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생각보다 더 따뜻할지도.
2011년 - 페이스북
2012년 - 다음 카페, X(구 트위터)
2014년 - 블로그
2016년 - 인스타그램
2020년 - 유튜브
2024년 - 위 모든 플랫폼
시대가 내놓은 플랫폼을 모두 사용하고 있는 내게 온라인 세상은 어쩌면 오프라인 세계보다 더 가까운지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 대부분 인구가 플랫폼을 접한 시기만 다를 뿐 대체로 비슷한 양상을 보일 거라 짐작한다. 다만 초등학생 땐 의무적으로 컴퓨터 수업을 들었으며 중학생 땐 핸드폰을 갖는 게 당연해졌고, 고등학생 땐 멀티미디어 기능이 탑재된, 현재 태블릿 PC의 원형인 PMP를 사용했고 성인이 되고 난 후엔 문자가 아닌 카카오톡을, 기성 언론이 아닌 SNS를 통해 정보를 획득하게 된 세대로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격동의 전환을 고스란히 경험한 세대라 자평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빠르게 변화하는 홍보업에서 근무한 이력도 이런 전환에 더욱 빠르게 적응하게 한 요인이었다. 사회 초년생 때 홍보대행사에서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근무하며 블로그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인스타그램에서 유튜브로 돈과 사용자가 움직이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했고 마케팅에 온라인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단 사실을 절감했다. 현업 마케터로 근무하는 지인들도 전공 때 자주 듣던 지면 광고나 TV 광고는 이야기하지 않고 포털 검색 광고, 온드 미디어 광고를 얘기하는 시대고 곧 인공지능을 도입할지를 고민하는 시대니 더 말해 뭐 하겠냐만.
다만 이런 변화로 인해 우리는 온라인 속 삶이 우리의 진짜 삶이라 믿을 때가 많다. 게임 폐인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며 온라인에 갇혀사는 사람들을 걱정하던 건 옛말이 됐고, 지금처럼 모두가 SNS 속 가짜뉴스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댓글 속 의견을 절대다수의 여론처럼 받아들이는 상황에선 누구도 온라인 세상에서 거리를 둬야 한다 소리치지 않는다. 되려 알고리즘으로 양분화된 의견을 자신의 이익이 되게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되풀이하고 구독자를 소처럼 몰고 가는 이들뿐.
나 역시 이들 중 한 명이었다 해도 할 말은 없다. 온라인에 글을 쓰고 여러 콘텐츠를 소비하며 은연중에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사회에 영향력을 지닌 정치인, 기업가 혹은 연예인 등이고 그걸 따라가는 게 대세이자 손해 보지 않는 방법이라고. 세대 간 갈등은 우리가 손쓸 수 없게 너무 심해져서 서로는 다른 세대를 전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의지도 갖지 않는다고. 개인들은 손쉽게 시류에 휩쓸리고 이른바 '냄비 근성'에 따라 화내야 할 일도 금방 잊고 말 거라고. 하지만 지난주부터 시위를 참석하며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들, 마주한 상황들로 명징히 느낀 건 위와 완전히 반대였다. 2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며 잘못된 결정을 바로 잡았고, 그 대의와 메시지는 무엇보다 선명했다. 시위 내내 앞뒤에 앉았던 부모님 뻘 되는 어른들은 우리가 추울까, 배고플까, 지칠까 쉴 새 없이 핫팩과 먹을거리를 전해주셨고 집에 가는 길엔 어쩌다 시위에 참석하게 됐는지를 호탕하게 설명하시며 웃음을 주셨다.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세월호, 이태원 참사의 아픔을 잊지 않았고 그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나섰노라 얘기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건 나와 다르지 않은, 내 옆에 항상 자리했던 수많은 일반인이다'라는 걸 나는 오프라인 세상에서 느끼고, 배웠고 되새겼다.
시위가 끝난 후 밥을 먹으러 가는 길, 200만 명의 인파가 지나간 거리는 더럽다고 생각할 만큼 쓰레기가 널려있었다. 밥을 먹고 오는 길은 그 몇 시간 사이에 그 인파가 모였다 헤어졌다고? 싶을 만큼 모든 거리가 선명한 달빛에 깨끗이 빛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온라인에서 함부로 폄하하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해 포기할 만큼 나쁘지 않다는 것. 어쩌면 누군가는 그런 포기가 안타까워 더 노력하고 있을지 모르겠다만 그런 마음과 의지에 감사를 표할 정도로 며칠간 내가 본 세상은 놀랍도록 따뜻하고, 친절하고 다정했다. 그래서 자꾸 믿고 싶어 지고 그 따뜻함을 더하고 싶어 진다. 설사 잠깐의 감정에 따른 호의나 선의였대도, 나는 그 경험 한 번으로 세상을 더 좋게 보게 되었으니. 훈기 있는 집에서 바라본 온라인 세상보다 추운 겨울 사람들과 부대끼며 함께한 오프라인 세상이 더 따뜻했으니까. 온기가 나를 덥힌다. LED 화면이 아닌 창밖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