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맞아요?

아무도 믿지 않는 깨발랄한 자의 우울증 고백

by TalChuRee


ENTJ. 사람들을 통솔하기 좋아하고, 리더십이 있으며, 외향적이고 이성적인 관리자형. 플래너와 다이어리를 사서 계획 세우기를 좋아한다. 리액션 장인이라는 별명 덕에 사람들은 나와 같이 있으면 즐겁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말하면 모두들 하나같이 놀란다. 심지어 이 글을 함께 쓰는 기획자분조차도 우울증이 맞으신지 조심스레 여쭤보셨다. 사유는? “너무 멀쩡히 활동하고 밝아 보여서” 아마도 건강해보인다는 뜻일것이다. 정말 우울증이 맞느냐고 물었다.



나도 가끔은 헷갈린다. 왜 이런 상태가 되는지, 정확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혼자 있을 때다. 혼자 있으면 너무 힘들고 우울하다. 무기력과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심할 때는 나흘 동안 씻지 못한 적도 있다. 지금은 약을 꾸준히 먹고 있어서 그때보다는 많이 좋아진 상태다.


이런 모습을 가족들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참고 또 참다가 결국은 무기력한 모습이 터져버려서 방에 덩그러니 누워 잠만자고 있으면 아들이 묻는다.



“엄마 어디 아파?”

“엄마가 머리가 아파서 그래.”

“왜?”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멈춘다. 이 아이에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까 감이 안잡혀서. 대신 이렇게 말한다.


“엄마도 잘 모르겠어. 그치만 너 때문은 아니야. 약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엄마 좀 쉴게.”

‘엄마 좀 쉴게.’


이 말을 입 밖으로 내기까지 나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이렇게 긍정적이고 밝은데 뭐가 우울하냐고. 매일 통화하다시피 하는 취업 상담 선생님도 믿질 않으신다. 니가 한 번씩 가라앉고 힘들어하긴 하지만 대체로 의욕이 넘치고 활발한 아이인데라고.



그러면 나는 또 설명하고 설명해야한다. 내가 어떻게 우울증인지 ‘증명’해야만 한다. 같이 있을 때는 괜찮은데, 혼자 있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고. 어떨 땐 버스안에서 가만히 출근하는 길에 눈물이 난 적도 있었다.

우울증은 늘 축 처져 누워 있는 상태만은 아니다. 약을 안 먹으면 내 안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가슴이 답답하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진다. 누가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상태가 된다.



나조차 나를 통제하기 어렵고, 숨이 막혀 심장을 두드려 봐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심하면 이게 공황장애인가 까지 의심하게 될 정도였는데 정말 그럴 땐 몸을 웅크리고 아무것도 안하기도 했다. 이불 속에 베개를 끌어안고 있으면 정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난 평온해질 수 있으니까.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멀쩡하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도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 언제나 웃고, 리액션을 하고, 대화를 이끈다. 아마 같이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 그리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이 나도모르게 작동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을 만나러 가기 전까지의 시간이 너무 힘들다. 누군가는 게을러서, 의지가 부족해서, 심지어 엄마는 너무 배부른 소리라고까지 헀다. 절박하지 않아서 그런거라고. 지금 살만하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거라고. 그 말이 내 가슴을 깊이 찌른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런식으로 사는게 의미가 있는건가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 때가 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살아 있다는 감각 자체가 희미해질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나를 살려보려고 약속을 잡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결국 당일에 취소해버렸다. 바보같은 내 모습에 엉엉 울기도 했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기억력도 떨어진다. 어떻게든 괜찮아져보려고 좋아하는 지인에게 먼저 사정해서 약속을 잡아놓고 까맣게 잊어버려 상대방을 한 시간이나 기다리게 한 적도 있다. 친했던 언니는 내게 불같이 화를 냈고 우리는 그렇게 인연이 끊겼다. 내가 우울증이라서 그래. 라고 설명하기도 말하기도 지치는 시간들. 그 뒤에는 끝까지 나를 붙잡는 자책감과 무력감, 왜 이것밖에 되지 않는지 정말 내가 배가 불러서 그런건지 나도 이제 나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굴레의 연속이다.



약속을 잊지않은 날에는 씻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겨우 씻으려고 마음을 먹으면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화장실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화장실 문을 통과하면 반은 성공이다. 기계적으로 씻고 옷을 입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사람이 된다.



그렇게 밖에서 한참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몸은 점점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진다.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오면 그제야 무너진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하루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회사에 다닐 때는 하루하루 출근이 고역이어서 병가를 낸 적도 꽤 있었다.




그래도 다음 날이 되면 살아야지, 살아 내야지 하고. 나는 다시 웃고, 말하고, 사람을 만난다.
그래서 같이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아니 어쩌면 같이 사는 사람조차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이 우울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