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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희 Aug 09. 2020

꿈꾸는 자

나를 나답게

꿈 많던 소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꿈을 이뤘을까, 여전히 꿈꾸고 있을까 아님

꿈을 잃었을까…




흥미롭고 생기발랄했던 20대를 지나 나름의 현실(나에게는 그래도 현실적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에 안착하려 했던 30대의 나는 행복하려고, 행복해 보이려고 부단히 애썼다. 그렇다고 해서 삶 자체가 행복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현재의 즐거움과 기쁨을 찾는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에 나름 괜찮았다.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 지수는 다르기 때문에 남들과는 다른 삶이라도 내가 그에 만족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이냐는 것이다. 행복한 삶, 행복해 보이려는 모습, 행복 지수. 너무 뜬구름 같은 말 같은데,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많이 하는 말인 듯싶다. 


“넌 꿈이 뭐야”

“행복하게 사는 거”

“뭐야 그게. 그건 누구나 그래. 시시하게”

“난 진지한데.. 난 정말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야”


어느 날,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지만 그 순간은 가장 가까웠던 누군가가 물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그는 그냥 웃어넘기며 내가 대답하기 싫어서 혹은 대답하기 곤란해서 얼버무리는 말이라고 받아들이며,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고 했다. 

아닌데, 난 진지하게 대답했는데…


그의 말이 맞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 원한다. 그가 원하는 행복한 삶, 나의 행복이 다를 뿐이지 모두는 행복을 꿈꾼다. 그렇다면 다시,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일까. 


행복의 사전적 의미 
1. 복된 좋은 운수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여담이지만, 순간 글을 쓴다는 것이 정말 고맙게 느껴졌다. 생각을 할 수 있고, 그 생각을 다시 정리하고 한번 더 돌아보고 결론을 내서 문서로 남겨놓을 수 있으니 말이다. 글들을 쓰기 위해 난 나의 20대, 30대 현재 그리고 앞으로에 대해 생각해봤고, 뒤죽박죽 생각을 글로 옮겨놓는 중이다(글도 여전히 뒤죽박죽이지만..). 



나에게 행복한 삶은 즐거움이 있고 목적이 있는 삶이다. 내가 항상 간과하는 것 중에 하나는 물질적인 풍요이다. 이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 되고 즐거움을 느끼는 건 물질적인 여유로움이 있을 때나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다시, 나에게 행복한 삶은 물질적으로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함을 바탕으로 한 즐거움이 있고 목적이 있는 삶이다. 


학생 때는 잘 몰랐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이 깨달은 것이 나는 목적 혹은 목표가 뚜렷할 때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고 거기서 얻는 희열감이 굉장히 크다는 것이다. 내가 이뤄야 하는 것이 있을 때 나는 행복하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 때, 나는 비로소 나답게 삶을 즐기고 있다고 느낀다. 나는 이 목표나 목적을 자주 꿈이라고 표현한다. 


꿈, 목적, 목표

꿈  
1.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2.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3.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목적
1.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
2.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의 관념. 또는 목표로 향하는 긴장
3. 실천 의지에 따라 선택하여 세운 행위의 목표
목표
1.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지향하는 실제적 대상으로 삼음. 또는 그 대상
2. 도달해야 할 곳을 목적으로 삼음. 또는 목적으로 삼아 도달해야 할 곳
3. 행동을 취하여 이루려는 최후의 대상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지향하는 실제적 대상으로 삼음' 등 내 생각에는 비슷한 의미로 사용이 가능할 듯싶다. 어디서 어떻게 쓰고자 하는지에 따른 표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내가 30대에 가장 힘들어했던 이유는 꿈꾸고 있지 않아서였다. 앞으로 다가올 삶에 대한 기대도, 의지도 크게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목표로 했던 것들 중 어느 것은 빨리 이뤘고, 어떤 것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는 걸 깨닫자 흥미가 사라졌다. 다른 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그 순간에 안주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얼마를 지내고 나니 내 삶 자체가 무료하고 의미 없이 느껴졌다.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나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이미지를 좋아했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즐겁게 즐기고 행복하게 살며 나름 내 꿈을 이뤄가고 있는 “척” 노력하고 있었다. 이 “척”은 나 자신도 속이려고 했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내가 살고 싶은 도시에서 즐기며 살고 있고,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뭐든지 내가 원하는 건 이룰 수 있지만 내 행복을 위해 난 여기에 머물러있다는 듯…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저렇게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실제로 이때에 나는 위 질문의 그에게 너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척하려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굉장한 충격이었다). 회사에서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이 아니라 꾸역꾸역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어떤 것도 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냥이랑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버틸 수 있게 해 준 그때의 목적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뜬금없긴 하지만 냥이 얘기가 살짝이라도 나온 김에 냥이 사진 두 장만 살포시 투척


막간 냥이 자랑타임 (두 사진 같은 냥이 맞습니다 ㅎㅎ)



나는 첫 글에서 얘기했지만 나는 꿈을 위해 37살에 퇴사했다. 그 꿈은, 목표는 아직 막연하고 불안정하지만, 그렇기에 요즘 나는 불안하고 걱정 투성이지만 그래도 무언가 할 일을 찾고 있는 요즘이 행복하다. 다시 내 삶에 대해 기대할 수 있게 되었고, 다시 내 삶에 의지를 드러내게 되었다. 


나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나아갈 때 나다움을 느낀다. 하나의 목표로 끝나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을 때 내 삶을 기대하고 내가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는 그 모습에 나는 행복하다. 꿈꾸는 자, 과거에도 현재도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 미래의 나도 여전히 꿈꾸며 살아가길 소망한다. 꿈꾸고 꿈을 이루고 꿈을 위해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다시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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