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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니 Aug 06. 2020

결혼, 청춘의 장례식



살다가 문득, 내가 왜 이런 걸 떠안았을까 싶은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억울하기도 하고 나만 희생하는 것 같고. 내가 이런 걸 왜 했을까 복잡하게 생각하다 보면 결국 답도 없는 갑갑한 나를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결혼은 역시 아주 어마어마한 일이었다며 니진스카의 결혼을 떠올리겠지. 복잡한 양면성을 가져, 나를 이도 저도 못하게 한다 탓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꾸역꾸역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때, 잠시 무게들 옆으로 치워두고 가볍게 다시 길을 나설 거다.






좋으면 계속 만나는 거고 아니면 헤어지는 거야. 25년간의 끈질긴 인연과 7년여의 연애를 끝으로 서른여섯, 청춘을 훨씬 넘어선 한 트럭 나이에 새하얀 신부가 되었다.


나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그렇다고 현실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런 말들에 어느 쪽이든 무감했다. 결혼은 때가 되었을 때 조금만 힘을 주면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했고, 미래에 거쳐가야 하는 일 중 그저 하나라고 생각했다.


설득할 수만 있다면 나는 결혼식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요즘은 스몰 웨딩으로 하기도 하지만 그것조차도 안 하면 안 될까 싶었다. 한다면 둘이 서약하고 반지 나눠갖고 끝. 아니면 가족들과 상견례보다 더 거한 집에서 식사하고 사진 박고 끝. 그랬으면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좀 불가능하다는 걸 납득한다. 의견 낼 엄두조차 안 났다. 스쳐갔던 봉투와 축하 속에 꼬리 자르기가 되지 않는 개미지옥, 나도 남들 다 하듯 있는 그대로 절차를 진행했다.  


우리 결혼식이 뭐라고 500명 넘는 사람들이 움직인다. 고작 두 몸뚱이 같이 살자고 큰 자본이 나갔다 들어왔다. 송구하고 무거운 마음이 불편했다. 원래 그래야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한 번의 결혼식을 위해 온 세상이 움직이는 듯했다. 나에게는 딱 그만큼의 무게였다.


내게 이런 잔치가 꼭 필요하지 않던 이유는, 누군가에게 '우리 잘 살게요'보다 '우리 잘 살자'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왕 하는 거 즐겁게 하자 해서 부르고 싶던 사람들 죄다 불렀다. 작게 켜 둔 송구한 불 탁 꺼버리고, 대놓고 식을 즐겼다. 조금만 더 신났으면 춤까지 췄을지도 모르겠다. 거짓말로 조신한 척, 나는 그런 거 못 한다. 민망함 꾸깃꾸깃 넣어두고 그냥 나답게, 씩씩하고 웃음 헤픈 천방지축 신부로 끝이 났다.


돌아오는 차 안, 결혼식과 나 사이에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화려함과 축하 속에서 무엇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은 30분이면 끝난다는 걸 바로 실감했다. 분명 내 인생에 엄청나게 큰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나의 일상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그대로였다. 더 이상은 그때의 내가 내가 아닌 기분. 아주 높은 하이힐을 오랫동안 신고 있다 벗었더니, 그렇게도 평범한 본래의 내가 보이는 당황스러운 현실감. 12시가 되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처럼, 나도 모르게 구두 한 짝 잃어버리고 어느새 방구석으로 돌아와 있었다.


결혼식 이후, 그런 기분을 느꼈을 때와 이 작품을 만났을 때가 아주 비슷했다고 해야겠다. 내가 알고 있는 결혼의 그림과 딱 반대의 그림.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결혼식을 무대 위로 올려 20세기 신고전주의 발레의 문을 당당히 열어준 최고의 여성 안무가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1891-1972) 그리고 그녀의 작품  <결혼 Les noces, 1923>.





발레리나로 얻은 명성보다 안무가로서 남긴 업적이 훨씬 큰 니진스카는 천재 발레리노 바츨라프 니진스키(1890-1950)의 여동생이자 그와는 예술적 동지이다. 그리고 그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 세르게이 디아길레프(1872-1929)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1-1971). 그녀의 작품이 세상에 나와 빛을 보기까지는 디아길레프의 든든한 지지가 있었다. 그녀의 안무적 천재성을 미리 알아보고 적극 밀어준 덕분에 <결혼>이라는 작품이 탄생했다. 거기에 현대음악의 차르 스트라빈스키까지.


그들이 함께한 이 작품은 러시아 농민들의 전통혼례 방식을 풍자한다. 그 당시 러시아에서는 농민들의 결혼이 결정되면 신부는 결혼식 날까지 매일 애가를 부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 안에만 머물렀다. 그런 과정을 거친 신부가 신랑 가족의 일원이자 일꾼으로 귀속되는 과정을 주인공 솔로 형태가 아닌, 군무 형태의 구성으로 장면을 이어나간다. 보는 사람에 따라 감상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이 작품은 추상적이기 때문에 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새하얗고 아름다운 파티가 아닌, 화려함 뒤에 숨어있던 무겁고 어두운 이면을 수면 위로 꺼내 더욱 특별해졌다.


결혼식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부드러운 선율이라든지, 행진곡의 경쾌하고 힘 있는 음악이 아니다. 작품에 참여한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이 작품에 장엄한 의지의 오페라를 선택한다. 1914년 <봄의 제전>을 완성한 직후 구상된  <결혼>은 추상적인 연주와 실제 농민들의 민속 의식에서 채집한 민요의 탄식과 기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연주와 성악이 함께 하기에 관객들이 작품 내용을 오페라로 들으며 관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음악에서 훅 느껴지는 한이 있다고 할까. 내가 아는 결혼식 음악으로는 매우 적합하지 못하다. 이상한 조합의 악기들과 소음 수준의 음악적 효과가 혹평을 받기도 했던 음악이, 결혼의 무대를 더욱더 고조시킨다.  


두 번째는 의상이다. 우리가 보고 아는 새하얀 드레스나 화려한 발레 의상이 아닌, 당시 농민들의 옷 그대로 거무죽죽한 슈즈와 칙칙한 일상복을 입었다. 이런 의상이 극을 더욱 현실과 가까이 만나게 한다. 화려한 옷을 입고 화려한 결혼식을 한다고 해도 결국 결혼 생활이 지속적으로 화려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축하 속에 빠져 화려함으로 뒤범벅된 착각을 해도 되는 순간은 아주 잠시이고, 이 작품은 결코 그런 착각을 일으키게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내게 이 작품이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은 역시 움직임이다. 몸이 가진 행위나 각가지 표정들은 그 사람의 심리를 섬세하게 반영한다. 특히 무대에서는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몸이 나를 대신해 이야기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먹을 쥔 무용수들을 보면 이질감이 들 수밖에 없다. 우아한 발레 작품에서 그것도 결혼이라는 주제로 주먹이라니. 결혼식에서의 로맨틱을 찾아볼 수 없는 대신 매우 강렬한 포부와 의지가 느껴진다. 꼭 전쟁터에 나가기 전날의 의식 같은 분위기. 결혼식이 이렇게까지 무게를 둬야 할 일인가? 라고 생각하면 결혼 전과 후로 나뉘지만, 전은 아니었고 후는 그렇다.


우리 결혼식에도 아주 잠깐 이런 순간이 있다. '신랑은 신부를, 신부는 신랑을 아내(남편)로 맞이하여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한결같이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라고 하는 맹세의 순간. 그 짧은 몇 초의 순간 우리는 평생이라는 시간을 두고 모두의 앞에서 맹세를 한다. 네, 라는 짧은 대답으로 순식간에 한결같은 사랑을 맹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 나의 청춘에게는 작별을 고하게 된다. 이 이중적이고  무거운 맹세가 주먹을 쥔 무용수들의 단단하고 강렬한 움직임들에서도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스치듯 스쳐도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되는 거다. 결혼식과 주먹, 정말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지만 또 그로 인해 매우 흥미롭기도 하다.





결국 니진스카의 <결혼>은 아름답게 결실을 맺어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와 같은 동화적 환상을 주지 않는다. 구두 한 짝 벗어놓고 가버린 신데렐라를 찾아, 아름다운 결말을 짓는 꿈같은 동화는 정말로 드라마에나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그 잃어버린 구두를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결혼 생활을 해봐야 아는 것이고.


그러면 신데렐라도 아닌 내가, 화려함과 축하 속에 외면하며 놓고 왔던 구두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나는 맹세하던 순간 작별했던 나의 청춘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원 강의에서 들었던 '청춘의 장례식'이라는 말이 나를 쓱 잡는다. 결혼을 하고 나니, 더욱 나를 일렁이게 만드는 말이 되었다. 대략적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까지를 청춘이라고 부르지만, 사람마다 각자가 생각하는 청춘의 나이가 있다. 아마 나의 청춘이 끝나던 시점은 결혼식을 하던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이후 나의 상태는 변했다. 삶도 변해가는 중이다. 그리고 예전과 같이 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 예전이라는 것을  정의하기는 어렵겠지만, 나는 그것을 청춘이라고 불러야겠다.


모든 것이 새롭고 처음인 채로 어서 빨리 어른이 되려 애썼던 나의 청춘.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따뜻했지만 치열했고, 자유롭지만 상처투성이였던 나의 청춘. 다시는 오지 않을 그리고 다시는 마음껏 무모하고 철없이 살아가지는 못할 그런 나의 푸르르고 푸르렀던 봄. 가시적으로는 화려한 결혼식으로 여름의 시작을 알렸고, 비가시적으로는 나의 봄과 작별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막 여름이 시작된 찰나에 서 있다.


부모님의 그늘 속에서 몇 발짝 걸어 나오니, 아주 뜨거운 뙤약볕이 내 머리를 익히는 중이다. 나의 뿌리가 그대로인 채로 그 뿌리가 옮겨진 기묘한 현상과 마주했고, 이제는 나만의 것이 아닌 나의 시간을 조절하게 됐다. 사랑하는 한 사람과 결혼을 했지만,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나에게 온 어마 무시한 무게를 받아들이며 탁탁 자리를 잡아가 있다.


그런 것이 서럽거나 억울하지는 않다. 내가 선택했고 결국 신랑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결혼을 하면서 나에게 찾아온 것이 보이지 않는 이동의 변화라면, 신랑에게 찾아간 것은 보이지 않는 무게라고 생각한다. 무거울 것이고 이동이 쉽지는 않을 거다. 우리는 이제 불같은 태양과 쏟아지는 장마를 지나 사막과도 같은 대지를 걸어 나가야 한다. 다행히 여름에 태어난 신랑과 겨울에 태어난 내가 서로를 식혀주고 녹여줄 수 있다 작게나마 안도하며, 여름 안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만의 유일한, 청춘의 다른 말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언젠가 다가올 가을도 겨울도 모두 건강하게 맞이하기를.


나의 청춘은 끝났지만 다시, 끝나지 않았다.


살다가 문득, 내가 왜 이런 걸 떠안았을까 싶은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억울하기도 하고 나만 희생하는 것 같고. 내가 이런 걸 왜 했을까 복잡하게 생각하다 보면 결국 답도 없는 갑갑한 나를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결혼은 역시 아주 어마어마한 일이었다며 니진스카의 결혼을 떠올리겠지. 복잡한 양면성을 가져, 나를 이도 저도 못하게 한다 탓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꾸역꾸역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때, 잠시 무게들 옆으로 치워두고 가볍게 다시 길을 나설 거다. 돌아보지 않기로 했고, 끝없이 가야 하는 길에 무게를 옮겨 두기로 했다. 조금 더 씩씩한 마음을 잡아, 더없이 평범하게 내가 살아갈 계절을 향해가야지. 그러다 마주하게 되는 청춘을 보더라도 흔들리지 말자고 다짐한다. 나에게 아마도 그런 것이니까 결혼은.







블로니슬라바 니진스카의 <결혼>

https://youtu.be/vsXR81dLj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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