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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니 Dec 09. 2020

소리 없이 강한 나의 대표님 - COVID 19




헛헛한 기분으로 커피를 들고 크래커를 씹었다. 크래커의 맛은 담백하고 짭짤했으나, 텁텁하게 목이 막히고 건조했다. 딱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질감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로 으드득 씹는다면, 분명 이렇게 파삭거리는 소리를 내며 쉬이 부서지고, 텁텁하게 목이 막혀올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어지는 난리 통 속에 흔들리는 내가 무서워, 가급적 뉴스는 기본 정보만 훑었다. 오래 듣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 조심은 하되 깊이는 생각지 말자. 답답은 한데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나가길 기다리자.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니 볼멘소리 하지 말자고 꾹꾹 누르던 게 기어코 터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주일을 보냈다.



탓을 하고 싶은데 누굴 탓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현실에, 터져 나오는 마음이 허공을 헤매는 것 같았다. 큰일이라 인정해버리고 나면, 정말로 큰일이 닥쳐올 것만 같아 애써 태연한 척 하루하루를 보냈다. 자의가 조금도 반영되지 못하고 쉬어야 하는 기분이 퍼석거렸다. 완벽하게 다른, 그 억울하고 안타까운 기분이 1년을 버텨오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쏟아진 물이 천에 모조리 흡수되는 찰나의 속도쯤. 세 번째 유행은 기하급수적으로 번져 내 턱 밑에 안착했다. 기우는 기우로 끝나지 않았고, 결국 내 삶에 똬리를 틀고 자리를 잡았다. 야비하고 매서운 눈으로 내가 잠시만 한 눈을 팔면, 곧 나를 먹어 치울 듯 소름이 돋았다.



급속도로 번져나가는 코로나로 반 채택을 하고 있던 신랑은, 주말 동안 명절과도 같은 아버님의 제사로 피곤함도 잊은 채 월요일, 바로 출근을 했다.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신랑 회사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 전 주 금요일 탁구를 치러 갔다 옮은 것 같다고 했다. 대각선 뒷자리, 마스크는 썼지만 일적으로 대화를 했다는 신랑. 사무실은 폐쇄에 들어갔고, 출근한 신랑이 반나절 만에 퇴근해 돌아오고 있었다. 아이들 수업 10분 전, 나 또한 차분히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수업은 다시 모두 올 스톱. 내 턱 밑에 와 있던 그것이 내 턱을 서서히 찔러왔을 때, 찔끔 눈물이 났던 것도 같다.



화들짝 놀란 우리는 고분히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신랑의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밀접 접촉자로 분류된 신랑의 검사 결과는 나의 많은 것을 좌지우지할 터였다. 먼저 검사 결과가 나온 다른 두 명의 추가 확진자가 나를 더욱 무섭게 만들었다. 힘 한 번 못써보고 일상의 모두를 내려놔야 하는 실감 나지 않는 현실이 낯설었다. 결과를 듣기 전까지는 잠도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무 일 없는 듯 일상을 보냈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면서 쿨한 척 밥을 먹고, 티브이를 보고, 웃고 떠들며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일주일 전,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를 하게 된 이모부의 소식과 이모의 처절한 기도를 들었을 때, 왜 그렇게까지 걱정하냐고 말도 안 된다 별일 없을 거라 걱정 말라했었다. 정확히 일주일 뒤, 실체 없는 공격이 우리를 향했다. 덜덜 떨리는 두려움과 막막함을 마주한 차가운 새벽녘에야 비로소, 이모의 처절한 기도를 내가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행히 신랑의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러므로 나에게 검사할 의무는 주어지지 않았다. 겨우 한시름을 놓았지만, 나는 일자리를 또 잃었다. 딱 1년 전, 특별활동 강사로 자유로운 프리랜서임에도, 한 번 가져본 적 없는 대표님이 의도치 않게 갑질을 해대며 나타났다. 이번 해에만 몇 번을 잘렸는지 모르겠다.



올해 아이들 수업은 이제 겨우 많아야 두어 달쯤 제대로 했을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코로나 19라는 대표를 가진, 힘없는 프리랜서 을이 되어 갔다. 실체를 본 적도 없고, 목소리 한 번 들은 적 없지만, 갑질 하는 대표는 자신을 무기로 나를 흔들어댔다.



싸울 수만 있다면 정말 격하게 싸우고 싶다.



낯간지럽게 포장하지 않고 수심 깊은 곳에 잠재워둔 진심을 그대로 꺼내놓자면, 사실 머리채 휘어잡고 땅바닥에 엎어뜨리고 매치며 원 펀치로 시원하게 승를 보고 싶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장 답답한 것은 그렇게 싸울 대상이 없다는 거다. 파이팅 있게 싸우고 나서, 지면 졌다고 이기면 이겼다고 승부수도 띄우고 깔끔하게 인정도 하고 싶은데, 시작도 못해보는 나의 투쟁이 태워보지도 못한 장작통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래도, 그럼에도 끝은 있을 거다.



그동안 지속된 '휴원 합니다'의 거절 메시지들을 보며, 쉬어본 적 없는 16년을 데려다 나를 위로했다. 좀 쉬어가자고. 바빴으니 좀 쉬어도 된다고. 주변에서도 그래, 이때다 하고 쉬라고. 괜찮은 척 집에 있는 게 적성에 맞는다며 장난스레 웃었었다. 생각해보면 쉬는 동안, 비대면 공연과 짧은 작업들이 그나마, 내 턱턱 막히던 삶에 숨이 되어주었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출구 없는 이곳에서 정말로 괴로울 뻔했다.



그래, 그러니까 사실은 미치고 팔짝 뛰겠는 심정이다. 수십 번의 송구한 거절의 메시지들은. 몸만 건강하다면 계속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일이었지만, 내 착각 속 완벽 낭패였다. 순간순간 욱하고 끈적하게 늘어지는 엿 같은 기분을 달랠 방법이 그저 참는 것밖에, 그저 지나가 주길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는 게 더욱 처참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다.



어이없는 대표가 생긴 황당한 사업자. 언제든 또 내 대표는 바뀌겠지. 소리 없이 삶과 생을 흔들어대는 대표의 갑질을 피해 다른 곳에 둥지를 터야겠다는 생각이 격하게 들었다. 주변에 나와 같은 사업자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며 듬성듬성 사라져 간다. 그나마 신랑이 있어 폐업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 내가, 그렇다고 그들보다 무엇 하나 나을 게 없다. 나는 일하지 않고 사는 삶을 꿈에서라도 그려본 적이 없다. 내려놓고 싶은데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그러니까 단 하나 남은 방법은, 어떤 식으로든 대표를 꼭 갈아치워야겠다 악으로 버텨내는 중이다.



아무 일도 못했으나,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겪어온 지난 1년이 내게, 아무것도 아니지 않길 바란다. 모두 잃을 뻔한 아찔한 순간을 맞닥뜨리고 일주일을 아무것도 안 하고 보니, 전투력이란 게 상승한다. 그럼에도 힘내라는 말은 이제 좀 지치는 말이 되었다. 그저 건강히 살아남아야겠다 조금 무디게 생각하기로 했다. 질 순 없지. 꼭 살아남아 비웃어주겠다. 넌 꺼질 거고 난 계속 살아갈 거라고.



언젠가 신랑과 함께 그때 우리 많이 단단해졌었지. 잘 살아냈다. 아득하지만 그 한 마디로 기억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저 멀리 어딘가에 있다. 파삭 거리며 부서질 듯한 이 세상도 가뭄을 지나 촉촉하게 적셔질 날이 분명 올 거다.



그래, 그렇다고 그날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며 살 수는 없으니, 갑질하는 대표를 끌어내고 삶과 생을 온전히 살아내도록 지킬 거다. 그러다, 끝이 나는 그날이 찾아온대도 절대 감격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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