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의 오아시스, 품위 있는 어른들의 소풍
오늘은 중구의 복합 문화공간 piknic을 다녀왔습니다.
이름에서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이 곳은 남산, 회현 시장, 서울로 7017등과 가까운 서울시 중구 남창동에 위치해있어요. 물론 차로 이동하시면 전시공간 바로 앞에 주차를 하고 조금 더 편히 이동하실 수도 있지만, 서울 중에서도 특히 강북은 대중교통과 두 발로 이곳저곳 들러보는 맛이 좋은 동네이기도 하죠. 오늘 소개해드릴 피크닉 역시 지하철 4호선 회현역과 가까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쉽게 이용하실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2018년 새롭게 탄생한 피크닉은 크게 세 군데의 공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입구에서 산책로를 따라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숍 피크닉과 산책로 끝에 바로 자리한 3개 층 규모의 메인동, 마지막으로는 메인동 뒤로 펼쳐진 테라스인데요. 실내공간은 아니지만 을지로 주변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테라스 공간은 이곳 피크닉을 더욱 풍성하고 여유 있게 만들어주는 ‘셰프의 킥’과 같은 공간이 아닐까 합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그 무엇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시길 추천합니다.
p.s. 테라스의 한 켠에 새로운 공간이 생기고 있습니다. 어떤 역할을 하는 공간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짙은 갈색의 색감이나 유연한 곡선의 형태, 여러 겹의 테라스 공간이 마치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 리카르도 레고레타로 대표되는 멕시코의 건축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picnik의 공간을 기획한 glint는 전시를 기획하는 전시기획사입니다.
보통은 기존의 전시관을 대관해 전시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glint는 독자적인 공간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도 서울의 한 복판에 오아시스 같은 기가 막힌 장소를 찾아서요.
현재 piknic이 위치한 이 곳은 1970년대에 중견 규모의 제약회사 사옥으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사옥의 본건물로 사용되던 3개 층의 구조물을 리모델링 해 메인 프로그램들(카페, 전시, 다이닝 등)을 담아내고 외벽에는 건물의 젊은 시절을 함께 한 적색 타일을 대부분 유지해 건물의 히스토리를 현재까지 잘 유지하고 있어요. 요즘의 유행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레트로의 한 모습처럼 보여 이곳의 히스토리와 트렌드가 절묘하게 교차하는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주요 공간의 리모델링은 NIA 건축(nia21.com)에서 진행했습니다.
홈페이지의 작업들을 보면 정갈하게 정리된 매스(건물의 볼륨, 형태)와 군더더기 없이 미니멀한 공간감들이 눈에 띕니다. 또한 건축가들도 사람이라 각자의 경험 상 잘 만들어내는 크기의 공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NIA의 기존 작업들은 단독주택 내외의 스케일에서도 완성도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이 전체를 기획하는 glint의 방향성과 맞아떨어져 현재의 piknic공간을 만들어 낸 거겠죠.
공간 그 이상으로 중요한 부분인 조경은 양평의 ‘구하우스’, 부산의 ‘F1963’ 등의 조경설계를 진행한 ‘뜰과 숲’에서 맡았습니다. 조경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어떤 식재와 조경이 함께 하느냐에 따라 그 공간이 주는 청량감 같은 분위기는 너무나 큰 차이가 나게 되죠. 양평이나 부산을 찾아가실 시간이 되신다면 ‘구하우스’, ‘F1963’ 에도 한번 들러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이번 소개에서 빠질 수 없는 디자이너는 메인로고 디자인을 담당한 워크룸 프레스의 김영진 디자이너가 아닐까 해요.
2018년 처음 piknic이 인스타그램에서 소위 핫해질 때 가장 먼저 시선을 끈 이미지는 단연 picnic의 스펠링을 살짝 변형한 세리프가 있는 폰트였을 거예요. 소풍 가고 싶게 만드는 단순한 네이밍이지만 뭔가 한 가지를 숨기고 있는 듯 변형된 스펠링과 클래식한 서체.
결과적으로 몇 자 안 되는 폰트 이미지 안에서 짧은 순간 의도를 담아내는 BI 디자인은 마치 한 편의 시 같기도 합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piknic의 포인트는 ‘잘 정리된 레트로’가 아닐까 합니다.
같은 결과물이라도 그 의미에 따라 다가오는 느낌이 달라지기 마련인데요. piknic의 첫 이미지로 다가온 적갈색 타일과 함께 어우러진 밝은 컬러의 정사각 타일을 포인트의 한 부분으로 뽑고 싶어요. 트렌드로 떠오르는 ‘레트로’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공간에서 정사각 타일을 사용하지만 piknic의 뒷 출입구 캐노피(입구에서 비를 맞지 않도록 툭 튀어나온 처마)에 사용된 타일과 타일의 크기에 맞춰 가늘게 뽑아낸 기둥은 입구 주변의 나무들과 어우러져 한여름의 날씨에도 굉장히 경쾌한 기분이 들게 해 주었습니다.
같은 크기의 타일이 내부 공간에도 사용되면서 미니멀한, 마치 일본의 건물들 같은 (워낙 일본이 작은 공간의 활용과 미니멀한 디자인을 풀어내는 디테일의 수준이 높다 보니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더군요) 공간의 느낌이 다른 사이니지들과 함께 배가 되어 다가옵니다.
이 작은 타일은 전체의 갈색 타일과 싸우지 않으면서도 잘 받쳐주는 조연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느낌이었어요. 거기에 더해 상블뢰 엠파이어 서체가 변형된 메인로고(piknic)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보면 의도대로 상쾌하면서도 무뚝뚝하고 친근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통일감 있게 느껴집니다. 다양한 디자인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공간의 경험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piknic의 아쉬운 점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뿐입니다.
사실 이 날 ‘명상 [minful]’ 전시를 관람하며 마음의 평안도 얻고 내부 공간도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코로나의 여파로 사전예약으로 운영되며 제한된 인원만 입장이 가능하죠.
제 와이프이자 @jjssbros_closet 의 운영자인 이과장님과 사전 예약을 하고 피크닉에 도착해 확인을 하니 이게 웬걸! 예약을 한 사람만 했지 뭐예요.
그렇게 저는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외부공간을 더욱 열심히 음미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곳의 테리스가 저에겐 더 좋았고, 내부 공간을 체험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이번 공간은 각 분야의 디자인을 맡은 팀과 의도를 찾아보기 너무나 좋았습니다. 인터뷰 글도 많았고, 각 분야의 담당자도 명확히 드러나 있었거든요.
이것만 봐도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클라이언트의 노력과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공간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도심 속 오아시스 : 전문가들의 하모니를 이끈 마에스트로에게 박수!”라고 하고 싶습니다.
공간기획 : 글린트(전시 기획사)
건축 : NIA (최종훈)
조경 : 뜰과 숲 (권춘희)
bi : 워크룸 프레스의 김영진 디자이너
위치 : 서울시 중구 퇴계로6가길 30
프로그램 : 제로컴플렉스(예약제 레스토랑), 카페 피크닉(낮에는 카페, 밤에는 타파스), 키오스크 키오스크(기프트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