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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행성 Aug 03. 2021

낭만적인 현실주의자, 잔나비를 따라 환상의 나라로

끝이 있는 사랑을 노래하는, 잔나비의 세 타이틀곡 톺아보기


낭만, 사랑, 환상


잔나비의 새 앨범이 탄생했다. 그 이름도 잔나비스러운, 정규 3집 <환상의 나라>다. 앨범 커버부터 아트워크까지 동화나 상상 속에서 그려봤을 법한 왕국을 연상시킨다. 수록곡을 따라가다 보면 낭만적인 뮤지컬 한 편을 본 듯도 하고, 웅장한 테마파크에 온 듯도 하다. 현실에 밭붙이고 사는 우리들을 환상의 나라 어디쯤으로 데려가는 가사와 음률들, 이것이 가히 잔나비의 힘이다.


그런데 잔나비의 노래들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이번 앨범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사랑이 우리를 환상의 나라로 데려가기도 하지만, 동시에 언젠가 깨어나와야 할 낭만임을 계속해서 노래한다. 그 때문일까. 잔나비의 노래는 언뜻 아름답지만 곱씹을수록 잔잔한 슬픔이 느껴진다.


그들은 왜 곧 부서져버릴 사랑에 대해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일까? 그들이 찾는 낭만이란 무엇이길래 우리를 웃고 울게 하는 것일까? 지금부터 잔나비의 세 타이틀곡을 짚으며, 함께 따라가 보자.




1.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 2016
사랑과 낭만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던 어린 시절이 있는가?


잔나비에게 사랑은 낭만을 대변하는 소재다. 어쩌면, 낭만 그 자체다. 그래서 잔나비의 사랑은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랑'이다. '내 모든 걸 주고도 웃을 수 있었'던 것처럼, 이것저것 재지 않고 다 내어줄 수 있음에 기뻐하던 성실한 사랑이다. 마치 그 사랑이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적이리라 믿었던 사랑에는 결국 끝이 존재한다. 한 때 뜨겁고 낭만적이었던 사랑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깨어나고 나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볼품없기 마련이다. 꿈꾸던 동화나라가 사실은 가짜라는 것을 자라나면서 알게 된 어린아이의 심정은 얼마나 초라한가? 우리 모두는 그런 어른들로 자라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우리가 잔나비의 노래에서 희망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의 아픔에는 늘 기쁨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을 통해 우리는 사랑을 아름답게 떠나보내는 법을 배운다. 그들은 결코 슬픔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볼품없는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담아둘 것을 다짐한다. 그래야 그 자리에 꽃이 피고,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음을 깨달았기에.


사랑과 낭만은 결코 영원하지 않지만, 그 사실이 주는 아픔조차도 있는 그대로 간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 2019
엔딩이 있는 모든 사랑은 아름답다


끝이 있음을 알고도 시작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사랑의 최대 난제는 대부분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도, 외면하고 시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 사랑의 엔딩이 언젠가 내 눈앞에 펼쳐질 것임을 말이다. 누군가는 그 끝을 늦추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별의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냉정하게 돌아서버리기도 한다.


잔나비는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에서 최선을 다한 사랑에도 끝이 있음을 배웠다. 그 사실을 깨달은 사람의 다음 사랑은 더 이상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잔나비는 좌절하지 않는다. 되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에서 역설적이게도 끝을 이야기하며 사랑을 시작해보자고 노래한다. 이별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끝이 있다는 사실이 사랑을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기에, 바보처럼 '또 한번 영원히 새활짝 피었다 지기'를 다짐한다. 이별 역시 사랑이라는 긴 영화의 일부라면, '서둘러 뒤돌지' 않고 '서로의 안녕을 보는' 이들의 마지막 씬은 가히 해피엔딩이다.


낭만이고 사랑이고 그곳에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이 결코 슬프지 않음을, 우리는 잔나비의 노래를 듣기 전부터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3. 외딴섬 로맨틱 - 2021
존재하지 않는 낭만을 향하여, 함께 떠나자


사랑은 정말 깨어질 낭만에 불과할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낭만은 허황된 꿈일 뿐일까?


<외딴섬 로맨틱>에서 한 연인은 무언가를 찾아 외딴섬으로 떠내려 간다. 하지만 이 노래 어느 곳에도 '무엇을 찾았다'거나, '어딘가에 도착했다'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길을 잃고 헤매고, 심지어 '거긴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계속 갈 뿐이다. 그럼에도 멜로디와 가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단연코 기쁨이다.


잔나비가 노래하는 사랑은 강하다. 그리고 그 사랑은 <외딴섬 로맨틱>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지난 앨범에서 살펴보았듯 모든 걸 받고도 떠나버린 사랑, 끝이 있음을 이미 알았던 사랑 모두 결국은 우리를 떠났고 떠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노래의 연인은 아무것도 없는 외딴섬을 향해 손을 잡고 힘차게 나아간다. 목적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노를 저으면 그 소리'에 집중하듯 사랑은 과정이고 또 과정이다.


보잘것없는 서로의 낭만에 기꺼이 함께 가주는 것,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할 순간 '웃으며 고갤 끄덕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건 낭만이건 끝이 있는 환상임을 인지하는 것은 잔나비의 노래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거친 현실 속에서 여전히 낭만을 간직하는 것은 우리의 남아있는 믿음임을, 그리고 거기에는 튼튼한 사랑이 필요함을 그들은 노래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잔나비의 이런 낭만을 노래하는 방식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의 모습이기에 말이다. 환상의 나라가 저기 어디쯤에는 있다고 믿으면서 살아가고 싶은 우리. 존재하지 않는 낭만일지라도, 모른 척 함께 가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우리. 어린아이처럼 다시 한번 사랑의 영원함을 믿고 싶은 우리.


결국 잔나비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사랑은 구름 넘어 환상은 아니지만, 멍청한 믿음은 좀 필요로 해.'

-<용맹한 발걸음이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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