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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니 Feb 07. 2021

팬데믹 시대를 받아들이는 백조의 자세

간절함의 이동




하얀 백조 한 마리가 뭍으로 올라왔다.

백조는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갈 곳으로 시선을 두었다. 한참을 딱딱한 낯선 길 위에 서 있었지만, 기다리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땅 위에 선 것들을 눈에 담으며, 발바닥이 익숙해질 때쯤 시선을 비틀어 호수를 바라보았다.


제가 있던 곳의 익숙함이 다시 저를 부르는 듯했지만, 시선을 주었다고 몸까지 돌릴 수는 없었다. 원래 있던 곳의 고요하고 부드러웠던 유영은, 평생 잊을 수 없도록 투명한 눈동자에 담아 두었다.


다시, 살랑 부는 바람에 눈을 한 번 깜빡거리고는 고개를 틀었다. 찰박찰박 소리가 나도록 딱딱한 걸음을 옮겨 그늘이 드리운 호수를 등졌다. 백조의 선택은 한결같았으나, 등 뒤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을 때, 완벽하게 다른 삶이 시작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곧 담담히 침을 삼켰다.








2월까지 계약된 수업들 덕에, 아직 마지막 수업을 하지 못했다. 다시 재개될 수업이 있을지 모를 시간들을 정리하며 차근히, 오늘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러다 곧, 시 언니(누이)의 둘째 '여름이' 출산일이 임박했다.


출산 후, 코로나를 이유로 남편을 제외한 모두의 출입이 금지됐다. 아쉬운 조치였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다만 첫째 아이 '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일을 하시는 시어머님 혼자서는 어려움이 있었기에 재택근무를 하던 신랑과 내가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이제 막 3살 생일을 지나 4살의 문을 연 봄이. 아직 의사 표현은 말보단 움직임으로 하는 게 더 편한 봄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가 없는 2주가, 봄이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내려가기 전부터 마음이 쓰였다. 가족들 모두의 걱정은 여름이를 볼 설렘 뒤에, 엄마 없는 봄이의 하루하루였다. 코로나로 영향을 받는 것은 엄마와 딸 사이에도 여지없이 적용됐기에, 빌어먹을 코로나에 안타까움이 하나 더 추가됐다.


다행인 건 움직임을 좋아하는 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는 거였다. 음악과 함께 요가부터 율동까지 모든 동작들을 꿀꺽 잘 소화해내는 봄이.


'너 이 녀석 외숙모 파트너 한 번 안 해줄래.'





기특한 시간들은 모두 잘 지나가는 듯했고, 봄이도 잘 지내주는 듯했다.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봄이에게도 엄마가 찾아왔다. 볼 수 없는 엄마를 애타게 부르며 우는 온몸에 엄마가 묻어 있었다. 폭삭 안겨 울다가, 내 살이 엄마인 양 만지작거리며 지쳐 잠이 드는 아이가 많이 안쓰러웠다. 보고 싶다는 마음이 어떤 건지 알고 우는 걸까. 새벽녘, 옆에 누가 있는지 종종 깨서 확인하는 아이에 짠한 마음을 싣게 됐다. 토닥토닥.


삼 일째가 되던 날, 어린이집에서 간식을 먹다 갑자기 펑펑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직 표현이 서툰 봄이가 망망대해에 서 있는 듯한 그리움을 표현할 수 있는 건, 우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게 말할 수 없는 봄이의 마음까지 동요되어 왔다. 그럼에도 다음 날 또 그다음 날은 울지 않고 어린이집을 다녀왔다. 엄마를 가슴에 폭 새겨 넣고, 우는 시간을 줄이고, 잘 먹고 잘 놀게 됐다. 가끔 군데군데 묻어있는 그리움이 느껴졌지만, 봄이는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어른들도 하기 어려운 것을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만 애달픈 건 아닐 텐데. 그 짧은 시간에 기다리는 방법을 아는 듯한 봄이를 보며, 이 작고 여린 아이가 담담히 지내는 모습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봄이는 포기가 아니라, 체념을 하는 듯했다.


신랑의 재택근무가 끝나 봄이를 놓고 올라오는 길, 마음이 여러 갈래로 퍼져나갔다. 왜 울컥했는지 복합적인 마음을 설명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그저 안쓰러운 마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며칠간 내 품 안에 있던 아이. 벌써 이렇게 무수히 정이 들어버렸는데 오죽할까 싶은 마음도 한몫했던 것 같다. 소중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잠시나마 엄마가 돼봤고, 짧고 강렬하게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이거구나.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아마 나를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기분을 뒤로하고, 나는 그 작은 아이에게서 나를 투영하기도 했다. 우는 건 못하니 탓을 하고, 걱정과 한숨으로 쌓여갔던 시간들. 나의 환경이 여전하지 않은 공간에서 허우적거리던 모습들. 백조가 되자니 받아들이기 싫어 탄성으로 버티던 의지들. 버티고 버티다 끊어져 버린 고무줄에 아프게 넘어지느니, 끊어내 버리자 되뇌던 날들. 봄이를 보며 나의 변화가 좀 더 선명히 다가오는 것 같았다. 저 어린아이도 받아들이기 힘든 세상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불평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좀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


원래 있던 환경을 등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호수에 유유자적하던 백조가 아스팔트를 딛고 살아가야 한다는 건, 지금까지의 모든 패턴이 무너지는 일이다. 물아래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발을 찼을 백조지만, 그대로 평온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리라.


인정하기 싫지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복작거리던 물아래에서의 마음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어쩌면 발가벗겨진 기분으로 걸어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기분이 되어서도 걸음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이전의 세상과 잘 안녕하려 한다.


오롯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해 천직이 되었던 일과.

13년 동안 나의 삶을 윤택하게 지켜주었던 사업자와.

그것으로 몇 년간 할 수 있었던 뒷바라지의 시간들과.

그로 인해 포기해야 했던 학생이자 무용수로서의 수업들과 공연들 또한.


돈과 꿈 사이에서 무수히 고민하며, 나와 타협했던 응어리진 시간들이 지금 생각해도 많이 아쉽다. 그럼에도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 덕에 여러 사람 먹여 살렸으니.


10년 넘게 만들어 썼던 리플릿과 명함을 차곡히 앨범에 넣어 둔다. 나의 간절함과 정성을 담았던 흔적. 마지막 수업까지 잘 마무리하고, 방향을 틀어 나의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걸어가야지.


신랑에게는 미안하지만, 떠난 적 없던 돈의 굴레를 떠나,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어쩌면 이때다 싶어 결코 잘라내기 어려웠던 것들을 냉정히, 모조리, 시원하게 잘라버리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처음으로 시원섭섭하다는 기분이 원초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또 처음, 내 삶을 탄탄히 건설해주던 간절함이, 다른 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작된 정리. 일을 인수해 주는 후배가 내내 같은 질문을 한다.


'이제 뭐 하실 거예요?'


나는 대답한다.


'뭘 하려는 게 아니라, 뭘 안 하려는 거야.'


무엇이 시작되었든, 나의 세상이 다시 간절함을 품는 일이 될 것이라는 것엔 변함이 없을 거다.


그래, 그러다 위대한 아이를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살랑살랑 부는 따뜻한 봄 같은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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