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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 Jan 01. 2022

집순이가 집콕하는 이유

 휴일 아침, 부드러운 이불 사이에 얼굴만 빠꼼 내밀고 있다. 

 귀까지 둘러 덮은 이불은 집마다 하나씩 갖고 있다는 극세사 이불이어 피부에 닿는 감촉이 보들보들하다. 왼쪽으로 뒹굴 오른쪽으로 뒹굴. 매트리스 범위 안에서 몸을 열심히 움직이며 적극적으로 뒹굴거리던 몸은 한참이 지나서야 부스스 상체를 일으키고 시계 대신 창문을 바라보며 일어난 시간대를 가늠해본다.


 얼마나 더 누워있을지 계산하느라 빠르게 머리가 돌아간다. 다시 스르르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제대로 된 시간을 보고 나서야 하루가 시작된다. 꼼짝도 않는 일은 하루 일과 중 하나이다. 공기처럼 집안에 머금어져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일로 텅텅 빈 기력을 충전해본다.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어지면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최단 거리를 짜느라 아까보다 더 빨리 머릿속이 팽팽 돈다.


 휴일은 집순이인 내가 제일 바쁜 날이다.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 소비할 에너지를 채워 넣어야 되기 때문이다.


 에너지 최대치를 100%로 둔다면 집순이인 나는 꽉 채워도 70% 언저리이다. 살아있는 것 자체로도 이미 배터리 방전 상태다. 밖으로 나가 누군가 만나는 생각만 해도 초단위로 -1%씩 죽죽 깎인다. 실제로 만나면 두배씩 깎인다. 막상 만나면 잘 놀지만 사실은 남은 에너지를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 어울리고 있는 것이다. 집에 오면 그야말로 쓰러진다. 옷 갈아입는 움직임도 아끼고 아껴 얼른 침대로 가 누워야 한다. 


 내 몸에서 얻을 수 있는 기력은 한참 전부터 대출한도가 꽉 찼기 때문에 외부에서든 내부에서든 긁어모아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일도 꽤나 집중을 요한다. 고요한 집 안에 누워 공기 흐름에 귀를 기울이며 누워있으면 게임에서 흔히 보는 HP, MP를 채우고 있는 기분이다.


 게임 캐릭터의 에너지는 보통 HP(체력)와 MP(마력)로 나뉘어 있다. 집순이인 내게 HP는 기력, MP는 사회성 같은 것이다. 두 에너지는 깎이고 채워지는 비율이 비슷하지만 어느 하나가 먼저 바닥나면 남은 한쪽도 무서울만치 죽죽 내려가기에 항상 비율을 맞춰놓고 채우는 데에 공을 들인다. 집순이인 내가 밖으로 나가야 하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필사적으로 에너지를 채워 넣어야 한다. 


 휴일에 약속이라도 잡히면?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을 주중에 잘게 쪼개 써야 한다. 출퇴근을 하느라 모든 기력을 쏟아붓기 때문에 저녁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전히 쉬어야 휴일에 활동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게다가 일주일 중 최소 하루는 무조건 온전히 혼자 보내야지 또 다음 한 주를 버틸 수 있었다.


 예전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쉬는 걸로 기력을 비축했다. 집을 정리하지도 않았고 마냥 누워만 있은 채로 휴일을 보내고 방전되어가는 몸을 일으켜 겨우겨우 밖으로 나가곤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기력은 반도 차지 않았다. 기력이 실시간으로 사라지는걸 피부로 느껴질 만큼 밖으로 나가는 걸음 하나하나마다 나를 갉아먹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효율 안 좋은 몸에 에너지를 채워 넣는 가장 좋은 방법을 갈고닦았다. 바로 '혼자 놀기'이다. 


 침대에서 벗어나 세수와 간단한 요기를 한 후 밀린 집안일을 한다. 집을 돌보는 일 역시 '혼자 놀기'에 속한다. 몸을 천천히 움직여 집안일을 하나 둘 시작하면 그때부터 충전기를 꽂은 듯 에너지가 스멀스멀 차오른다. 저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배경음악 삼아 집안일을 끝내고 책상 앞에 앉는다. 집안일하며 놀기가 일반 충전이었다면 책상 앞에 앉아 노는 일부터는 고속 충전이 시작된다.


 나의 놀 거리는 이곳에 가득하다. 바로 옆 책장엔 즐겨보거나 취미로 배우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관련된 책이 가득하고 무엇이든 끄적일 수 있는 아이패드도 있다. 게임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아이패드에 빈 종이 하나를 띄워 아무 글이던 가득 써 내려가는 시간은 나조차도 나를 방해할 수 없다. 머릿속 가득 든 생각주머니에서 단어를 고르고 퀼트처럼 이어 붙이는 작업은 해도 해도 질리지가 않는다.


 나의 귀여운 고양이가 느지막이 일어나 다리에 몸을 비비면 충전도 잠시 쉬어야 하는 시간이다. 길게 들어오는 햇빛을 보며 아무 생각도 아무 행동도 없이 고멍(고양이 멍하니 바라보기)을 하고 있으면 두배는 빨리 에너지가 찬다. 모기가 혈관에 침을 꽂고 혈액을 빨아들이듯 내 에너지 게이지도 쭉쭉 플러스로 올라간다. 귀여운 고양이가 사고를 치면 다시 반토막으로 내려가지만 말이다.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하며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글을 쓰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하다 보면 충전된 기력과 사회성을 보호해주는 방어막까지 생긴다. 스스로 두른 방어막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감정과 가시가 돋친 말을 걸러주는 역할을 한다. 아주 얇고 질기다. 처음엔 비닐봉지같이 흐물 했지만 매주마다 생기고 무너지고를 반복하며 이만큼 견고해졌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집을 정돈하고, 좋아하는 일로 하루를 꽉꽉 채우고. 시간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주말 스케줄이 끝나 있다. 일요일 저녁은 언제나 아쉽다. 다시 밖으로 나갈 각오를 다지며 잠자리에 드는 걸로 집순이의 주말은 끝이 난다. 


 연말 연초 많은 사람을 상대한 지금 에너지가 바닥이다. 마이너스를 바라보고 있다. 집순이인 나는 휴일인 오늘과 내일 집에 머물며 나를 충전할 예정이다. 세상에 섞여 들기 힘들지 않도록 많은 비축을 해둘 참이다. 휴일을 보내고 나면 스스로 두른 보호막도 조금 더 견고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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