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Ponferrada - O Cebreiro
순례길 DAY 26. Ponferrada - Villafranka De Bierzo
어제의 길었던 내리막길은 나뿐만 아니라 일행 모두에게 힘들었다. 어제의 여파로 오늘 누군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고, 대부분은 물집과 무릎부상으로 고생했다. 이제 우리의 발은 반창고와 붕대 그리고 근육크림으로 뒤덮여 있는 걸음의 기록보관소가 되었다. 그나마 나는 한국사람들의 대단한 정보력 덕분에 아직도 발 부상이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주변 동료들도 내가 물집이 생기지 않는 이유를 신기해했는데 선배 순례자들이 블로그나 브런치를 통해 알려준 발가락 양말과 바셀린 크림 덕분이라고 하니 모두 발가락 양말이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오늘의 코스는 비교적 무난하고 평탄한 길이였지만 내 다리근육도 걷는 내내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마침내 코스를 거의 종료하던 시점에는 발가락에도 첫 물집의 조짐이 보였다. 무릎도 안 좋아졌는데 여기서 물집이라니 안될 일이다. 왜냐하면 내일은 28km가 넘는 장거리 코스인 데다 다시 1300m까지 등반을 해야 되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내일이 순례길의 정말 마지막 고비가 될 거라고 우리는 이야기하곤 했다.
이날 우리가 묵게 되는 마을은 Villafranka De Bierzo 빌랴 프랑카 데 비에르조라고 한다.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마을인데 알고 보니 '스페인 하숙'을 이 마을에서 촬영했다고 했다. 이날 '스페인 하숙' 촬영을 진행했던 알베르게는 비수기라서 그랬던 건지 무슨 이윤지 알 수는 없지만 영업을 하지 않았다. 지도를 통해 확인해 보니 마을 중심부와 순례길 코스에서도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알베르게를 가기 위해서는 다시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상황이라서 열었다고 해도 굳이 그곳까지 가보지는 않았을 것 같다. 방송에서는 꽤 많은 순례자들이 그 알베르게를 찾는 것으로 연출이 된 걸로 아는데 순례자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모션이 있었던 것일까? 성수기 시즌이라고 하더라도 장사가 잘 될 걸로 보이지 않은 외딴 위치였어서 약간 갸우뚱하게 되었다.
사실 이 마을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오래된 알베르게가 있다.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라 나도 별생각 없이 이곳을 예약해 두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알베르게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너무 관리가 안된 모습이었다. 이불과 베개도 지저분했고 충전시설도 열악해 기기 충전을 숙소 바깥에 있는 특정장소에서만 할 수 있었다. 이런 불편은 차치하더라도 우선 주인으로 보이는 두 명의 중년 남자들이 너무 지저분해 보였다. 언제 씻었는지 알 수 없는 몰골에 게을러 보이는 뱃살. 이 사람들이 요리하는 밥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예약을 취소하고 다른 곳에 묵는 게 어떠냐고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다들 여기가 순례길 알베르게 중 역사도 있고 나름 전통적인 의식도 있어서 하룻밤 참고 보내는 게 어떻냐는 의견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긴 했다. 나중에 독일인 여성 친구 프레데리케가 나에게 하는 말. "성재. 네가 맞았어. 숙소를 옮겼어야 됐어. 이 망할 놈팡이들이 내가 스페인어를 하는 줄 모르고 내가 있는 곳에서 저 여자 피부가 어떻다는 둥 몸매가 어떻다는 둥 떠드는 이야기를 네가 들었어야 되는데." (꽤나 순화해서 번역했음)
그래서였을까? 저녁으로 내온 음식도 맛이 없지는 않았지만 깔끔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의 요리였다. 국물이 있는 소시지 요리에 감자를 곁들여 먹는 음식이었는데 설거지를 제대로 한 게 맞나 싶은 접시에 담긴 묘한 색깔의 수프는 비위에 거슬렸다. 그래도 시장기가 반찬이니 하고 소시지를 한입 베어 물었는데 하필이면 알 수 없는 이물질을 씹어서 예전에 때웠던 어금니가 살짝 깨졌다. 열밭은 나는 이요리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D.H.D (Dirty Handed Dishe)라고. 친구들도 유독 시니컬해진 내가 붙인 이 요리 이름에 웃음을 터뜨렸다.
저녁 먹는 곳에서 이런저런 사진을 둘러보니 이 두 놈팡이 같은 주인의 아버지 세대 에는 이곳이 매우 잘 운영되었던 깔끔한 숙소였던 것 같았다. 알고 보니 그들의 아버지는 스페인에서도 꽤 알려진, 순례길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안타까웠다. 당신이 세상을 떠나시고 나면 아마 이 알베르게는 조만간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았다. 나 이외의 동료들도 거만한 두 놈팡이 주인들 덕분에 좀 기분이 상했었다.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를 명령조로 툭툭 말하는 게 도대체가 서비스 기본이 안되어있었다. 어쨌든 저녁식사를 그럭저럭 마치고 두 놈팡이의 아버지가 주재하는 특별행사에 참석했다. 행사는 검은 냄비에 와인과 이런저런 재료를 섞고 불을 붙여 이름을 알 수 없는 술을 만들고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서로를 응원하는 행사였다.
그들의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코를 시끄럽게 고는 사람들은 순례자들이다!"라고 외치면 우리는 "와우! 그렇습니다~!!!" 하는 식으로 호응하는 것이었다. 이 대사들이 꽤나 웃겼는지 스페인 사람들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어르신이 괜히 유명세를 치르는 것 같지 않았다. 뜨겁게 끓인 술은 생각보다 마실만했고 다음날 걸을 힘을 북돋아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만약에 순례길을 다시 찾더라도 이곳을 다시 들리진 않을 것이다.
순례길 DAY 27. Villafranka De Bierzo - O Cebreiro
비야프랑카에서 1300m 고도의 마을 오 세브레이로로 가는 길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순례길 첫날에 경험했던 오르막보다는 덜했지만 그동안 쌓인 피로와 근육통, 무릎통증을 이겨내고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더 힘들었다. 이날 나는 지옥과 천국의 맛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지옥의 맛은 흡사 바닷물에 절인 순도 99%의 카카오 초콜릿이 녹아 내 혀의 미뢰세포에 닿으면 나는 그 짠 만에 소스라치다가 그 후에 느껴지는 1%의 단맛에 감동하게 된다고 해야 할까? 물론 엄살에 가까운 말이지만 딱 그만큼 힘들었다. 특히 오르막을 오를 때 수분보충, 에너지 보충은 너무나 중요한데 나는 이날 둘 다 제대로 실패했다.
오르막 막바지에 내 가방에 먹을 거라곤 사과 하나뿐이었다. 이날 기온이 이렇게 오를 거라고, 오르막이 이렇게 길게 이어질 거라고 생각을 못했던 내 잘못이었다. 그래도 이를 바득바득 갈며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다 보면 이런데 사람이 사는구나 하는 곳에 아름다운 마을이 나온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이 마을에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놀라운 일이다.
레온에서 하루를 더 묵은 것 때문에 순례길에서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순례길 중간에 합류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낯익은 얼굴보다 낯선 얼굴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 새삼스럽게 그 친구들한테 넌 North Korean? or South?라는 질문을 받거나, 김정은 관련 질문을 받게 된다. 사실 유럽에서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적어도 순례길에 올 만큼의 경제적 여유와 지식이 머릿속에 어느 정도 들어있다면, 이 질문이 얼마나 하찮고 의미 없는지 그들도 안다. 한국은 그럴만한 나라가 이미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말을 붙이고 싶어서 이런 질문을 하거나, 언어유희적 농담으로 별생각 없이 이런 질문을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때는 그냥 무시하면 된다. 앞으로도 볼일이 없을 것이고 친해질 가치가 별로 없는 유럽인일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유럽에 유학을 나왔을 때는 2007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이 어디 있는지 알거나, 일말의 관심이라도 있는 유럽사람들은 정말 드물긴 했다. 16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내가 순례길에서 만난 거의 모든 유럽인들이 K-Pop을 하나의 사회현상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한국 영화, 드라마를 최소 한편 이상은 알고 있거나 감상을 했었다. 닉이라는 덴마크 친구는 박찬욱 감독을 너무 좋아해서 우리는 순례길을 걸으며 2시간 정도 그의 영화이야기만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들이 던지는 North or South? 는 최소한의 국제적, 문화적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순례길에서 누군가에게 질문할만한 내용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친하게 지냈던 유럽 친구들은 절대로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순례길에서 하루는 지금은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미국인 중년여성과 대만친구, 나 그리고 몇몇 유럽사람이 저녁밥상에서 정치이야기를 하다가 약간의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미국인 중년여성이 대만 친구에게 자신은 대만과 중국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걱정된다며 호들갑을 떨다가 결국은 미국이 지켜줄 것이고 우리는 좋은 이웃이라는 투로 말하는 것에 나는 기가 차서 '너네 나라가 좋은 나라라서 남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 다 너네 나라 이익을 위해서 그러는 거야. 남의 나라 일에 신경 써서 제대로 마무리된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지켜주고 말고라니. 무슨..'이라고 말해버렸다. 나는 그녀의 자신감에 괜히 울화통이 터졌다. 얼마나 많은 미국사람들이 실제로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짜증이 났다. 돌이켜보면 내가 괜한 소리를 한 거였다. 그냥 넘어가면 될 일에 괜히 발끈해 버렸다. 그날 이후 우리는 다시는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직접적 이유는 아마도 나 때문이겠지만 다들 속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다 문화, 다 종교, 통칭 다원주의적인 가치를를 따라 '대화와 토론'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게 되면 막상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편협한 지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서로의 진실을 왜곡하는지 그 실상을 알게 된다. 역설적으로 세상의 많은 일들은 진심과 진실이 제대로 전해질 수 없는 환경이라야만 제대로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물론 비관적 시선에 따른 나만의 결론일 수 있다. 나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평생 서로를 100% 이해하지 못한 채, 서로의 이익을 위해 뭉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필수적인 삶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순례길 위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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