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breath becomes air> - 폴 칼라니티, 자서전
신경외과 의사인 폴은 서른여섯 젊은 나이에 폐암 진단을 받고 이렇게 말한다.
"저에게 시간이 2년 남았다면 글을 쓸 겁니다. 10년이 남았다면 수술을 하고 과학을 탐구하겠어요."
숨결이 바람이 될 때까지, 그는 죽음 앞에서 의사로서의 소명을 지키고 가족을 돌보며 글을 써내려 간다.
Recommenation
- 죽음이 무섭고 허무하게 느껴질 때
- '내 직업의 소명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사람에게
-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실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폴은 주 120시간 이상을 일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정상의 자리에 오른 외과의사 레지던트였다. 폐암 진단을 받고 자신의 죽음이 실체화 되었지만, 그는 도피하지 않고 수술을 집도하며 치열하게 삶의 업적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생과 사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으며,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폴에게 벌어진 일은 비극적이었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 -p453
폴과 그의 아내 루시는 아이를 가지려는 계획도 세운다.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아내가 괜찮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미래를 준비하는 폴의 모습과, 폴이 죽음 직전까지 조금이라도 평안한 현재를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루시의 모습에서 죽음이 빚어낸 사랑의 형태를 보았다.
"폴은 세상을 떠났고 나는 거의 매순간 그가 사무치게 그립지만, 우리가 여전히 함께 만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p454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으로 사라져도, 그의 모습은 언제까지고 남아 우리의 삶과 함께 나아간다는 사실. 죽음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기에, 죽음은 결코 사랑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폴이 가진 소명의식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준다. 그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연봉, 근무환경, 근무 시간을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원하는 생활방식에 중점을 두고 선택하는 건 직업이지, 소명이 아니다." -p156
폴이 가진 의사로서의 소명은 환자를 죽음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환자라는 '인간'을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했으며 병이 환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있었다.
"레지던트로서 내가 꿈꾸었던 가장 높은 이상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누구나 결국에는 죽는다), 환자나 가족이 죽음이나 질병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p191, 341
나는, 우리는 과연 폴과 같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가? 비단 직업이 아니더라도, 내가 소명으로 삼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가?
폴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택한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는 언어의 힘을 믿었고, 폴의 문장을 통해 문학이 우리 삶에 주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과학은 경험적이고 재현 가능한 정보를 체계화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과학의 능력은 역설적으로 인생의 가장 중심적인 측면들(희망, 두려움, 사랑, 증오, 아름다움, 질투, 명예, 나약함, 부단한 노력, 고통, 미덕)을 포착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p348
과학은 왜 인간관계에 대한 정답을 내려주지 못할까? 최근 한 유튜브 영상에서 '우리가 인문학을 읽는 이유'에 대해 본 적이 있다. 과학은 통제가능한 환경에서 반복된 실험을 통해 정답을 내려주지만, 인간은 누구나 처한 상황이 각자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과학으로 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말 그대로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과거부터 축적되어온 인문학이라는 거대한 오답노트(혹은 정답노트)를 통해서만, 우리는 인간에 대한 빅데이터를 스스로 체득하고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