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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27. 2023

호텔 수영장에서 겪은 사소한 문화충격

친절하고 아름다웠던 그녀

수영장에서 수경을 끼고 수영하는 사람은 며칠간 나 한 사람뿐이었는데 이날엔 수경뿐만 아니라 오리발과 손에 끼는 핀까지 장착하고서 쉴 새 없이 수영장을 돌고 있는 한 백인여성이 나타났다. 지치지도 않고 몇 바퀴를 선수처럼 돌고 있는 그녀가 너무 멋져서 말을 걸어보았다. 

"브라보! 저는 세 바퀴 돌고 지쳤는데 어쩜 안 지치시나요?"

(어느새 나도 시어머니를 닮아가는 건지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자연스럽게 말을 걸고 있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한다.)

그녀는 수경을 벗더니 나에게 살갑게 대답을 해 주었다. 

"저도 지쳐요. 몇 바퀴나 돌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이거 한번 해보실래요? 이거 끼고 수영하면 정말 쉬워요!" 

그녀는 처음 보는 오지랖 넓은 동양인 여자에게 본인이 발에 끼고 있던 오리발을 벗어 주었다. 

"이건 오른쪽발 이건 왼쪽발에 끼세요. 수영이 하나도 안 힘들 거예요." 

"오호 감사합니다." 


나는 호기롭게 그녀의 오리발을 받아 신고서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며 잠형으로 출발했다. 인어처럼 우아하게 저 멀리까지 한 번에 미끄러져가려고 했는데 속도가 빨라지니(비상!) 비니키가 벗겨질라고 해서(위급상황!)  속도를 늦춰야만 했다. 한 바퀴 돌고 온 후 내가 핀을 돌려줬더니 그녀는 더 써도 된다고 사양했다. 하지만 제 수영복이 싫다네요... 


그녀는 예쁜 얼굴만큼이나 친절했다. 우리 시어머니께서 왜 그리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즐기시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날부터 그녀와 나는 수영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짧게 대화를 나누고 같이 수영을 했다. 유일하게 수경 끼고 운동삼아 수영하는 사람은 그녀와 나 둘 뿐인지라 그녀도 나를 볼 때마다 반갑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녀가 올 때마다 시어머니께서는 "네 친구 왔다."라고 하셨다.


며칠 후 나보다 늦게 수영장에 도착한 그녀가 물속에 있던 나를 내려다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동시에 그녀는 머리를 묶느라 비키니 차림으로 양팔을 들어 올렸는데 그 순간... 내 동공은 지진했다. 수북한 겨드랑이털을 당당히 드러내고 머리를 묶다니... 나에게는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다.  

그녀는 미국식 영어와 프랑스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했는데 겨털이 자유분방한 그녀의 국적은 어디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물론 나는 그 정도로 그녀를 판단하진 않는다. 그저 내가 촌스러워서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 뿐. 

수영장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 아무렇지 않게 하늘을 향해 누워서 선택을 즐기는 여성들도 (처음 본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내 눈에는 마찬가지로 놀랍다. 안 보는 척하면서 힐끔힐끔 자꾸 쳐다보게 된다. 

나도 내 겨드랑이털을 향한 집착을 좀 내려놔도 되려나... (남편이 안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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