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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slie Mar 30. 2021

영화 디아워스를 보고

시간은 흐른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0. 그 날은 어느 날과 같은 일상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었고 별다를 것도 없었다. 하지만 달랐다. 일과를 마치고 방안으로 들어섰을 때 느꼈던 공허함. 침대에 앉아 눈에 보이지 않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느낌. 뭐랄까.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 때일까. 조금이나마 우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현실이라는 것이 그렇다. 삶의 염증을 느끼는 순간을 예기치도 못하게 맞닥뜨렸을 때, 나는 허둥거렸고 방향을 잃었다.


1. <디 아워스> 는 그 때의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우울하기 짝이 없는 영화가 위로가 되었다니. 이상한 희열감이다. 세 여성은 결정적인 하루, 단 하루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 매개는 '댈러웨이 부인' 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댈러웨이 부인> 을 로라가 읽고, 클라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고독한 인간상. 결과적으로 그들을 연결하는 이 예술적 연결고리가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고 할까. 굳이 누구와 연결된다는 의식 없이 각자의 고독감과 고통을 통해서 서로 느슨하게라도 줄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 그 질서와 규칙을 <디 아워스> 는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디 아워스> 는 참 아름다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정체성을 넘어서, 시간을 넘어, 유동적으로 흘러 다니는 것들. 합치와 분리의 반복. 그것들을 통한 확장한다. 이는 버지니아 울프의 주인공을 나타내는 양식적 표현을 빌어 쓴 것 같기도 하다. (필립 글래스의 미니멀한 음악도 한 몫. 이토록 시너지를 잘 낼 수 있는 경우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디 아워스> 가 보여주는 주인공들은 삶을 대면한다. 현실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자살을 결심하고, 공허한 눈빛을 보이는 가운데 그들은 나름대로의 현실을 일상의 의미로 치환하고자 하는 대면 방식을 갖는다.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그것에 대한 책임. 다시 말해 '삶'에 대한 책임. 이는 끝까지 결론 짓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그들은 나름의 고통으로 아파한다. 그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다면 - 과연 그 누가 그들의 선택에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그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지 않을까.


2. 일상의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삶에서 피해갈 수 없는 관계들을 맺으며 살아간다. 불확실성은 모호함을 낳고, 모호함은 불안감을 낳는다. 그 불안감은 자기 자신의 방어기제로 때때로 표현되기도 하며, 그 방어기제는 전혀 의도치않게 상대에게 생채기를 남긴다. 결국 그 생채기는 부메랑처럼 돌아와 큰 응어리를 남긴다. 그런 의미에서 <쇼코의 미소> 속의 7편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응어리와 생채기를 갖고 후회하고 응시한다.


살아가며 '의도치 않게'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관계. 그리고 그 관계의 급작스러운 단절 혹은 죽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빛을 피울 수 있는 존재는 인간이다. 새로운 유대와 공감, 그리고 재생.  그렇기에 소설 <쇼코의 미소> 역시 아름답다. 제각각의 담담한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어루만짐은 배려깊었고, 미온하게나마 온기를 지닌 손길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조심스럽게 덧붙이고 싶은건, 무조건적인 '유대' 에 대한 회의감이다.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누군가에게 섣불리 말하는 '너를 이해해.' 가 한편으로는 어떠한 폭력이 될련지. 그 지점에 대한 고민은 한단계 앞서서 선행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무책임적 선의로만 남겨질지도 모른다. 남겨진 자인 로라의 삶처럼 말이다. 그보단 서늘하지만 진심 담긴 유대가 오히려 필요하다.


3. 시간은 흐른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그 속에서 남겨진 자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이들. 그들이 살아내야 하는 것들. 즉 현대 사회에서 일상이란 싫증난 게임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의 간헐적인 어긋남들은 윤리적 기준 이전에 삶을 지속하게 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란, 때때로 무의미의 견디기 버거운 것임을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된다.


그러나 결말을 맺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이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를 만약 묻게 된다면, '버지니아 울프' 와 '스티븐 달드리' 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파티란 어제와 상관없이 일단 오늘을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그렇기에 다시금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꽃을 사러 나갈 것이라고.


(2017년의 기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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