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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Nov 25. 2024

쪽팔림을 모르는 사회에 사는 게 쪽팔린다

이런 세상, 살기 쉽지 않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헬스장에서 릴스를 넘기다 머무르게 된 한 영상. 진행자가 연예인에게 "명예를 택하겠냐, 돈을 택하겠냐" 묻자 검객의 표창처럼 답이 날아온다. "당연히 돈이죠, 명예는 있어봤자 시기, 질투만 당해요." 짧게 잘린 영상이라 맥락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답변에 공감을 표하는 웃음이 따라온다. 반복되는 영상을 끄고 생각한다. 쪽팔린다.


내가 쪽팔린 건 그 연예인이 돈을 선택해서가 아니었다. 이전과 달리 명예가 돈에 견줄 만큼의 가치도 못 갖는다는 것은 그의 선택뿐만 아니라 동조하는 대중들의 반응만 봐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명예는 신성하고 돈은 속물적이라 비할 바가 안된다는 촌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명예를 가진 자에게는 시기, 질투만 느끼고 돈을 가진 자에게는 선호, 선망을 보내는 사회 분위기가 쪽팔렸다.


우리 사회는 점점 돈, 돈, 돈 아니면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는 분위기다. 코로나 때 주식으로 일부 사람들이 벼락부자가 되어서? 인플루언서가 산업의 주역이 되며 모두가 셀럽의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서? 아이돌도 잘 사는 집 출신이 아니면 되기 힘든 사회라?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초기엔 영수증을 리뷰하는 프로그램이 나오며 불필요한 소비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 주식에 투자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콘텐츠가 많아지는 게 좋은 흐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어떤 방식으로든 부를 거머쥔 자가 권력, 명예, 자유 모든 것을 독식하는 사회가 되었다. 돈은 물질이고 부는 상태이며 권력, 명예, 자유는 가치다. 그러나 돈만 있다면 이 모든 걸 가질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다들 돈을 외친다. 


돈을 향한 맹목적인 '샤라웃' 속에 중요한 가치들은 우르르 무너져 자취를 감춘다. 앞서 말한 명예도 마찬가지다. 명예가 정확히 뭘까? 네이버 사전에서 명예를 검색해 보면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라는 뜻이 나온다. 명예로운 사람이라면 세상이 인정하는 품위를 갖고 있단 얘기다. 여기에서 품위는 꼭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거나, 돈이 많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답게 행동하면 말이다. 하지만 돈이 우선시 된 사회에서 이런 품위는 쉽게 자취를 감춘다. 누가 됐든 돈만 많으면 형님이 되고 워너비가 된다. 공경보단 보이는 것에 대한 선망이 먼저고, 잘못된 부분이 있어도 광고를 쓰든 바이럴을 하든 돈으로 막으면 그만이다. 돈은 현 세상에서 생각과 가치관 마저 바꿀 유능한 교환의 수단이자 비난과 비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콘크리트형 수호벽이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의 취향이나 성향에도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 요즘 지인들과 이야기하면 "예전에는 사람들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해서 숨겼던 걸 너무 드러낸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전이라면 저질스럽고 노골적이다 저어했을 캐릭터들, 인물들이 콘텐츠 산업 전선에서 각광받고, 어그로를 끌어 누가 상처를 받건 모욕을 얻건 높은 조회 수로 광고비만 벌면 그만이다.(그리고 기업들은 이런 계정들이 '파급력'이 있단 이유로 콜라보와 협찬을 제안해 일종의 지지를 표명한다) 표현의 자유를 건드리려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표현의 자유를 (주로 약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표현할 수 있는 권력이라 착각하고 이를 '너무'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이런 행태가 돈이 되는 걸 보고 모두가 뛰어드니,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이 전달받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면 "그럼 넌 돈 싫어? 너도 돈 좋잖아!" 하며 반응하는 사람, 꼭 있다. 맥락에 안 맞을뿐더러 너무 일차원적인 반응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주는 이기를 모르지 않다. 오히려 너무 선명하게 느껴서 욕지기가 들 정도니. 캥거루족을 포함해 사회의 변화하는 흐름, 분위기를 이야기할 때마다 강조하고 싶은 건 하나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건지, 이게 정말 우리들의 생각이 맞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무엇을 생각해봐야 하는 건지. 앞서 말한 대로 정확히 언제부터 이런 흐름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사회에 만성화되는 게 두렵다. 누군가 돈 대신 가족의 사랑, 인간다움, 양심, 예의가 더 중요하다고 얘기하면 뻔한 얘기라고 귀만 파면 다행이지, 꼰대 혹은 선비질한다 손가락질하며 캡처해서 조리돌림하는 사회가 된 것 같아서. 그게 무섭다. 한 영화에서 "가오가 없냐, 돈이 없지"가 유행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우리가 돈이 많으면 뭐 하냐, 가오가 없어 쪽팔려 죽겠는데.


창피함을 알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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