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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 Jan 03. 2022

돌아가신 어머니가 돌아오신다면

 책상 한 편에 엄마의 사진과 생전 좋아하셨던 주황색 꽃이 가득한 꽃다발이 작은 병에 꽂혀 있다. 봄이 오면 다른 꽃으로 바꿔 둬야겠다는 생각에 주황색 꽃 외에 예쁘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시던 파란색 수국으로 만든 꽃다발을 찾아본다. 사진 속 엄마는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다. 고개를 돌리면 바로 마주치는 엄마의 얼굴은 내가 기억하는 얼굴보다 훨씬 주름져 있었다. 괜히 인사를 건네고, 괜히 웃는 얼굴을 해본다. 화나는 일이 있을 때도 문득 눈이 마주치면 웃을 수밖에 없게 된다. 옆자리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것만 같다.


 다이어리에 적힌 일기는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듯한 말투가 됐다. '날씨가 맑았다'에서 '날씨가 맑았어요'로, '이제 자야겠다'가 아니라 '안녕히 주무세요'로. 하루에 있었던 일 또한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서인지 아주 자세하게 쓰여있다. 나만 보는 일기인데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 같다.

  

 엄마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 실례인걸 알면서도 뚫어질 듯 바라보다 퍼뜩 고개를 돌리는 일이 이젠 익숙하다. 제일 관리가 편하다는 파마머리를 하고 계셨으니 길을 걷다 보면 닮은 분이 한 두 명이 아니었고 내 시선도 바쁘게 움직이곤 한다. 사람이 지나갈 때 고개를 푹 숙이고 가는 것에 익숙했던 내가 이제는 사람을 관찰하는 일에 도가 터버렸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4개월이 넘었다. 장례식도 치르고 납골당에 모시기까지 했는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엄마와 만날 것만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길에서 스쳐 지나갈 것만 같다.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나 지저분한 자취방을 보고 등짝을 때릴 것만 같다. 같이 점심을 먹자며 문자를 보내실 것만 같다. 길가에서 엄마라고 부르면 누군가는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바로 뒤를 돌아볼 것만 같았다.


 머릿속 이미지를 그리며 상상을 즐겨하는 나는 매번 엄마가 다시 이곳에 돌아오는 상상을 한다. 만나게 되면 무슨 말부터 해야 될까. 말 수가 적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돼 매일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한다.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많으니 버벅거리지 않고 잘 얘기하려면 오랜 시간을 들여 정리해야 될 것 같다. 다 잊어버릴 때까지 정리해야 될 것 같다. 그래도 제일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정했다. 보고 싶었고,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한다. 언젠가 돌아오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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