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기니 Jan 17. 2021

움직이는 신혼의 성 - 전세 대란



소문만 무성한 성을 보며 미로 같던 동굴 안이 궁금했다. 이 성이 어디로 가게 될지, 어느 곳에 멈춰 무엇을 보며 정착하게 될지 기대됐다. 결말에 다가왔을 때, 겉으로는 현실을 등진 동심 안에서 순수하게 그들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꿈속을 걷는 것 같은 음악은 앞으로 살고 싶던 황홀감을 떠오르게 했다. 내가 사는 집, 내가 살아갈 공간이 곧 나의 터전이 되고, 내 삶의 기반이 되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공간을 갖는 것은 누구에게나 절박해 보였다.






| 1화, 나도 집을 갖고 싶어 | 


86년에 시작된 보노보노는 나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매우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었고, 별거 아닌 것 같은 평범한 주제로 매 회차 생각을 시작하면 좀 깊이, 오랫동안 생각해야 하는 주제들이 많았다. 작은 아이들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비추는 순수하고 솔직한 만화. 오히려 크고 나서 더 좋아하게 된 만화였다.





1화의 시작은 해달인 보노보노가 집에 사는 친구들을 보고 궁금증을 가지며 시작한다. '왜 다들 집에서 살고 있는 걸까, 나는 그저 바다 위에 둥둥 떠있을 뿐인데.' 집이 필요한 이유를 궁금해하던 보노보노에게 너부리의 명쾌한 답은 너무 단순해서 가볍기까지 하다. '집이 없으면 애를 먹으니까' 너무 쿨한 답이지만, 이 말속에 포함된 여러 이유들이 훅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이유는 사방에 널리고 널려있다.


까다로운 세입자 보노보노에게 집을 찾아주려는 친구들. 보노보노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조개로 만든 집이란 게 있을 턱이 없고, 무너질 걱정 없이, 굴러 떨어질 걱정 없이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바다와 가까운 곳에 있는 집을 찾아주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집을 찾는 과정은 의식주를 해결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조건에서, 심리적인 조건들이 좀 더 작용하는 듯했다.


무언가로부터 나를 지켜줄 안전한 공간. 걱정 없이 자유자재로 휘적이며 다닐 수 있는 안락한 공간. 온전히 나를 드러낸 가족들과의 복작거리는 따뜻한 공간. 그런 공간을 나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집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크기로 다가왔다. 내 삶이 어쩌면 집으로부터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2년이 지나가는 시점, 우리는 이사를 결정했다.


더 잘 살아보리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나를 또 흔드는 일이었다. 막 집을 알아보는 시점에 '전세 대란' 기사들이 연일 쏟아져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전세 대란이라는 명찰을 달고 부동산을 방문했다. '괜찮은 매물이 나왔는데 보러 오세요.' 연락을 받고 3일 만에 아직 보지도 못한 매물이 계약되어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으로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른 집을 보고 잠시 고민하는 사이, 또 한 번의 전화는 다음 손님이 계약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몇 시간 고민하던 사이에 일어난 일. 드디어 실감이 났다. 와,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그 뒤로 괜찮은 매물이 나오는지 알림을 설정해놓고 부동산에 연락처를 남겨 놓았지만, 이미 불씨가 번진 불안감은 활화산처럼 커져만 갔다. 부랴부랴 시간을 내서 무조건 첫 손님으로 집을 봐야 하는 상황이 됐고 시린 겨울, 난생처음 이 추위가 정말로 무서워졌다.


그날로 우리는 만사 제쳐놓고 매물이 올라오면 제일 먼저 보게 해달라고 부동산들에 연락을 했다. 코로나 때문에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공연 촬영도 끝이 났고, 수업도 모두 올 스톱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고 고마웠던 건 아니다. 어쨌든 그렇게 발품을 팔아 여러 집을 보러 다니며, 첫 손님으로 보게 됐던 집을 계약했다. 계약을 결정하던 그 순간의 묵직한 목 넘김. 잘 한 선택인지 아닌지 고민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촉박함 속에서, 쫓기듯 나 몰라라 사인을 했다. 이 가격에 이 정도의 집은 다시 나오기 힘들 거다. 그러니 이 정도면 됐다. 더 욕심내지 말자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이 되려 나를 비워내기까지, 서러운 마음이 차곡히 흘러넘쳤다.


아마 우리 이후에 이 집을 보겠다고 기다렸던 사람들도 나와 같은 허탈감과 불안감을 느꼈으리라. 내가 미안할 일은 아니지만, 뒤이어 약속해놓은 사람들에게 볼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게 괜히 안타까운 기분이 됐다. 내가 가로챈 게 아닌데 가로챈 것만 같은 기분. 페어플레이하지 못한 것 같은 찝찝함. 뭐 이런 기분이 되는 거지? 어이없게 드는 기분으로 시간은 금방 헛헛하게 지나가버렸다.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가 겪는 내 집 마련은 한참 힘들어 보였다. 친구들과 수다 떠는 방에 들어가면, 집 이야기는 한숨을 먼저 뱉어 놓고 시작된다. 한 친구는 집값이 오르자마자 집을 팔아버린 주인 덕에 이사를 하고, 다른 친구는 팔지 않고 아직은 버티는 게 답이라 이야기하고. 쓰러져가는 아파트를 사서 조합의 힘으로 새 아파트를 기다리기도 하고, 청약 조건에 맞는 점수를 맞추려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집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아파트 대란, 전세 대란에 샌드위치 되어 있구나 싶었다. '집 아니면 어떻게 돈을 모아?' '월급 모아봤자 집값 오르는 거 절대 못 따라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이다. 공감은 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지 참담하기만 한, 아직 떠밀려 가는 기분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쨌든 이제는 뉴스에서 보는 남의 일이 아니고, 당장 우리의 일이 됐다. 이렇게 되고 보니 자신 있게 솟아오르는 집값을 안정화시키고, 전세 대란을 잠재우겠다 갖은 포부의 뉴스들에 쯧쯧 채널을 돌리게 된다. 왜, 이미 늦었거든.


우리는 여전히 아파트 대란에 크게 관심을 두고 싶지 않다. 집으로 돈 벌 생각도, 꼭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굳이 좁은 서울을 비집고 들어가 아득바득 살고 싶지도 않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위에선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이니 이해한다.


지금은 로또가 돼버린 청약에도 마찬가지다. 월세로 살아도 전세로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 다만 평생 살 수 있는 내 집이 아니라는 거지. 그래도 로또에 목매다는 집착에 찌들지 말자. 그렇게 신경 써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우리가 원하는 삶을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훨씬 더 나은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집을 지어 살고 싶은 마음이 1순위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 내내 불안하던 집 구하기로, 내몰리듯 쫓기듯 집을 구해보니 그렇다. 집을 지어 살기까지는 이사해야 할 몇 번의 집이 필수적인 과정으로 남아 있다. 그러니 신혼으로 규정된 7년, 그 안에 우리도 로또가 된 청약에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다. 그러다 안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고.


청약 때문에 범죄까지 저지르게 된 세상. 된다 한들 아니라 한들 전혀 의미 없는 목표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결국 우리 삶의 목표가, 내 집 마련하고자 로또가 된 허망한 행운을 쫓자는 건 아니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들로 우리의 목표에 도착하는 것, 그것을 잊지 않으면 된다.


그러다 먼 미래가 되어서까지 여기저기 대란에 끼어 혼란 통속에 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때가 되어 울지 않고 웃으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는 세상이지만, 결국 세상에 맞추려다 너덜 해지는 꼴만 우스워지느니, 되면 좋고 안되면 말지 조금 태평한 마음으로 나가볼까 싶다. 그렇기에 열심히 방법을 찾고, 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지내보려 한다. 어차피 있어도 없어도 애를 먹이는 게 집이다. 그렇다면 갖고 애를 먹자고 흔들리는 마음을 허탈하게 잡았다.


이런 마음을 잡았다 해도 언젠가 세상은 우리에게 거친 바람을 불어댈 거다. 그때마다 휘둘려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 바람에 맞설 힘도 우리에겐 없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자리에 잠시 흔들렸다 우뚝 서서 우리만의 터를 단단히 가꾸어 나가는 길뿐이리라.


이사 온 첫날, 그래도 다행히 좋은 꿈을 꾸었다. 그러니 지금은 그걸로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리 없이 강한 나의 대표님 - COVID 1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