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마워숲 Jun 17. 2022

엄마의 마음까지 개운해지는 소창 행주

편리함을 줄이다






누군가 나에게 갑자기 "가장 싫어하는 게 뭐예요?" 또는 "가장 하기 싫은 일은 뭐예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정말이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살림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살림이 쉬워진다길래 유명한 살림책도 사보고, 소유한 물건의 양이 적어지면 살림이 쉬워진다길래 미니멀리스트가 되려고도 해봤다. 실제로 많은 양의 물건을 비웠고 예전보다 관리의 시간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나에게 살림은 개학 전 날 방학숙제 같은 것이다.


 특히 나는 청소 하던 중에 생긴 오염물질을 닦아낸 걸레나 행주의 뒷처리가  싫은 사람이었다. 걸레라는 용도이지만 깨끗했던  상태가 더러워지는  무서워서 청소를 꺼려라는 이상한 습성(?)같은 것이 있었다. 이런 습성은 청소를  미루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했다. 이런 요상한 습성때문에 물티슈 청소포,일회용 행주, 빨아쓰는 종이타올  한번씩은  사본 경험이 있다. 그런데 그럴때마다 몸은 편해도 마음이 불편했다.   청소포 한장을 쓰레기통에 넣을 때마다  마음에도 쓰레기가 한장씩 쌓이는  같았다.






아이가  태어났을 즈음, 살림팁,청소팁을 자주 올리는, 그래서 청소관련 도서까지 출간한  블로거가 습식청소포를 공구한 적이 있었다. 고양이  마리와 신생아가 함께 살아야 하는 공간이라는 부담감 같은게 있었던 모양이다. 남편과 , 그리고 고양이 두마리가  때보다 왠지  청결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같았다. 그래서 공구하는 습식청소포  박스를 덜컥 사버렸다. 한박스는 10 정도의 습식청소포가 들어있었다. 남편은 밀대에  습식청소포를 꽂아서 매일 바닥을 닦았고, 한번 청소할때 두장의 청소포를 사용하는  했다. 남편은 닦고 그냥 버리면 되서 걸레보다 편하다는 말도 가끔 했었다. 마음 한켠이 찜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청소를 대신 해줄  있는 상황이 아니라 그냥 그러려니 넘겨버렸다. 아이가 태어나자 없던 아이 살림이 늘어서 안그래도 작은 집은 금방이라도 물건을 뱉어낼  같았고,미니멀리스트들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안의 물건들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창고같았던 작은방을 정리하다가 눈에  습식청소포 박스.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들었고, 젖은 내용물이 오래 보관되는 것도 왠지 찜찜했다. 이렇게나 많이 사는  아니었다. 습식청소포는 6개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바로 사진을 찍어 중고마켓에 올렸다. 내가  가격보다 조금 저렴하게 6개를 모두 판매했다. 내가 안써도 결국 누군가가 써서 쓰레기가 되야하는 청소포였으니 그냥 내가 계속 써도 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조삼모사 같은 느낌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그냥 계속 사용했다면 나에게 청소포를 구매한 사람이 사용한 청소포+내가 사용한 청소포 쓰레기가 생기는 것인데, 내가 사용을 중단하고 중고로 판매하므로써 나에게 구매한 분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만 생기는 것이니, 조금은 쓰레기를 줄인 거라고, 구차해보여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지 않은가, 이런 일을 겪고도 그 이후에 나는 또 일회용 행주를 사는 실수를 저질렀다. 행주에 그렇게 세균이 많다는 얘기에 혹해서 일회용 행주를 샀지만 역시나 쓸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서 아직도 우리집 싱크대 한켠에 있다. 그나마 다행인건 지난번 일회용 청소포만큼 많이 사지 않았다는 거랄까



일회용 행주를 사놓고 쓸 때마다 죄짓는 기분이 들던 그때 즈음, 말만 들어봤지 써본 적이 없던 그 소창행주를 선물 받았다. 소창행주는 처음에는색도 누렇고, 재질도 약간 빳빳한 느낌이라  한번 삶아내는 '정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도 함께 전해들었다. 행주를 삶는 행위는 사실 나와는 거리가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왠지 프릴이 달린 하얀 앞치마를 맨, 살림 만랩 그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프릴은 커녕 무지 앞치마도 입지 않지만, 살림은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지만 일회용 행주를 계속 쓸수 없는 이상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빨래삶는 솥을 검색해봤다. 이왕이면 나도 예쁜 살림을 들이고 싶었다. 어떤 살림책에서 본 살림이 좋아지기 위한 방법으로 취향에 맞는, 이왕이면 예쁜 물건을 이용하라는 내용을 봤던 기억이 났기 때문.

어떤 것으로 살지, 그래봤자 빨래삶는 솥이 비싼 것도 내키지 않았기에 빨래 삶는 솥을 결정하기까지도 2주나 걸렸다. 솥의 모양보다는 물을 붓고 들고 옮기기 편한, 그리고 튼튼해보이는 스테인리스 잼팟을 샀다. 어차피 행주만 삶을거니 너무 크지는 않아도 될듯 했다. 그렇게 나는 살림은 싫어하지만 행주를 삶는 여자가 되었다. 과탄산소다를 넣고 폭폭 삶아 햇볕에 말린 행주는 새것처럼 깨끗했다. 행주에 얼굴을 파묻고 냄새를 맡았다. 삶은 빨래의 상쾌한 향이 났다. 더러워진 행주가 마치 사용하기 전 처럼 깨끗하게 변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고나니 청소 후 더러워진 걸레나 행주를 보는 것이 예전처럼 불편하지 않다. 다시 새것처럼 새하얗게 원래의 모습이 되는 삶은 소창 행주처럼, 지구의 대기도, 물도, 땅도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북 수상을 감히 꿈꾸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