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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

내가 바로 그런 사랑을 받는 며느리이다.

by 혜연

우리는 테네리페를 떠나기 전날 아프리카 성모 시장에 한번 더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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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께서는 보통 스페인에 오시면 토마토를 잔뜩 사가시는데 지금은 완전한 토마토철이 아니라서 토마토는 단념하셨다. 대신 이번에는 양파를 많이 구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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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께서 양파를 하나씩 담으실 때마다 아버님께서는 계속 "더! 더!"라고 외치시다가 결국 어머님께서 버럭 하셨다.

"벌써 무거운 데 갈 때 어떻게 다 가져가려고 그래요!"

"제 가방은 텅텅 비었으니 맘껏 담으세요."

그렇게 내가 중재해 드렸고 아버님은 원하시는 자색 양파를 더 획득하셨다. 그 외에도 우리는 야자수시럽과 용과 등을 구입했다.


장보기를 마치고 시장 광장 테라스에 앉아 음료를 주문하고 보니 아버님께서 갑자기 사라지셨다. 우리는 화장실에 가셨겠거니 하고 기다렸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시장 뒷문에서 절룩이며 들어오시는 시아버지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한 손에는 노란 종이봉투를 들고서.

아버님은 활짝 웃으시며 종이봉투를 나에게 내미셨는데, 그 안에는 갓 튀겨서 따끈따끈한 추로스가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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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음료를 주문할 때 어머님께서 나에게 사주시려고 추로스를 파는지 물으셨는데 점원이 대답하길, 이 시장 안에는 추로스를 파는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아버님께서는 조용히 시장밖에 나가 혼자 추로스를 찾아다니셨던 것이다. 아이고... 나는 아버님이 혼자서 낯선 길을 걸어 다니셨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감동받은 얼굴로 바로 추로스를 한입 베어 물었다. 아버님께서는 그런 나를 보시며 연신 웃으셨다. 어머님께서도 감동하셨다며 아버님을 끌어안고 양볼에다 뽀뽀를 여러 번 하셨다.

이건 무조건 맛있게 먹어야 된다! 남김없이! 하지만 안타깝게도 추로스에는 아무것도 뿌려져있지 않아서 맛이 없었다. 다행히 아버님 커피에 딸려 나온 일회용 설탕이 있길래 듬뿍 뿌려서 먹었더니 맛있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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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조각은 내가 다 먹었고, 나머지 한 조각은 설탕을 뿌려서 반씩 두 분께 드렸다.

평소에는 무뚝뚝하신 아버님이지만 나를 얼마나 아끼시는지는 내가 모를 수가 없다.


아프리카 성모 시장에 처음 왔을 때 아버님께서는 빨간 바나나를 한송이 구입하셨다가 오후마다 내 방문을 두드리셨다. 내가 문을 열면 아버님께서는 어색한 웃음으로 "룸서비스!"를 외치신 후 바나나를 하나씩 주고 가셨다. 본인께서 출출하실 때마다 며느리도 함께 챙겨주신 것이다. 나는 아무리 배가 불러도 아버님이 주시는 바나나는 맛있게 받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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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통화하는 도중에 아버님의 룸서비스 바나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본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했지. 우리 엄마아빠는 와이프를 대할 때면 내가 본 적이 없는 모습을 보이셔서 내가 놀랠 때가 많다고 말이야. 우리 아빠가 저런 농담하시는 것도 나는 본 적이 없어, 상상도 못 했네."

내가 바로 그런 사랑을 받고 사는 며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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