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가게'부터 '어쩌다 산책'까지. 어쩌다 프로젝트
마음 울적한 날엔 거리를 걸어보고, 한 편의 시가 있는 전시회장도 가봐야 할 것만 같은 추억의 장소가 있습니다.
4호선 혜화역, 젊음과 문화의 거리라고 불리는 대학로와 마로니에 공원이 바로 그곳이죠.
오늘 소개할 어쩌다 산책은 왜색 짙은 공간입니다.
선큰을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정원에서부터 창호의 살까지 일본 전통의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공간이죠.
한국의 근대 건축사에서도 왜색 짙은 건축은 비판을 받은 사례가 많이 있어 바라보는 시선에 왠지 모를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하지만 2020년 현재의 서울에서 왜색이 있느냐는 더 이상 삐딱하게 볼일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도 설득하고 있습니다.
단 이 공간의 의도와 완성도, 운영방식 등 여러모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어떻게 다가오느냐가 중요한 것 이겠죠. 그런 면에서 ‘어쩌다 산책’은 또 찾아가고 싶을 정도의 공간입니다.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와 그 안에 흐르는 분위기가 들어오는 사람에게 잠시 동안 차분해지길 조용히 권하는 듯합니다.
어쩌다 산책은 어쩌다 가게, 어쩌다 집, 어쩌다 책방 등의 기획을 맡은 ‘어쩌다 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초기의 어쩌다 가게는 함께 진행한 건축가가 명시되어있어 공간에 관심 있는 저 같은 사람들이 연관된 작업을 찾아보기에 수월 했으나 혜화동의 어쩌다 산책은 공간 디자인을 맡은 팀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있다면 함께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혜화동 뒷골목의 지하에 위치한 이 카페 겸 책방은 크게 4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있어요.
내부 공간의 중심에는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바와 좌석 공간, 그 양 옆으로는 시즌마다 큐레이팅 되어있는 서점의 공간과 그 반대편에 기획 운영되고 있는 전시장 공간이 위치합니다. 그리고 이 세 공간을 아우르는 *일본식 정원의 공간이 외부와 내부의 사이에 위치해 분위기를 차분하게 눌러주고 있습니다.
카페에 음악이 흘러나왔던가? 싶을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고르며, 전시를 보며 모든 순간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정제된 마당의 모습은 잠시 대학로, 서울, 일상이 아닌 다른 공간에 와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다 산책은 이름의 의도대로 어쩌다 보니 차분히 산책을 하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네이밍에 의도가 담겨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매번 올 때마다 어쩌다 보니 책 한 권씩 사들고 나오게 되기도 해요. 마치 ‘어쩌다 산 책’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죠.
*카레산스이(枯山水)로 불리는 일본 정원의 특징은 우리의 정원과 달리 마당을 바라보기 위한 공간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냥 들어가지 못하도록 비워 놓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유한 마당 안에 자연의 모든 것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고 바라보며(어려운 말로 ‘관망’이라고 합니다ㅎ) 감탄도 하고, 마음을 정화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정성껏 관리도 하죠. 우리네 할머니들의 시골집을 생각해보면 정원에는 댕댕이가 뛰어놀고, 우리도 뛰어놀고 할머니 할아버지 생신에는 마을 잔치도 하면서 그렇게 여러모로 사용되는 공간이었습니다. 건축하는 친구들이 좋아하는 커뮤니티 공간이자 유니버설 스페이스(쓰는 데로 용도가 달라지는)의 공간이기도 하죠. 이처럼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의 비슷해 보이는 건축양식이지만 그 안에서도 각각의 사상에 따라 사용되는 방법이 달라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