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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아작가 Mar 27. 2021

사라진 가족은
어디로 여행을 떠난 걸까

아주 오래된 습관, 대물림

과연 저 멀리 사라진 가족이 저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을까?

엊그제 홍대전철역 6번 출구방향, 경의선 책거리를 다녀왔다. 그런데 알록달록 무지개 벽에 감춰진(?) 문이 내 눈에 들어왔다. 비밀의 문? 문득 내 곁을 떠난 사랑하는 가족, 엄마 아버지가 떠올랐다. 살짝 열고 싶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난 존재가 아니라 과거 누군가의 딸이었고 아들이었음을 가끔 잊고 산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도 자신의 인생이 부모의 동아줄로부터 이어져 있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오랜 습관, 성격, 외모 등 닮은 듯 다른 모습은 과거에서 왔다.


“역시 가수는 이미자가 최고야. 요즘 김창완인가 하는 가수가 나왔던데 그런 게 가수라고… 노래 같지도 않아.”

아버지는 김창완 노래가 기본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며 비하했고 전통 가락 형식의 가요를 높이 평가했다. 반면 내 취향은 달랐다.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김창완 노래가 듣기 좋았다.

(…)아버지는 ‘집 안의 고독한 섬’이었다. 혼자만의 방에 갇혀 사셨다. 서울에서 기자 생활을 원했지만 아쉽게도 시험에서 떨어졌다. “애오라지(마음에 부족하나마)가 무슨 뜻인 줄 아니?”미련이 남았는지 술만 드시면 떨어진 시험 얘기를 반복 재생 하셨다. 좌절된 꿈을 안은 채 시골에서 잠시 기자 생활을 하셨지만 그 일을 오래하진 않으셨다. 그 후 평범한 소일거리를 하며 지냈다. 경제적 책임은 엄마 몫이었다. 당시 엄마는 하숙집을 거쳐 여인숙을 운영하셨고 장사 수완이 꽤 좋은 편이었다. 아버지는 문서, 행정, 시설 관리 등 잡다한(?)일을 하셨다. 때론 토지를 매매하는 일도 하셨고 간혹 사기를 당한 적도 있었다. 가족을 위해 계속 무슨 일이든 하셨지만 당시 어렸던 나는 아버지의 존재감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

어느덧 아버지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술이 되었다. 술은 오랜 친구이자 쓸쓸함을 달래주는 일상의 위로였다. 결국 술은 아버지의 몸과 마음을 무너뜨렸다. 꿈을 펼치지 못한 채 겨우 52세의 젊은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 당시 나는 강릉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정서적 외로움을 겪고 있는 중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아버지와 마주하며 옛이야기나 마음속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술주정을 하시면 그 얘기를 듣는 정도가 긴 대화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엊그제 저 멀리 사라졌던 가족의 뒷모습이 다시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술주정을 둘러싼 창피했던 기억 때문에 아버지의 좋은 기억조차 가리어져 있었다. 생각해 보니 가족의 대물림은 우리에게 상처와 아픔만 남겨준 게 아니었다. 스토리텔링, 음악 감상, 글쓰기 등 좋은 문화습관, 자연과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도 남겨 주었다. 알고 보니 내가 자연을, 음악과 커피를,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 모든 게 아버지 덕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걸 까맣게 잊고 살았다. 아버지는 ‘은아’라는 나무를 심은 소중한 사람이자 나의 단단한 뿌리였다.

“나는 이런 아버지를 닮았다!”

- 나의 인생에세이, 『조미료엄마』 P68~69 내용 발췌 -


영화 스토리텔링야세민 삼데렐리 감독의 영화나의 가족 나의 도시

며칠 전 도서관에서 DVD 한 편을 대여했다. 제목이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나의 가족 나의 도시〉 평소 내가 좋아하는 주제, 영화 같은 아니 진짜 가족의 인생 이야기였다. 결코 지나간 죽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두근두근 가족역사박물관으로 터키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터키, 독일? 대체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막내 손자 ‘첸크’의 이 한 마디로 파란만장한 가족여행은 시작된다.

터키에서 독일로 일하러 온 ‘후세인’은 백만 첫 번째 독일 이주 노동자이다. 

이주 45년 만에 시민권을 얻은 ‘후세인’은 손자, 손녀들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한다.

“내가 언제 너희들에게 아쉬운 부탁한 적 있니? 이번엔 무조건 내 말대로 따르도록 해”

터키의 힘과 정체성을 찾기 위한 가족여행이다. “우리는 터키인이다!” 이리저리 핑계를 대던 가족들은 평소와 다른 할아버지의 강경한 태도에 모두 입을 닫아버린다. 

터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심심해하던 ‘후세인’의 막내 손자 ‘첸크’에게 사촌 누나 ‘캐넌’은 가족의 오랜 습관과 좌충우돌 가족의 옛날이야기를 하나, 둘씩 꺼내 놓는다. 과거와 현재의 문을 넘나들며 가족의 오랜 역사와 터키 행 가족여행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오늘 같이 보슬비가 내리는 봄날에 가족과 함께 보기에 딱 좋은 영화일 것이다. 새로운 발견! 


나는 왜 이 영화를 선택한 걸까?

첫째, 터키와 한국은 형제의 나라. 역시 닮았다. 독일로 일하러간 광부… 간호사들… 찢어지게 가난했던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과거 부모세대. 물질적 풍요 속에 과거를 잊고 사는 자식들. 시대적 배경이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때문에 더욱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

둘째, 우리는 과거에서 온 존재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버지-> 나-> 딸, 아들-> 손녀, 손자-> ?

도대체 내게 사라진 가족은 어디로 여행을 떠난 걸까? 

아, 아프고 힘든 기억, 아름다운 상처들이여~ 


디제잉 오드리의 추천 노래 가수 김창완의 노래 〈♪꼬마야

당신은 사라진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 아련함과 함께 떠오르는 노래가 있나요? 

오늘처럼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이면 눈물 나게 생각나는 그 노래 말이에요.

저는 오늘 생전에 가수 같지도 않다던 김창완의 노래, 〈♪꼬마야〉를 들려주고 싶네요. 여러분에게 그리고 우리 아버지에게도. 고향의 풍경이 느껴지는 가사로 이 노래를 들으면 강가에서 은어(銀漁), 미꾸라지를 잡았던 자연인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오르기 때문이에요. 당신에겐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가요? 저에게 아버지는 강가이고 바람이고 고향의 빛이고 슬픈 행복의 노래예요. 자, 동시처럼 아름다운 노래 한 곡 들려드릴게요. 김창완의 노래, 〈♪꼬마야〉

"♫꼬마~야 너는 아니/ 보랏빛의 무지개를/ 너의 마~음 달려와서/ 그 빛에 입 맞추렴 

비가 온 날엔/ 밤빛도 퇴색되어/ 마음도 우적한데/ 그건~ 아마도 산길처럼/ 굽은 밭길일 거야" 


"그래. 그때 나도 외롭고 참 힘들었어. 나를 기억해 줘서 고맙다. 은아야. 

지금 이 노래 들으니 옛 추억도 생각나고 좋구나! 노래 같지도 않다던 그 말 취소! 하하하"

"아버지의 딸, 은아의 아들이 지금 아르바이트로 기자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고보니 제 아들도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라고 있네요. 저도 고맙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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