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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스테 Aug 07. 2020

먹고산다는 것의 비애

라면을 끓이며, 김훈

'라면이라는 주제를 가지고도 이렇게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 작가가 기록한 일상과 한국인의 삶에 관한 산문집이다. 그의 담론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다. 작가가 표현해 내는 글에서는 이미지가 연상이 되고 냄새가 난다. 그의 글은 간결하고 묵묵하고 담담하면서 힘이 있다. 뛰어난 관찰력이 있는 그의 글에서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등 온몸을 통해서 읽는 것 같다. 글에서 작가만의 힘이 느껴진다.

먹고산다는 것의 지겨움. 그는 라면을 끓이며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미군에게 얻어먹던 유년시절의 초콜릿 맛을 생각한다... 라면은 서민음식이며 소주의 술안주가 되기도 한다. 라면이 처음 나왔을 때는 1개 10원.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고 먹을게 넘쳐나지만 라면시장은 여전히 상승 중이다.

몇 편을 소개해 본다.

© wandervisions, 출처 Unsplash


<광야를 달리는 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쓴 글이다. 김훈 작가와 그의 아버지, 문인 김광주의 운명은 상당 부분 닮아있다. 운명의 바퀴란 건 분명히 있는지, 김훈은 아버지처럼 기자로 일했고 이후엔 소설가로 밥벌이했습니다.

'김훈 작가의 아버지, 김광주(1901~1973)는 소설가, 시인, 독립운동가, 연극인, 평론가, 번역가, 언론인 등으로 왕성히 활동했다. 특히 무협소설의 창작과 번역을 통해 한국 장르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넓힌 점에서 문학사적 의미가 크다.' (아시아 경제 2016년 5월 3일. 박종일 기자) '그의 생업은 신문기자이거나 소설가였는데, 밥을 온전히 먹을 수 있는 노동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당대 현실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설정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식민지의 종로 뒷골목에서 술을 배웠다'.(43쪽)


<정협지>는 100달러 이하인 시대의 허구적 로망으로 굶주림 속에서 찬란했다. 로망은 아편과 같았고 신기루와 같았다. 해마다 오뉴월 보릿고개에 농어촌에서 굶어 죽는 자가 속출했고, 겨울에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수백 명이 죽었다.' (46쪽) ' <정협지>에 대한 60년대 초반 대중의 열광에는 그 시대의 꿈과 좌절, 고난과 희망이 뒤섞여 있었다. 정(情)은 사랑과 인정이고, 협(俠)은 의로움이다. (..) 정과 협은 악세 惡世에 신음하는 대중이 갈망하던 세상의 모습일 터인데, 그 서럽고 간절한 꿈은 무협소설의 허구적 로망에 의탁되어 있었다. (48쪽)

작가의 아버지 문인 김광주는 경향신문에 <정협지>라는 연재소설을 썼다. 그 기간 1961년부터 1963년 정도인데 그때는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를 넘지 않는 시기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의 빈민국중 하나였다. 작가의 아버지 문인 김광주는 1910년에 태어나 중일전쟁 시기를 상해에서 보냈고 1945년에 임시정부와 함께 서울로 오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망해버린 조국에 대한 서러움과 그리움과 희망은 작품으로 났을 것이다.

작가가 중학교 시절 <허클베리 핀의 모험> 소설에 빠져있었는데 허클베리네 아버지는 작가의 아버지처럼 술주정뱅이에다가 돈은 안 벌어오고 집에도 안 들어오는 사내였습니다. 작가는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꼭 허클베리네 아버지 같아요'라고 하니 아버지는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볼 수 있겠느냐'라고 한다. 작가는 아버지에게는 말을 달린 선구자의 광야가 이미 없다는 것을 나중에 좀 더 자라서 알았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광야를 달린 것이 아니고 달릴 곳 없는 시대의 황무지에서 좌충우돌하면서 몸을 갈고 있었던 것이라고요. 아버지의 작품 <정협지>는 분명 김훈 당시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부패가 자리 잡을 때 아버지의 소설은 세계의 악과 대결하는 허망된 로망을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대통령이 외국에 나갈 때나 돌아올 때 학생들과 시민들이 동원되어 김포공항까지 환영, 환송의 인파가 동원되었다는 것을 회상합니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던 시기, 메머드급 권력 부패가 시작이 된 시기에 대한 글은 나의 빚진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돈 3>

아내 몰래 감추어둔 비상금을 찾는 글에서는 소탈함을 느낄 수가 있다. 퇴계의 초상이 새겨진 천 원을 보면서 기호와 실물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고 한다. 소박하다.


<서민>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이 서민의 흉내를 내가며 표를 달라고 애걸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진짜 서민'이니 '가짜 서민'이니 하고 싸우는 꼴은 그야말로 천민적이고, 그 싸움 속에서 정치 전체의 천민 근성은 확산되어 가고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왜 스스로 높은 귀족의 정신을 보여 주지 못하고 쓰레기통 근처를 얼씬거리면서 썅 소리를 해대는가.'(193쪽)


<손>

손에 연장을 쥐고 일을 해본 지가 너무나도 오래되었다. 연장을 쓸 일은 점점 사라져 간다. 손은 규격화되어가고 사물에 대해서 날의 힘을 작동시키는 기쁨도 점점 사라져 간다. 슈퍼마켓의 생선이나 고기는 이미 칼질이 끝나있고 망가진 가전제품은 전문가가 아니면 손을 댈 수가 없다. 손은 점점 퇴화되어 가고 있고, 확인될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세상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손은 이제 백수 白手다. (276쪽, 손 2중에서)

'작가는 내 몸이 허락할 때 나는 내 맘에 드는 글을 쓸 수가 있고 내 몸이 허락하지 않는 글을 나는 쓸 수가 없다. 지우개는 그래서 내 평생의 필기도구다. 지우개가 없는 글쓰기를 나는 생각할 수 없다. 지워야만 쓸 수 있고, 지울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므로 나는 겨우 두어 줄씩 쓸 수 있다. (263쪽, 손 1중에서)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에게 앞으로의 희망이나 계획을 물으니 김훈 작가는 '하루에 다섯 장씩만 쓸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고 한다. 많은 형용사와 부사들을 버림으로써 그의 글은 간결하고 그의 삶 또한 간결합니다. 그 무엇을 덧댈 필요도 덜어낼 수도 없다.

<고향>

사대문 안인 작가의 고향. 사대문 안에서도 청계천을 기준으로 남촌과 북촌을 갈랐는데 작가의 고향은 경복궁 근처인 북촌이라고 한다.. 한강철교와 한강 인도교 두 개 밖에 없었던 당시 옛 모습, 어린 시절의 북촌 사람들의 자부심, 서울의 풍경을 회상하는 장면은 당시 사대문 안 토박이의 서울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서울 사람들의 정체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퇴색되었지만 말이다.

'북한산과 한강 사이의 공간에 서울다운 합리성과 보편성을 건설하고, 서울다운 삶의 질감을 이루어내는 일이 서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이다. 북한산과 한강은 크고 또 넓어서 능히 만인의 고향이 될 만하다. 다들 서울로 몰려들어서 출신지 지역별로 정치적 패거리 작당을 한다면, 서울은 끝끝내 만인의 타향일 뿐이다. 한강은, 아직은 타향을 흐르는 강이다.' (326쪽, 고향 3중에서)

<잎>

'자작나무 숲은 가볍고 경쾌하지만 오리나무숲은 깊고 신중하다. 자작나무 숲에 내리는 봄비는 촐싹거리지만, 오리나무숲은 깊고 신중하다. 잎의 크기와 억세기가 다르기 때문에 비를 맞는 소리도 다르다.' (361쪽. 잎 중에서)

글을 통해 구례 화엄사의 숲 명상 템플스테이의 기억을 떠올린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에서 나뭇잎들이 시원한 바람, 청량한 숲의 냄새, 계곡의 물소리를 온몸으로 느꼈던 템플스테이. 글의 힘이다.


'이제, 함부로 내보낸 말과 글을 뉘우치는 일을 여생의 과업으로 삼되, 뉘우쳐도 돌이킬 수는 없으니 슬프고 누추하다. 나는 사물과 직접 마주 대하려 한다.' (작가의 말 중에서)

독서가 내 몸 전체를 통과하는 느낌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작가의 지혜를 내 삶에서 축적되어 쌓여 내 삶에 녹아내려야겠다. 심금을 울리는 책이다.



<추천>

라면이 땡길 때

힘 있는 글을 만나고 싶을 때

김훈 작가의 팬이라면

독서가 내 몸을 통과하고 싶을 때



(블로그의 독후감 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을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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