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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니 Apr 12. 2021

예술가들을 삼킨 괴물



블랙 윙 사이, 새하얀 공간 속으로 비상하던 남자 백조가 무대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 꿀꺽 삼켜지며 영화는 끝이 난다.


나는 머릿속에서 이 장면을 수도 없이 돌려봤었다. 그 행위를 무한 반복해도 사라지지 않던 감동. 천천히 그리고 고요하게 흘러가던 마지막 장면에,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붕 떠오르며 뜨거웠던 황홀감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2000년대에 성장 스토리 영화로 주목을 받았던 영화 빌리 엘리엇. 이 영화는 실제 유명한 안무가인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가 배경이 되었고, 남자 백조로 유명한 주인공이 모델이 돼주었던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면 나는 내가 처음 무용을 시작했던 때를 겹쳐보게 된다. 춤을 추며 느꼈던 짜릿함. 춤을 출 때에만 느낄 수 있던 전율이, 나 스스로 춤을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마음에는 질긴 탄성이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나를 춤출 수 있게, 언제든 다시 무대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


"그냥 기분이 좋아요. 조금은 어색하지만, 한 번 시작하면 모든 걸 잊게 되고, 그냥 사라져 버려요. 내 몸 전체가 변하는 기분이죠. 마치 몸에 불이라도 붙는 기분이에요. 전 그저 한 마리의 나는 새가 돼요. 마치 전기처럼요." (Billy Elliot, 2000)





얼마 전, 뮤지컬을 하는 친구에게서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코로나로 인해 줄어든 무대 덕에 턱 하고 생계가 목에 걸렸으리라. 생업으로 삼고 이어왔던 무대가 코로나로 점점 사라져 가고, 좋아하는 일 자체가 생계를 책임져 줄 수 없는 상황이니, 결국 몰리고 몰린 궁지에서 궁여지책을 찾아야만 했을 거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가슴에서 느껴지던 쓴 맛이 머리 꼭대기까지 한 번에 올라왔다. 함께 무용을 하며 꿈꾸던 20대 초반,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텨내던 시간들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했다. 그때 이후, 친구는 친구의 오랜 꿈인 뮤지컬로, 나는 나의 꿈인 무용으로 무대에 섰고, 우리는 다행히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무대 위에 풀어놓으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나는 드문드문 한량처럼 무대에 섰고, 친구는 그 무대에 모든 것을 걸었다. 지난 온 시간들을 돌려보아도 여전히,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당연하다 여겼기에, 예상치 못한 친구의 전화 한 통은 다시 그때가 떠오르듯 먹먹한 마음이 안개처럼 덮어왔다.


나는 가끔 그 친구에게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나는 너처럼은 못 살 것 같다고. 매년 공연 무대에 섰지만, 일 년에 두 번 정도 그만큼이 나에게는 딱 적당했다. 그렇다고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든 건 아니었다. 무대에 설 열정이나 의지가 꺾인 것도 아니었다. 언제나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춤을 추고 무대에 서는 일이었으나, 나머지는 돈을 버는 데에 시간을 썼다. 꿈과 돈 사이에서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고, 양 끝에 줄을 팽팽하게 이어 놓았다. 내 인생에서 둘 중 하나라도 끊어져 버리면, 더는 방법이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상태로.


가난을 감당하지 않기로 했던 것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 대신 내가 내게 준 나름의 대가였다.


친구는 그런 나와는 달랐다. 꿈을 선택해 어떻게든 감당했고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을 마무리했다. 나는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떠안지 않기로 했고, 많은 예술가들은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그것들을 삶의 일부분처럼 자리를 내주었다. 물론 맞고 틀린 것은 없다. 단지 나는 내 갈 길을 갔을 뿐이고, 친구는 친구의 길을 갔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친구와 그보다 더 많은 예술가들을 볼 때면 그들에게 경이로운 존경심이 들곤 한다.


보통 비춰지는 것보다 무대에 선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포기하는 일이다. 그중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하는 것이 '돈과 시간'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 24시간이라는 공통적인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에 무엇을 창출해 나가는지는 하늘과 땅의 차이로 다르다. 배우들은 대중없는 연습 일정을 소화해야 하니 다른 일에 맞춰 일을 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안정적인 수입이 붙는 것도 아니다. 혹여라도 오디션에 떨어져 바로 일을 할 수 없을 때에는 단기 알바를 하면서 오디션이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연극, 뮤지컬, 영화, 드라마 등 모두의 사정이 비슷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실재하지 않는 꿈을 좇는다.


그런 그들에게 더 청천벽력 같던 코로나. 싸울 대상이 없어 손 놓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대를 기다려야 하는 수많은 예술인들. 더는 무대로 생계를 이을 수 없어 바짝 어려워진 상황에 와, 정말로 세상이 달라졌구나 새삼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주식 소식에 번쩍번쩍 놀라곤 한다. 티브이에서도 종종 대화 주제로 떠오르는 주식 이야기와 조금 더 오롯이 무대에 집중하고 싶어 경제적 자유를 꿈꾸기 시작한 배우들이 많아졌다는 것에, 실감 나는 현재가 낯설지만 모두 사실이다. 무대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으니, 쿵 떨어지는 막막함에 하소연도 지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공감 가는 이야기이기에 모두가 잠을 자는 동안, 나를 비롯해 그들의 통장에도 돈이 쌓이길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점점 예술가들의 목을 조여 오는 세상. 그럼에도 무대를 포기하지 않는 예술가들 덕분에 나는 무대가 새삼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좋아하는 마음만 가져가면 흔적도 없이 나를 꿀떡 삼켜버리는 마법과도 같은 무대. 나도 그 무대가 좋아 떠나지 못하는 사람 중 한 명이긴 하지만, 생계를 위장해 턱 끝을 찔러와도 포기할 수 없는 그 마음이 도무지 머리로는 나 또한 설명이 안되기에.


결국 좋아하는 일에 모든 것을 쏟아보지 못한 이들에게 돌아가는 대가는 쉬운 포기다. 살다 보니, 마음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철저히 노력이 가중된 행동만이 그 마음을 무대로 올릴 수 있다. 처음 짜릿했던 마음 하나로 시작해 끝이 보이지 않은 생계를 업고, 노력으로 일궈낸 무대만이 보상이 되어준 직업. 그런 그들에게 이제 더 이상 그렇게 길고 긴 기다림이 되지 않길 바라본다.


후회하더라도 무대, 늦었더라도 무대다. 그저 좋아하는 그 마음 하나로 경제적으로부터 해방되어, 오랫동안 그곳에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코로나가 잠식되더라도 곧 더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사라질 퍼석한 세상에 이곳, 무대에서의 커튼콜은 꼭 계속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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