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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 May 22. 2022

이직합니다

익숙함을 떠나 긴장감 속으로

비IT회사, 비개발, 비전공자로 IT 직군에서 살아남기


 브런치 글의 부제였다. 유통회사에서 IT 업무를 하며 굴러온 시간이 어느덧 6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회사에 크고 작은 불만이 있었지만 퇴사나 이직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나는  일이 너무 좋았고, 우리 팀은 그보다  좋았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불씨는 아주 작은 곳에서 피어났다.


재작년부터 1년 넘는 기간 동안 전사적인 규모의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사람을 갈아 넣어서 어떻게든 되게 만든 프로젝트였다. 회사의 업무 진행 방식에 대한 문제점은 그간 여러 번 지적해왔으나 도통 나아지지를 않았다. 이렇게 1년 넘게 버티고 난 후, 기획자로서의 커리어 패스와 회사의 업무 방식에 대해서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지내도 되는 걸까?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졌다. 좋은 팀 사람들, 손에 익은 업무, 공채로 시작해 쌓은 인적 인프라, 회사에서 받는 인정.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직하는 게 맞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갈팡질팡하는 와중에 업무를 과중하게 처리하다 보니 입사하면서부터 다짐했던 업무 자세마저 흐트러졌다. 내 안의 다정함을 잃지 않고 업무를 하자고 신입사원 때 늘 생각했었다. 다 핑계겠지만, 그 마인드가 자꾸 흐트러졌다. 뭔가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지점이었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해봤다.






1. 어떤 지점에서 가장 고민이 큰지

회사 : 비전이 보이지 않고 내부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임

직무 : 서비스 기획 업무에 대한 재미는 여전히 있고, 직무를 바꿀 생각이 없음

상황 : 장기간 프로젝트 진행 및 업무 과중, 회사 내 업무 방식으로 인한 피로 누적


회사/직무/상황의 3가지로 나눠서 고민해봤다.


결과적으로 직무를 유지하며 회사를 변경해서 상황을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2.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어떻게 변경해야 할까?

회사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상황이어서 회사를 바꿔야 했다. 그렇다면 답은 이직뿐이었다.


현재 회사에서 가장 나를 괴롭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는 IT에 대한 낮은 이해도였다. IT를 업무를 진행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만 보고, 업무의 프로세스나 메커니즘은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내 분위기와 동료들. 이런 분위기에서는 될 일도 안 된다. 처음에는 회사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산업군의 문제로 확장해서 보게 됐다. 기업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기업이 속한 도메인에 큰 영향을 받는다. 지금처럼 도메인을 유지하면서 찾아본다면 이직이야 쉽겠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리 없었다.


현재 재직 중인 회사가 속한 도메인인 유통은 무조건 제외하고,

IT 기업이거나 IT를 태생으로 한 기업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3. 그렇다면 어떤 직무로 지원해야 할까?

이 질문은 보통의 이직 케이스에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경우 프론트엔드부터 백엔드까지, 파트를 가리지 않고 전반적으로 실무를 진행했다. 좋게 말하면 넓은 범위의 업무를 처리해봐서 업무 간의 유기성을 알고 이해도가 높다. 나쁘게 말하면 어느 분야에도 전문성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때문에 지원할 수 있는 직무의 범위가 상당히 넓었고, 가지고 있는 경력 중 어느 부분을 특화해서 소구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했다. 지원하려는 회사마다 뽑는 직무가 다양했다. 여러 공고가 있는 회사일 수록 심사숙고해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늘 고민했다.





이직하게 된 지금 시점에야 글로 깔끔하게 써 내려가지만, 처음 마음이 복잡할 때는 위 3가지 항목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만 한참 걸렸다. 내가 막연히 가지고 있는 불안이나 불만족스러운 요소를 명확하게 정리해봤다. 장점과 비교해서 남아있을 때와 떠났을 때 내가 얻고 잃을 것들, 그리고 지금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고 나니 이직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서고, 지원할 회사나 직무가 추려졌다.


이직하게 될 회사에서 면접 제안을 받고 합격하게 된 거라 지원부터 진행한 이직 케이스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탈출을 위해 아무 곳이나 찔러보지도 않았다. 회사가 너무 싫어서 탈주하는 수단으로 이직을 고른다면 결말이 같을 거라 생각한다. 재직 중인 회사에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왔다고 생각했고, 시장에 나 자신을 내던져 본 게 커리어를 톺아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생각한 이직 기간 내에 원하던 대로 IT회사에 가게 되었다.


아직 첫 출근 전이라 싱숭생숭하고 긴장도 된다. 매니저님과 팀장님께 퇴사 면담을 요청했을 때, 사람들과 나눈 수많은 인사, 마지막 출근길. 많은 부분을 타임라인대로 상세하게 기록해 놓는 게 좋을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좋은 기억은 좋은 기억 자체로 기억 속에만 묻는 것도 좋겠지 싶었다. 내일 또 우리 팀으로 출근해야 할 것 같은데 전혀 새로운 환경으로 가야 하는 게 많이 떨린다. 잘할 수 있을 거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있다.


직무는 기존과 거의 유사하지만 좀 더 좁아졌고, 회사에서 가게 될 팀에서 맡는 업무는 유사할 수도 있으나 IT회사에서 업무를 하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다. 이렇게 손에 꼽히는 회사라면 뭔가 다르겠지, 나의 목마름을 해소시켜주겠지 하는 마음. 그만큼 회사에서 내게 거는 기대도 만족시켜야겠고, 그래 봐야 샌드위치겠지만.


여러 일이 많아 정신없는 와중에도 첫 출근 전에는 꼭 이 글을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작성했다. 딱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하고부터 6개월 정도가 걸렸다. 새로운 시작을 스스로 응원하며, 좋은 발걸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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