건에는 사냥 본능이 일어나 덮치기도 하는 이중적 존재요, 머리를 박고 애정을 구하다가도 시크하고 도도하기가 이를 데 없는 밀당의 귀재 아니던가? 우리집에 와서 한동안 샤샤는 쉽게 곁을 내주진 않았다. 유난히 막내아들만 따랐는데 다른 식구들의 출입에는 별 관심이 없음에도 아들 방에서 제 사람을 기다리는 양 기다리다 외출 후 돌아오면 발소리부터 알아듣고 현관으로 향했다.






집사와 살아주고 있습니다(2)


내 이름은 샤샤다.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든다. '나비'나 '냥냥이' 같은 흔한 이름은 아닐뿐더러 왠지 귀족적인 분위기가 나서다. 코캣치즈냥이 무슨 귀족 타령이냐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혈통이나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품위에 대한 말이다. 나 샤샤로 말할 것 같으면!... 허나 그다지 귀한 집안의 귀한 자식은 아니었던 걸까? 묘생의 시작은 기억에 없고 병원을 오가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과 임시보호처에서의 기억이 나의 탄생이고 시작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환경은 나쁘지 않다. 엄마라고 하고 아빠라고 하는 사람과 언니라고 말하는 두 사람, 오빠라고 하는 매력보이스의 남자다. 내게는 집사 1, 집사 2, 집사 3... 이지만 그렇다고 해두자.


식구가 북적거리던 임보처에서는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도 없고 사색을 즐긴다는 것은 사치였는데 이곳에 오니 드디어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다투지 않고 차지할 수 있는 잠자리와 은신처가 여러 개고 캣타워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도 나쁘지 않다. 때때로 자동차 경적과 소음이 들리지만 그다지 위협적이진 않다.

불편한 점이라면 내 입맛이 까다로운 편은 아닌데 때때로 비린내 나는 간식을 들이댈 때는 난처하다. 정해진 양 이상을 먹는 것은 내 체질이 아니다. 더구나 되도 않는 간식을 들이밀며 내 애교를 보려고 하는 짓이라니 이건 아니다. 고양이는 무릇 품위가 있어야 한다. 조상들이 고대 이집트에서 신성시되거나 왕실의 마스코트였던 것은 괜한 일이 아니다. 벽화 속 반인반묘의 모습이나 중세 시대의 초상화에서 무릎에 앉은 고양이를 만나고 보면 우리 조상의 위엄과 품위가 어떠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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