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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May 19. 2021

갑질?

리더의 선택

"이건 갑질이십니다"

"네?"

조직에서 간부가 된 15년여 동안 갑질이라는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기관에서 운영하는 교육에서 높은 만족도를 자랑하는, 특급 강사에게 전화를 받았다. 수강생들의 선호도가 높은 강사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친분도 있는 강사여서 경쾌하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평소 차분하지만 쾌활한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차분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점은 교육운영 담당자인 A의 잦은 실수로 강의 일정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강의 사전 과제를 점검하는 일까지 불편했다는 것이다. 평소 팀장에게 A의 실수가 잦음을 들었다. 팀장을 불러 모니터링을 강화하라고 하고, A에게 주의를 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A는 또 실수를 했다. 바로 전화를 했다. "오늘도 똑같은 실수를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냐?" 최대 낮고 묵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이건 갑질이다. 실수한 것은 맞지만, 그 강사에게 잘못했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흐름님께서 강사의 불평을 듣고 불편해서 나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은 갑질로 느껴진다."




갑질이라는 이야기가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사실 조금 놀라기도 했다. 당황스러움은, A가 미안해하고 잘하겠다는 다짐을 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놀랐던 것은, 이런 상황을 갑질로 정의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 의외였기 때문이다. 리더로서 부정적인 평가를 직간접적으로 직면할 때마다 나름 자기 성찰이나 반성을 잘 해낸다고 자부하였지만 솔직히 이번에는 '내 행동에 무엇이 문제였는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문제였는가?' 등 행동을 돌아보는 사고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분명히, 명백히, 단호히 그 사람이 잘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잘못을 깨달은 그는 사과를 했다. 이렇게 해피엔딩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울렁거렸다.   

 



문득 대학 친구의 고민이 떠올랐다. 나름 선배 관리자라고 할 수 있는,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오랜 시간을 간부로 일했던 녀석이었다. 그는 일이 서투른 장애를 가진 직원의 정규직 전환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주어진 직무에 맞지 않으니 떨어뜨리는 것이 맞고, 주변 동료들도 은근히 그렇게 해주기를 원해. 그러나 걸리는 것이, 장애가 있다면 장애를 참작해서 평가기준도 정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A도 사무적인 일을 처리하는 데 불편할 수 있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불현듯 떠오른 그의 말 뒤로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어쩌면 기관이 장애인으로 채용했다면 장애를 감안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장애로 인한 업무처리는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 느린 업무로 긴장해서 남들보다 더 타인의 말이나 불평에 민감한 것도 좀 더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기관 차원에서 업무 조정 등 A 직원의 성공적 직무 수행에 기여할 필요는 없을까?" 이 생각들과 함께 울렁거림이 가라앉고 편안해졌다. 갑자기 하나의 찔림이 느끼어졌다. '아, 어쩌면 팀장과 이야기하기 전 A의 입장을, 이야기를 먼저 들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A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내 고민을 토로한 메일에 친구 녀석이 답했다. 결국 자기네 회사는 그 직원과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고. 업무 조정도 여의치 않고, 길게 봤을 때 그 친구에게도 젊을 때 좀 더 나은 자리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끝없는 선택의 길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지 못한다. 그저 마음이 알려주는 소리에, 감각에, 귀 기울이며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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