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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Aug 29. 2023

중년 소년의 트레블로그

12. Castrojeriz - Carrion De Los Condes 

순례길 DAY 15. Castrojeriz - Fromista 

안 좋은 일은 왜 연달아 일어나는 걸까? 순례자들이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은 흔한 일이라 알베르게에 아내를 두고 왔다는 농담도 있을 정도지만 나처럼 연달아 두개의 물건을 잃어버리는 경우는 최소 우리 일행 중에는 없었다. 어제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 어딘가에 선글라스를 두고 잠시 깜빡했다. 선글라스가 흘린 곳으로 짐작되는 장소에 다시 가보니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땀에 젖어있던 모자는 빨아서 침대 프레임에 널어두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누군가 훔쳐갔을 거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모자와 선글라스 모두 올레길을 걸으면서 애용하던 물건들이라 나는 아침부터 화가 좀 났다. 특히 같이 걷고 있는 사람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싫었다. 여전히 짐관리에 미숙한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짐을 들고 다니며 식사를 하거나 장을 보러 외출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나에게 치미는 화를 식히려고 아침부터 긴 거리의 오르막을 무리해서 올랐다. 추운 새벽에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버리니 두통에 근육의 피로까지 겹쳐 컨디션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의 걸음은 너무나 무거웠다. 온몸의 근육이 다 아팠다. 이제 좀 장거리 도보에 적응이 끝나고 익숙해지나 싶었는데 사소한 일로 하루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내일의 컨디션도 장담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에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 게다가 겨울날씨 같은 메세타의 밤기온과 일교차 때문에 비염이 계속 심해져서 잠자리에 누우면 기침을 계속해 목도 아프고 피곤했다. 순례길을 포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계속 들려왔다. 특히 은퇴 후 안 좋은 건강에도 어렵사리 순례길에 나선 친절했던 스페인 노부부가 무릎에 탈이나 어쩔 수 없이 떠났다는 소식이 안타까웠다. 순례길에서 무릎에 문제가 생긴 동료를 자주 보게 되는데 보통은 연로한 탓에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인 것이어서 슬펐다. 인생을 살면서 어려움은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하고 그것을 대처하는 자세에 따라 더 큰 문제가 되거나 사소한 것으로 지나치게 된다. 이날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어떤 어려움이 생기면 스스로를 탓하고 몸을 혹사하거나, 때로는 자기 파괴적으로 변해버리는 나의 안 좋은 습관을 이곳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스스로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이 부족했다. 항상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관찰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직도 억울한 일, 스트레스, 누군가로 부터 느끼는 모욕 같은 것에 취약해서 금세 화가 난다. 화가 나면 평정심이 흐트러지고 반드시 반작용적인 행위를 함으로 이 상황을 잊고자 한다. 보통 그 행위는 내 몸을 망가뜨리는 일들이었다. 여전히 나를 취약하게 만드는 쳇바퀴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적어도 순례길 위에서는 더 잘 알아차리고 더 잘 다스려서 쓸데없는 화를 내지 않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순례길 DAY 16. Fromista - Carrion De Los Condes 

안 좋은 일은 왜 연달아 일어나는 걸까? 어젯밤 나는 누적된 피로 때문에 코를 좀 많이 골았나 보다. 옆에서 자던 미국인 할아버지가 내가 코를 골 때마다 베개로 나를 네다섯 번 정도 후려치는 바람에 나는 네다섯 번 잠에서 깼다. 바로 옆자리에 누운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이 아니라 몸을 베개로 후려친 그 노인은 내가 참을 거라는 알았던 걸까? 왜 참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순례길에서 인종차별적이고 무지성적인 폭력을 당하니 너무 짜증이 나서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밤중에 쌍욕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옆에서 곤히 자는 동료들 때문에 가까스로 다스리고 다시 누웠다.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노인은 순례길을 제대로 걷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순례길의 대부분을 버스나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오늘 이 숙소 역시 택시를 타고 일찍 도착해 거의 2번째로 숙소에 도착한 내 옆자리에 눕게 된 상황이었다. 스페인에서 살고 있는 딸과 함께 살기 위해 이곳으로 이주했다는 노인이 순례길을 찾은 이유는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을까? 칠순이 넘어 보이는 나이를 먹고도 순례길을 걸어야 하는 진짜 이유를 노인은 영원히 찾지 못할 것처럼 보이니 난 도대체 그 사람에게 뭐라고 따져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늙을까 봐 걱정도 됐다. 노인의 태도에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며 귀를 닫아버리고 자신의 삶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죽기만을 기다리는 삶이 보였다. 그 잉여롭고 비생산적인 시간들이 다가올 날도 나에게 그리 멀지 않았다. 난 이 노인을 용서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이 노인과 비슷한 사람들을 사회에서 자주 마주하게 된다. 당신은 그들을 포기하거나 멀리하는가? 내가 그 영감에게 할 수 있는 적절한 복수는 이어 플러그를 사주고 되도록이면 공동숙소를 떠나 호텔 개인숙소에서 묵는 게 좋겠다며 빈정거린 후 당신 같은 사람이 택시를 타고 알베르게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순례자 행세를 하는 것이 역겹다고 모욕을 퍼붓는 것이 나름 통쾌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복수를 행동에 옮길 일은 없을 것이다.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게 현명한 선택일까? 잘 모르겠다. 나는 이러한 싸움에 되도록 참는 것을 선택하도록 교육받은 한국사람이다. 만약 이 사람이 노인이 아니었더라면? 자기밖에 모르는 젊은 사람 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한국에 돌아가 또 이런 사람들과 함께 어떤 일을 해야 한다면 난 그들의 무지성과 폭력적 행위를 결국 참아낼 것이다. 그 대가로 말 못 할 스트레스를 받게 되겠지. 그런 삶이 반복되는 것을 얼마나 허용할 것인가? 아니면 싸울 것인가? 난 아직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선택이 달린 문제다. 용서의 이유가 있다면 용서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용서를 바라지 않거나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전혀 죄의식을 가지지 않는 사람을 용서해 줄 수는 없다. 나에겐 육체의 나약함 뿐만 아니라 정신적 결핍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갈등이 순례길을 더 어렵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이날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많이 치유되었다. 노래하는 수녀님들(Singing Nuns)이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산타마리아 알베르게의 음악모임은 특별한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이날 이 모임에 참석한 우리는 각자 왜 순례길을 오게 되었는지 이곳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각자의 사연이 와닿았고 나의 사연 역시 그들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얼마 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진 영국인 앨리스의 사연이었다. 오랫동안 약물중독에 빠져있던 오빠를 몇 달 전에 잃은 그녀는 상실의 슬픔을 딛고 다시 살 용기를 얻기 위해 순례길을 떠났다. 나 역시 어머니를 잃고 상실감에 올레길을 걷기 시작해 이곳까지 이르게 된 것이기에 그녀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길 위에서 누군가는 새롭게 연결되고 누군가는 끊어진다. 오늘의 일행도 순례길을 마치고 나면 멀어지겠지만 우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길 위에서 다시 만날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순례길 #노래하는수녀들 #산티아고 #트레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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