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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Nov 03. 2020

두통도 낫게 해주는 소울푸드 라면

어릴 때 나는 몸이 약한 편이었고 특히 두통이 심했다. 멀미도 심해서 차로 여행을 갈 땐 약을 귀 밑에 붙이고 잠을 잤다. 그래서 어릴 때 사진을 보면 자다 일어나 산발이 된 머리로 찍은 사진이 많다. 그렇게 자주 아팠던 나에게 특별한 약이 있었다. 그건 바로 라면이었다. 기분 탓이었는지 두통이 심한 날 라면을 먹었더니 머리가 안 아픈 거다. 그래서 그 이후로 머리가 아프면 라면을 자주 먹었다.

물론 정말 많이 아프면 약을 먹고 자야 했지만 조금 아플 땐 두통을 핑계로 라면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라면을 먹고 싶어서 머리가 도와준 느낌이다. 라면을 소울푸드라고 하기에는 거리를 두어야 할 것 같은 인스턴트 음식이지만, 살면서 라면으로 소확행을 누린 적이 많다.

중학교 때는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별로 없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고, 특별나게 놀지도 않았고 그저 평범 그 자체였는데 가장 기억나는 것은 토요일 점심이었다. 항상 하교를 하면 육개장 사발면과 과자를 사서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거실에서 티브이를 켜고 사발면을 먹으면서 천사소녀 네티를 봤다. 매주 같은 시간에 천사소녀 네티가 했기 때문에 매주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천사소녀 네티를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재밌는 게 안 해서 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걸 보면 라면을 먹는 것 자체가 정말 확실한 행복을 줬던 것 같다.

그 뒤로도 고등학교 3학년 때 밤에 집에 오면 꼭 라면을 끓여먹거나 부셔먹거나 했다. 세 끼를 다 밥으로 먹은 것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밤까지 학교에서 고생한 나에게 주는 보상 같은 것이었다. 물론 살이 찌는 건 감수해야 했다. 지금도 나는 라면을 정말 좋아한다. 낮에 라면을 먹어도 저녁에 티브이에서 라면 먹는 장면이 나오면 또 먹고 싶어 진다. 하지만 지금은 몸을 생각해서 많이 먹어도 주 1회만 먹으려고 한다. 물론 여기서 비빔면과 짜장라면은 라면으로 치지 않는다. 나에게 라면은 국물이 있는 뜨겁고 얼큰한 라면이 소울푸드이기 때문이다.


라면을 끼니로 먹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충 때웠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고생한 내게 주는 보상이다. 내일은 날씨가 추워진다니 저녁으로 라면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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