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기니 Jul 13. 2020

맨발의 취객과 함께 춤을

빗속, 맨발의 댄서



비 오는 날, 비 맞는 날



우산 없는 하굣길에 비가 오면 좋았다. 대학 때는 일부러 비를 맞으려고 친구에게 우산을 버리고 집까지 뛰어 오기도 했다. 광년이, 친구들이 머리에 꽃 하나 달아주고 싶어 했다.


아마 그런 것을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 더 있다는 것은 사고를 쳐도 된다는 무언의 허락이었으리라. 박수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친구와 자취방 옥상에서 비를 맞았다. 맨발로 신나게 웃으며 춤을 추며 옥상을 점령했다. 비를 맛보기도 하고 누워서 맞아보기도 하고.


내 인생을 드라마로 놓고 어느 순간의 시청률이 가장 높았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옥상에서 비 맞던 순간을 꼽을 거다. 잊을 수 없는 색 진한 장면. 맨발로 비와 함께 했다.


남이 보면 비극, 내가 보면 희극.

휴, 누군가에게 안 들켜서 다행이지, 이 순간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음에 가슴 쓸어내리며 안심한다.



술은 모든 일의 기폭제.



대학 때 친구들과 가끔 술을 마시면 어느쯤 내가 사라졌다고 했다. 매번은 아니고 비 오는 날만. 다행인 건 술집에서 자취방이 고작 5분 거리였다는 거다.


비가 온다. 취기가 올라온다. 이어폰을 끼운다. 신발을 벗는다. 비를 맞는다. 멀리 돌아 집으로 간다. 그 당시 나의 술버릇이었다.


집까지 너무 짧았던 경로가 못내 아쉬워 다른 길로 돌고 돌아 집을 찾았다. 맨발로 땅을 밟는 느낌이 좋아서였다. 신발 없이 땅의 기운을 느끼는 게 좋았다. 뜨거운 아스팔트를 식힌 비가 온 날은 더 좋았던 것 같다. 세상과 단절된 채 흘러 들어오는 음악소리와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땅을 밟아 걷는 게 좋았다. 찰박찰박 빗물이 느껴지는 발과 온몸이 젖는 시원함. 완벽한 더위와 갈증에 오아시스 같던 느낌. 이런 기분에 중독되어 스스로 더 중독을 만들었다.


좋아, 오늘도 잘 잘 수 있겠어.


건물로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이어폰을 끼우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고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대학생 그는 대학원생. 줄곧 나를 따라왔다고 했다. 내 손으로 말하기 너무 민망하지만, 신비로워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락처를 물어본다. 아, 작업이구나. 이 새벽에 비 맞으며 맨발로 흥얼거리는 친년이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구나. 그냥 저 사람도 친놈인가 잠시 생각하고 말았다. 아무 일 없지만 살짝 놀라긴 했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은 안 들었다. 의지의 친년이. 그 뒤로도 나는 비 맞고 흥얼거리며 맨발로 가끔 걸었다.



그러다 이제 그만, 그런 순간을 만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딱 1년, 춤을 떠나 일만 하던 때가 있었다. 내 선택으로 생업에 뛰어들어 춤으로 사람들을 가르쳤지만, 그렇게는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며 해소되지 않은 마음이 점점 우울한 모양새로 표출되었다. 내 꿈이 돈 버는 데서 끝나는 건 아니었나 보다. 돈도 너무 좋아하는데, 나에게 매우 유감다.


그날도 비가 억수로 쏟아졌고, 술을 마시고 무거운 마음에 맨발로 성당을 찾아갔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비를 맞으며 잠이 들었다. 다행히 같이 술 마시던 친한 후배에게 구조되었지만, 그 날 이후 비 오는 날 맨발의 친년이와는 헤어져야 했다.


센티해지는 순간과 그 이상을 가는 우울의 경계가 애매하다는 걸 알았다. 그 경계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착각에  빠지게 되면 살짝 위험해진다. 맨발로 비 맞는 것은 좋았지만, 위험이 지켜보는 가운데 더 하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거기에 한 살 한 살 먹는 나이도 한몫 거들었다. 그만하자.


그 행위들과 멀어지며 맨발로 춤추는 게 가능한, 현대무용수인 나를 조금은 다행이라 위로했다. 현대무용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는 언제든 공공연하게 벗을 수 있었으니까. 아, 신발 말이다. 그리고 무대는 나의 이런 모습을 기꺼이 받아줄 테니까.







현대무용 창시자,

맨발의 댄서 이사도라 던컨에게 감사를.



모든 현대무용가가 맨발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은 이사도라 던컨 (1877-1927) 덕분이다. 조금 더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주제, 자유로운 의상으로 무대에 서게 만들어 주어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고전 발레로 시작했지만, 고전 발레의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발 끝으로 설 수 있게 발을 조이던 토슈즈를 벗었다.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파격적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도이자 자극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예상하듯 비난을 받았고, 이해받지 못한 마음은 상처가 되었다. 안타깝지만 늘 새로운 시도와 변화는, 양날의 검 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의지의 이사도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볼법한, 입은 듯 안 입은 듯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맨발로 춤을 췄다. 나고 자란 미국에서는 비난을, 떠난 유럽에서는 환호를. 덕분에 지금의 현대무용이 이어져 왔다.


동양이었으면 어땠을까.


옛날 옛적 중국에서는 발을 여성의 신체에서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은밀한 부위로 지정하고, 방에 가둬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전족을 했다. 어릴 때부터 발이 크지 못하게 천으로 꽁꽁 묶어 10센티 정도의 크기로 만들었다. 이것이 그 시대의 미인상이었다고 한다. 이 무슨 잔인하고 비 인간적인 짓인가 싶지만,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았던 이 시대의 사회적 풍습이었으니 가능했다. 아마 나였다면 천으로 꽁꽁 싸맬 때마다 벗어서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버렸을지도 모른다. 뒷일은 책임질 수 없지만.


동양의 이런 풍습으로 여성의 맨발은 억압과 희생에서 벗어난 '자유의 상징'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도 동양에서 시작한 시도였다면, 훨씬 거센 비난을 받았으리라.


누군가를 희생해서 얻는 억압과 모두의 편의를 위한 규칙은 분명 다르다. 그리고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하지 않는 세상이기를 바라는 마음과 시대가 만났다. 처음으로 신발이나 양말을 벗어던졌을 때, 어떤 해방감이 들었을지 감히 상상이 안 간다. 그런 시대를 수없이 지나고 지나 지금이 되었고, 세상이 변했다.   


나는 나름 자유를 인정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은 건강을 위해 맨발 걷기를 하고, 여름만 되면 모두가 양말을 벗어던져 맨발을 보이기에 서스름 없는 그런 시대를 살아간다. 하늘거리는 민소매 티셔츠를 입었다고 욕하는 사람도 없으며, 치마가 짧다고 잡아가지도 않는다. 이제는 자유를 빌미로 양말이나 신발을 벗어던지는 사람은 없을 거다. 비 오는 날의 친년이를 제외하고는.



"사람을 춤추게 하는 것은

정신과 영혼이지 기교가 아니다"



이사도라의 말처럼, 자유로운 정신의 영혼과 자연이 만나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사도라 던컨이 바꾸어 버린 의상의 형태는 충분히 이사도라를 바다로, 때로는 우주로 데려다 놓고, 언제든 나비도, 구름도 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자유를 향한 열망과 이를 통한 강렬함은 그 찰나를 잊지 못하게 만들었으리라. 그리고 그런 순간을 만난 것은 이사도라 던컨 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맨발의 디바 이은미.



우리나라에도 맨발의 타이틀을 달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다. 맨발의 디바라 불리는 국민가수 이은미.

무대 위에서 특이하게만 보이는 이 행위는 사람들에게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나 또한 매우 궁금했던 행위다.


언젠가 올라갔던 무대의 마이크 성능이 너무 좋았던 탓에, 여러 잡음들을 줄이기 위 신발을 벗었던 경험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은미는 이후 계속 맨발로 무대에 섰다. '부담을 내려놓고 오롯이 노래에 집중하기 위한,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한 자신만의 의식'이라고 말한다.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이 말은 나에게자유를 가져다준다. '내 마음대로'의 의미보다는 '무엇도 거리낄 것 없는'의 자유의지로 받아들였다. 멋지다. 나는 이렇게까지 많은 생각을 하고 빗속을 맨발로 걸었던 것은 아니나, 지금은 슬쩍 얹어서 그런 걸로 하고 싶다. 큼.



자유도 자유를 선택하는 자유인 채로.



요즘은 현대무용 작품에서도 필요에 의해 더 자유롭게 신고 벗을 수 있게 됐다. 그런 선택이 반갑다. 그러나 신발을 신고 춤을 춰보면 신발이 얼마나 무거운지, 바닥과 나를 갈라놓는 끼익 소리와 덜컹거리는 몸에 얼마만큼의 불편함을 애써 묻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신발을 신어야 더 제대로 된 장르들도 있지만, 역시 현대무용은 벗어야 제맛이다.


맨발로 춤을 추는 동안, 발 모양에 약간의 변형이 오고 굳은살도 늘어났다. 발톱도 빠져봤고 뼛조각도 떨어져 봤다. 땅을 딛고 잘 서기 위해, 바닥과 친해져 자유롭게 춤 추기 위해 발을 혹사시 생긴 과정들이다. 점 못생겨지고 강단있는 내 발이, 밉거나 싫지는 않다. 오히려 지치지 말아 달라 부탁하는 중이지.


그런 발로 가끔 흠뻑 젖빗속을 걷고 싶은 욕망이 스멀 올라온다. 하지만 이제는 이 열망을 무대 위로 올려, 빗속을 걷던 맨발의 나와 자유로운 맨발의 댄서 이사도라의 기분 만나게 해주고 싶다. 그런 기분에 마음껏 춤출 수 있 바라 마음으로, 여태 넣어 놓은 지원 서류가 찰떡같이 붙길 소망해본다.


그러다 똑 떨어지면 뭐, 다시 빗속으로 쳐들어갈 수밖에.






매거진의 이전글 성공하면 실전, 실패하면 연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