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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행성 Mar 07. 2023

앙버터가 흉터가 되었을 때

한 사람이 나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작은 기스가 남는다

비엔나를 떠나기 하루 전, 친구에게 앙버터를 만들어주려고 직접 고아 만든 앙금을 챙기고 바게트를 샀다. 커다란 빵칼로 바게트를 톱질하듯 썰었는데, 위치를 잘못 잡아 검지손가락 안쪽을 톱날로 베어버리고 말았다. 소스라쳐 칼을 놓았으나 이미 피는 철철 나고 있었고 살점은 떨어져 손가락엔 움푹 파인 상처가 1자 모양으로 길게 나있었다.

그 순간에도 이게 흉이 질까 궁금했다. 아무도 앙버터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적은 없는데. 내 인생의 계획에서 이날 이 순간 앙버터를 만드는 것은 불과 2시간 전까지만 해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 옵션이었는데. 타지의 친구에게 팥이 들어간 빵을 먹이고 싶다는 순간의 선의가 평생 손가락에 지워지지 않는 선으로 새겨진다 생각하니 우스웠다. 흉이 남으면 남은 대로, 볼 때마다 비엔나의 우스웠던 앙버터를 기억할 거라 생각하니 나쁘지 않았다.

결국 어떻게 되었나. 1자 모양의 상처는 잘 아무는 듯 싶다가 희미한 흉터가 되어, 나무책상을 자로 긁은 것 같이 하얀 선으로 남아 나로 하여금 계속 그 자리를 긁어보게 만든다.​


오늘 엄마에게 눈썹 정리를 맡기다 칼날에 이마 부분을 스치듯 베였다. 마찬가지로 흉이 날까 걱정부터 앞섰다. 어쩐지 화가 나 거울을 열 번, 스무 번 확인했다. 검지손가락의 상처와는 비교도 안되게 작고 얕은 상처였음에도, 이 상황을 전처럼 시원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음의 차이일까, 대상의 차이일까, 의도의 차이일까.

한 사람이 나를 스치고 떠나갈 때마다 작은 기스들이 남는다. 그들이 모두 사포 같은 존재들이라 매 순간 내가 맨들맨들해지면 좋으련만. 사람은 사포보단 송곳에 가깝다. 베일 수록 거칠거칠해질 뿐이다. 피부를 가깝게 스쳐 지나갔던 빵칼처럼, 면도날처럼. 그러나 상처의 깊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 흉터를 어떻게 안고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기꺼이 흉질 각오를 지니는 건 생각보다 중요한 결심일지 모른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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