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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 Jun 16. 2022

이직 한 달 차의 소회

어디나 장단점은 있겠으나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는 나날이다. 이번 주로 딱 출근한 지 4주째가 됐다. 이직 소식을 알릴 때, 전 회사에 있던 대리님이 이직 스트레스는 이혼 스트레스에 맞먹는다 (...) 라는 말을 전해주셨던 터라 좀 쫄아있었다. 쉽게 결정한 일이 아닌 만큼 전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기회비용이나 불명확한 상황들이 나를 괴롭혔다. 이전 회사나 지금 회사나 이름을 들으면 아는 회사인데 메인 업종이나 태생이 달라서인지 하는 일만 같고 모든 게 다르다. 지금 대내외적으로 스트레스가 상당한데 간단하게나마 정리해두면 또 미래의 언젠가는 그땐 그랬다며 웃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업무 진행 방식

탑다운, 상명하복 → 주도적, 협의 가능


아직 파악 중이지만, 현재까지 봐온 건 파격에 가깝다. 이전 회사가 군대식 문화였다고 윗사람들을 딱히 치고받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 회사는 그렇게 하라고 판을 깔아놓는 수준이다. 상당히 높은 직급의 사람의 글에도 늘 반박이 달린다. 전통적인 대기업 공채로 까라면 까던 사람으로서는 상당히 신기한 문화. 그리고 비동기식으로 일하는 문화가 있어서 이전 회사처럼 당장 뭔가를 내놓으라고 누군가 득달같이 달려드는 일이 없다. 일정을 무리하지 않게 잡고 상대적으로 일을 할 때 길게 호흡을 가져가면서 자기만의 리듬으로 할 수 있는 느낌. 다만 예전 회사는 수직적인 문화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청하는 게 쉬운 느낌이었는데, 지금 회사는 수평적인 구조를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이게 신규 입사자의 고통인지 회사의 문화인지 아직은 좀 불명확한데, 온보딩을 누군가 옆에서 붙어서 해주는 게 아니라 알아서 하게끔 던져놓고 안 되는 부분만 팀원이 아닌 사내 담당자를 찾아서 해결하는 구조라 좀 어색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분위기

집단주의 근데 이제 개인주의를 한 스푼 첨가한 → 개인주의의 끝


이게 참... 개인 성향에 따라 갈릴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한데. 이전 회사에서도 느꼈지만 나는 집단주의 성향이 있다. 그래서 예전 회사 문화에 그다지 큰 스트레스 없이 적응했는지도 모른다. 동년배들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가족 같은 문화도 좋아한다. 동료들이 시시콜콜 사적인 정보를 알고 끊임없이 하는 사담도 좋아하고, 점심을 같이 먹는 건 물론이고, 퇴근 후 저녁 약속이나 술자리, 심지어 주말에 만나는 것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일의 효율도 친해져야 나는 편이다. 자리에 앉아서도 사담을 꽤 많이 한 편이다. 업무 특성상 재택도 거의 없었고, 사무실 출근해서 사람들이랑 부대끼면서 야근하고 회식하면 가끔은 만취해서 집에 가기도 하는 게 즐거움이었다.


지금 회사는 혼자 자기 일만 잘하면 되는 구조다. 딱히 단체로 뭘 한다거나 누구의 눈치를 본다거나 할 일은 없다. 이게 좋긴 하면서도 외롭기도 하고... 재택/출근을 자율에 맡기고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보지 못했다. 워낙 집에 업무 환경이 제대로 안 되어 있고, 적응도 할 겸 출근을 하고 있기는 한데.. 출근은 하는 사람만 한다. 그리고 사무실이 정말 조용하다. 업무적 내용 말고는 아무도 사무실 안에서 사담을 하지 않는다..! 내선 전화도 없으니 회사가 이보다 조용할 수 없다. 예전 회사는 내선 전화도 있고, 메신저도 있고, 분위기도 그래서 이어폰을 꽂을 수는 없었는데 지금은 귀를 틀어막고 일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 정도가 다른 점일까? 식사를 할 때도 늘 눈치게임을 하는 게 스트레스다. 보통은 점심을 먹는 사람이 정해져 있으니까 점심시간이 되면 같이 나가면 그만인데, 여긴 서바이벌도 아니고 점심되면 갑자기 사람이 없고.. 그러면 그날은 다들 약속이 있나 보다, 하고 혼자 때워야 하는 날이다. 아침도 저녁도 아니고 점심만은 먹어야 하는 사람인 내게는 조금 잔혹하다. 사담이라도 했던 전 회사와는 다르게 여기는 점심시간이 아니면 사담할 기회조차 없는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삭막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친절하면서도 한 꺼풀 써져 있는 느낌이랄까. 전 회사는 지나치게 날 것이었지만 선호도를 따지자면 후자가 훨씬 높다. 그만둔 지 한 달이 좀 넘었는데 전 회사 사람들과의 4번 정도 만났다. 아무래도 사람이 그리운 모양이다. 대기업 공채에 적합한 인재였던 것 같은데 이런 부분에서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기도 하고, 또 금방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사내 문화

지나치게 많은 결재/보고 라인 → 지나치게 간소화


업무 방식에 넣을까 하다가 이게 사내 문화인 것 같아서 따로 뺐다. 아무래도 전 회사에서는 뭐 하나를 하려고 하면 줄줄이 보고하고, 보고를 위한 자료 만들고, 보고 끝나면 결재받는 일의 무한 반복이었다. 그게 정말 큰 스트레스 중에 하나였는데, 지금 회사는 페이퍼 워크나 보고를 위한 보고는 없는 편이다. 게다가 권한이나 비용 집행 관련해서도.. 전반적으로 뭔가 유효성 검사 없이 신뢰를 기반으로.. 어떻게 좀 하는 느낌...? 이게 실무하는 입장에서는 간편하기는 한데, 한 편으로는 이렇게까지 날림으로 처리해도 되는가? 하는 기분이 들기는 한다.






장단점이 있겠으나... 오자마자 받은 업무를 진행하던 사람들은 팀을 다 떠나고 당장 갑자기 실무를 해야 되는 상황에 맞닥뜨려서 약간사실 꽤 많이 스트레스받는 상태다. 글 분량을 봐도 새로운 회사 분위기를 좀 힘들어하는 건 사실인 것 같고. 일 힘든 건 사실 어떻게든 하지만, 일 같이 하는 사람들이 누군지도 파악 안 된 상태에서 이렇게 냅다 백업해 줄 사람 한 명 없이 혼자 던져질 줄은 몰랐죠... 자꾸 예전 회사에 대한 기억이 미화돼서 그리워지는데, 이 또한 감당해야 할 기회비용이겠지 싶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다들 이렇게 마음이 울렁거리지 않을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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