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아픈 지구를 위해
며칠 전 있었던 브런치북 공모전 마감일, 10월 24일. (아마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날짜 이리라)
10월 22일-24일은 남편과 함께 요즘 핫하다는 여의도의 새로 생긴 백화점에서 우리의 가구를 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행사가 있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25일은 아파트에 입주를 하는 날이었다.
백화점 행사는 백화점 영업이 종료된 저녁 8시 이후부터 철야를 하며 셋팅을 한다. 행사종료일에도 마찬가지로 영업이 끝난 8시30분 이후부터 정리에 들어간다. 아직 직원이 없기에 오롯이 남편과 내가 해야할 일이었다. 나에게 10월 22일 23일 24일은 순간 삭제될 그런 날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브런치 마감일에 맞춰 내지 않고 미리 응모를 해도 될텐데, 브런치 북 공모전에 간절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말 도무지 엉덩이 붙이고 앉아 쓸 시간이 부족했던 10월이었다. 아무튼 10월 21일 기준 브런치북 공모를 위해 하나의 주제로 써내려간 글은 글은 10개였다. 10개부터 브런치북 발행이 가능하니 문제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브런치북 발행을 위해 챕터별로 목차를 정리하다보니 처음 구성보다 꼭지가 많아진 챕터가 있는가하면 하나의 챕터라고 하기엔 글이 고작 2개뿐인 것도 있었다. 게다가 맺음글이라고 할 수 있는 글도 없었다. 내 브런치북의 구성은 글만 있는 게 아닌 글과 관련된 그림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글만 쓴다고 끝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 고민이 됐다.도무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시간이 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10대 시절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책에 파묻혀 사는 타입은 아니었다. 언어영역을 잘했지만 그렇다고 작문을 잘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굳이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고 브런치북 공모전에 도전하려고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지구를 덜 아프게 하고 싶어서’ 였다. 평범한 내가 전하는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닿게 하려면 책이라는 도구가 필요할 것 같았다. 내가 가진 그림 그리는 재능을 지구를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년 초였을까?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1가지를 100%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70% 잘한는 것이 2~3가지 있는 사람이다.’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아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고, 지구를 위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싶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이것 역시 내가 잘하는 분야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던 시기였다. 100이 아니어도 된다는 그 글을 보니 왠지 할수 있을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내년쯤 그림 에세이책을 낼거야.’ 그 시기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제로웨이스트 그림에세이책을 낼거라고, 정말 밑도 끝도 없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했었다. 그래도 뱉은 말에 책임은 져야겠다 싶어서 작년 5월 제로웨이스트를 주제로 그림 계정을 만들고, 브런치 작가신청을 하고, 탈락하고, 주제를 바꿔 작가신청을 하고 또 탈락하고, 다시 제로웨이스트 주제로 목차를 만들어 신청해 브런치 작가 승인이 났다. 브런치 작가 승인 된 것은 그림계정을 만들고 딱 1년 뒤인 올해 5월이었다. 혼자서 글을 쓰다보니 주기적으로 발행을 하지도 않았고, 초고를 무슨 장 묵히듯 묵히기도 했다. 그러다 독서모임 리더가 리딩하고 있는 글쓰기 프로젝트에 신청해 함께 쓰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목요일 밤마다 줌에서 모여 어떤 글을 쓸지 얘기하고 2시간동안 글을 썼다. 아이를 재우느라 늘 30분씩 늦게 줌에 접속했지만 그래도 대부분 빠지지 않고 그 시간을 즐겼다.환경적인 글을 쓰다보면 왠지 잔소리만 하는 참견쟁이의 글이 될까봐, 그러면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늘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그런데 함께 글쓰기를 하다보니 초고에서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게 되고 그러면 한번 정제된, 화를 덜 내는 그런 글로 수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주에 한 꼭지씩 차곡차곡 내 글이 늘어가면서 같이 글을 쓰는 멤버들이 제로웨이스트 용품에 관심을 갖거나, 내가 올린 채소요리 레시피를 따라해봤다고 해주면 그게 너무 좋았다.작년에는 막연히 책을 낼거라고 생각만 했지 사실 꼭 책을 내지 않아도 큰 일은 아닌, 그런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부족하지만 내 글이 꼭 책으로 나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면 하는 강함 바램이 생기고 말았다. 그로 인해 채식을 한끼라도 더 늘리는 사람이 조금 더 생기고 일회용품을 줄이겠다고 마음 먹는 사람들이 분명 늘어날 수 있을테니까
10월 23일 저녁, 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바로 노트북을 켰다. 잠시 우리 부부 대신 아이를 케어해주러 오신 친정엄마께 아이를 재워달라고 하고 계속 노트북 앞에 있었다. 브런치북 만들기를 누르고 목차대로 글을 하나씩 옮기다가 메모장을 열었다.
그리고 나의 브런치북에 대한 맺음글을 썼다.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으니 그려놓은 그림 중에 멸종위기곤충인 붉은점모시나비와 꽃을 그린 그림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목차를 넣어봤지만 아무래도 하나의 챕터가 글이 너무 적어서, 추가로 멸균팩 재활용에 관한 글을 쓰고나서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그림을 그려야하는데 눈이 너무 침침해서 그릴 수 가 없었다.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에 출근해서 남편과 교대로 점심을 먹을 때 후다닥 그려서 글을 발행하고, 브런치북 응모까지 마쳤다.
일정이 빠듯했지만 '포기하고 더 잘 준비해서 다음에 도전해봐야할까?' 아니면 '부족하지만 이대로 내야할까?’ 이런 고민은 사실 하지 않았다. 이번에 브런치북 공모전에서 떨어지면 내가 직접 출판사에 투고를 할 생각이다. 한국에서 환경에세이를 낸 미국인 [두번쨰 지구는 없다] 책의 저자 타일러 라쉬는 환경을 위해 누구라도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했다. 덕분에 나도 용기를 냈고, 내 목소리를 통해 용기를 낼 누군가가 생기기를 희망하며 브런치북 수상을 감히,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