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반짝이는 실은 어디로 갔을까
친정 엄마는 손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특히 뜨개질을 잘하셔서 내가 어릴 때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에서 엄마에게 뜨개를 배우기도 했었다. 뜨개 수업을 하지 않을 때에도 엄마는 늘 여가 시간에 뜨개질을 하고 계셨다. 나이가 많이 든 지금도 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뜨개질을 좋아하신다.
자취하던 시절부터 가끔 엄마가 반찬을 보내주실 때마다 택배박스 안에는 항상 반짝반짝 빵빵한 수세미가 한 두장씩 들어있었다. 설거지를 할 때마다 쓰기는 썼지만 쓸수록 납작해지면서 반짝거림을 잃어가는 수세미를 보면 이 많은 반짝거리는 실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뜨개 수세미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값싼 실 가격 때문에 너도나도 예쁘고 다채로운 모양의 수세미를 뜨기 시작했다. 일명 ‘수세미 함뜨’ (함께 뜨기의 줄임말) 블로그 이웃들의 너무나 예쁜 뜨개 수세미 인증을 볼 때마다 왜 저렇게 자꾸 수세미를 뜨실까… 설마 저 수세미를 진짜 설거지할 때 쓰지는 않겠지? 하는 이런저런 걱정에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또 한 번은 라탄 수업을 듣던 수강생분께서 반짝거리는 뜨개 수세미를 잔뜩 떠서 갖고 오셔서 나를 비롯한 다른 수강생분들께 나눠주신 적이 있다. 거절도 못하고 받아 든 수세미는 설거지용으로 사용했다가 미세 플라스틱으로 수질오염을 일으키게 될까 봐 사용하지 않고 서랍 속에 계속 모셔놔야 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르겠지만 세제를 아낄 수 있다는 이유로 ‘친환경 수세미’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었다. 물론 거품이 잘 나서 적은 양의 세제로도 설거지가 가능한 것은 환경에 조금은 이로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반짝반짝 빽빽한던 반짝이 실들은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하수처리장의 필터를 그대로 통과해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간다. 그럼에도 친환경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결혼을 하고, 본격적으로 집에서 밥을 해 먹으면서 '한살림'이라는 협동조합을 알게 되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조합원이라 좋은 무농약 또는 유기농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서 오랫동안 이용하고 있다. 몇 년 전 한살림 매장에 장을 보러 갔을 때 신기하게 생긴 것을 보게 되었다. 베이지색의 내 팔뚝만 한 길이의 얇은 섬유질이 얼기설기 얽혀있는 그것의 정체는 '수세미'였다. 실제로 한 때는 열매의 모습이었던 것을 증명하듯 한쪽은 좁고 아래로 갈수록 살짝 뚱뚱해지는 형태에, 가운데에는 큰 기공이 3개 정도 있었다. 그리고 바짝 마른 갈색의 씨앗들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그 길로 하나를 집어 들어 장바구니에 넣었다. 집에 와서 칼로 숭덩숭덩 3등분을 해서 수세미 대신 사용해봤다. 아니지, 원래 수세미가 이거니까... 수세미 대신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반짝이 수세미 대신 원래 수세미를 사용해봤다.라는 표현이 더 맞는 표현이겠지
진짜 수세미는 거품도 잘 만들어 주고 브러싱도 잘 되는 편이었다. 아주 눌어붙은 것만 아니면 이 진짜 수세미로 충분했다. 심지어 건조도 금방 바짝 되어서 더 위생적인 느낌이었다. 그 뒤로 나는 진짜 수세미만 사용했다.
친정엄마가 집으로 오시면서 또 가방에 한가득 가져온 반찬이며, 참기름, 과일 등등을 꺼낸다. 그리고 폴리 뜨개 수세미 2개를 내미셨다. 여느 때처럼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엄마!!! 나 이거 안 쓴다니까! 이 반짝이 실이 다 미세 플라스틱으로 수질 오염을 유발한다고!!! 어쩌고 저쩌고'라고 하려다가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엄마 엄마! 나 삼베실로 뜨개 수세미 떠줘!!"
기껏 만들어오신 반짝이 수세미에 대해 타박할 것이 아니라 다른 재료를 제공해드리는 편이 모녀지간의 관계를 위해서 더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조 작업으로 한글 모음의 근간이 되는 '천, 지, 인'을 상징하는 섬유작품을 만든 지 얼마 안 된지라 집에는 사용하고 남은 삼베실이 있었다. 이 삼베실은 제로 웨이스트의 하나로 삼베 실과 삼베 수세미 삼베 샤워타월 등을 생산하는 업체에서 삼베 수세미 실로 판매 중인 제품이었는데 한글 모음이 주제인 작업을 하다 보니 한국 전통의 소재를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삼베 수세미 실을 주문해서 작품을 만들었었다. 수세미도 뜰 요량으로 넉넉히 주문했는데 마침 수세미를 언젠가는 떠야지 하고 집에 놔뒀던 것이다.
엄마는 이런 걸로 설거지가 잘 되겠냐며, 너무 얇아서 두 겹으로 떠야겠다 하시면서 일단 실을 받아 드셨다. 그리고 일주일 뒤, 전시일정으로 바쁜 우리 부부 대신 아이를 봐주러 오셨던 엄마는 울산으로 다시 내려가셨고, 부엌에는 동그란 꽃 모티브로 짠 삼베 수세미 2장이 놓여 있었다. 그 꽃 모티브의 삼베 수세미를 쓸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난다. 삼베 수세미 실이 좀 더 빨리 이 세상에 알려졌다면 반짝이 수세미 실 대신 삼베 수세미 실을 엄마에게 보내드리면 좋았을 텐데,
요즘엔 '위생'을 핑계로 일회용 수세미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일회용 수세미의 성분은 대부분 '플라스틱'이다. 이 일회용 수세미를 홍보하는 업체는 플라스틱이니 분리수거도 가능하니 재활용이 되는 제품이라고 홍보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일회용 수세미를 플라스틱으로 분리배출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열에 아홉은 쓰레기통행일 게 분명하다. 세균은 습한 상태에서 많이 번식한다. 그런데 내 경험 상, 천연 수세미와, 삼베 수세미는 사용 후 건조가 매우 빨랐다. 그것도 아주 바짝 마른다. 게다가 삼베는 항균, 항독성, 방충성의 효능을 가진 식물이라서 '위생'에 매우 강하다. 위생이 걱정된다면 일회용 수세미가 아닌 삼베 수세미를 사용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요즘엔 제로 웨이스트 샵이 많이 생겨서 삼베 수세미나, 진짜 수세미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뜨개질을 할 줄 안다면 삼베 수세미 실을 사서 좋아하는 모양으로 수세미를 떠서 사용하고, 여력이 된다면 주변에 선물도 해보면 어떨까? 언젠가 나에게, 나의 아이에게 되돌아올 미세 플라스틱을 조금은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