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잘하는 건 뭘까 -
뜬구름은 인생 투어
나는 뜬구름 잡는 소리, 이야기를 좋아한다. ‘♪토끼구름, 나비구름 짝을 지어서’ 어릴 적 부르던 동요와 함께. 자유롭게 떠다니는 구름을 보면 몽실몽실 호기심이 피어난다. 떠가는 구름은 인생 모습과 닮았다. 머물지 않고 수시로 변해가는 인생 투어랄까.
따스한 4월의 봄날, 나는 신분당선 정자역으로 향한다. 수원에 사는 친구와의 약속 때문이다. ‘어디 좋은 곳으로 함께 가볼래?’ 오랜 대학 친구들의 생일 모임. 그러나 진짜 목적은 친구의 온라인쇼핑몰 창업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손뜨개 공예가인 친구는 최근 온라인쇼핑몰을 개설했다. 생활 속 제품 사진이 필요한 상황. 모델 촬영을 위해 간만에 대학 친구들이 뭉쳤다. 촬영을 가장한 봄 소풍이었다. 때마침 날씨도 화창하고 파란 하늘에 구름도 둥실 사진 찍기에 딱 좋은 날씨다. 콩닥콩닥 마음이 기분 좋게 뛴다. 슬슬 몸을 움직여볼까?
드디어 도착한 곳은 곤지암 화담숲. 화담(和談)?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 조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게 딱 맞는 숲이름이다. 느낌이 좋다.
‘화담숲 스탬프 투어’ 철쭉·진달래길, 자작나무숲, 분재원, 원앙연못 안내도를 따라 도보로 관람을 했다. 사진 찍기에 알맞은 장소를 골라 제품사진을 찍었다. 단,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제품 위주였다. “가방! 가방! 가방이 잘 보이게!” 역시 자연의 발견, 손뜨개 가방과 잘 어울린다. 우리들은 마치 대학 시절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신 나는 여학생이 된 듯하다.
내 친구 손뜨개 공예가, 로즈는 사범대학 미술교육 전공자다.
로즈 친구는 어떤 사람인가? 거두절미, 기능적, 현실적, 필요한 것만 쏙쏙 잘 집어낸다. 한 마디로 군더더기가 없다. 손재주가 많다. 특히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뚝딱뚝딱 손수 만들고 고쳐 쓴다. 친구가 쓴 블로그를 보면 마치 중학교 가사 교과서를 보는 듯하다. 제품 설계도, 설명서 만드는 일을 잘 한다. 대학 시절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네 꿈이 뭐야?” 친구는 짧게 답했다. “공방 갖는 거! 생활 공예 작업하고 가르치며 살고 싶어.”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 후 친구는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다. 편집 디자이너로 첫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직장에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서울, 친구는 부산 장거리 사내 연애였다. 나중에 친구도 서울 본사로 옮겼고 그 둘은 결혼을 했다. 그러다가 아이 둘을 키우면서 자녀 양육 문제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손재주가 많은 친구는 집안일을 해내면서 끊임없이 뭔가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 제빵 기술, 웹디자인 기술, 폐백음식 기술 등 집 근처 여성 인력센터나 학원에서 배웠다. 그러던 중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다시 일을 시작했다. 웹디자이너. 친구는 주변에서 디지털 기계를 특히 잘 다루는 편이다. 포토샵, 일러스트에 능하다. 디지털 1세대랄까. 덕분에 편집 디자인에서 웹디자인 일로 옮기는 데 좀 더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는 더 이상 그 일을 계속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신체 나이와 함께 시력이 점점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으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렸다. 몸의 위험 신호였다. 뭔가 인생 전환이 필요했다. 다행히 친구가 하루도 쉬지 않고 하는 그녀가 잘하는 것, 또 다른 취미가 있었다. 우울하거나 따분한 인생에 즐거움을 주는 일, 그것은 바로 손뜨개였다. 무료했던 일상을 견디게 해 준 힘은 창의적인 일, 생활 공예였다. 그녀의 일상 취미는 어느새 그녀의 특기가 되었고 그녀의 새로운 직업이 되었다.
마침내 지인 소개로 L마트 문화센터영통점에서 손뜨개가방 강사로 활동 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개인 블로그를 운영, 코바늘 3호 온라인쇼핑몰 주인이다. 친구는 대학 시절 열정의 로즈(졸업 작품명 이름)의 꿈에 한 발 한 발 다가서고 있다. 나는 그런 ‘대단한 무엇’을 가진 친구의 꿈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나는 이런 친구의 친구인 게 자랑스럽다.
영화 스토리텔링,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라이즈〉 여행을 통해 만난 남녀의 사랑이야기. 비엔나 1박2일편. 짧지만 강렬한 여운이 남는 사랑의 추억이야기라서 좋다. 관람차, 레코드가게,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져가 사람들에 대한 무덤얘기. 비록 하루 동안 남녀가 로맨틱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하고 단순한 여행 스토리지만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속 주제와 역학 관계가 결코 가볍고 지루하지 않다. 일과 사랑,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현실과 이상, 관계에 대한 통찰을 안겨준 내게 의미 있는 인생영화다.
그 영화 속에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그 중 에단 호크(제시 역)가 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난 내가 정말 잘하는 게 뭔지 아는 상태에서 죽길 원하는 것 같아. 그냥 좋은 가장이 되는 것보다 내가 남들보다 월등히 잘하는 게 있다는 걸 알고 싶은 거지.”
그 이야기를 받아 줄리 델피(셀린 역)는 자신이 만났던 50대 중년 남성의 이야기를 해준다.
“자신은 평생 동안 일이나 출세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살았대. 그런데 52세가 되고 보니 문득자신은 아무것도 베풀지 않고 살았다는 게 느껴진 거야. 그분 인생에 타인을 위한 시간은 없었어. 울먹거리면서 그 얘길 하시더라.”
어쩌다 중년, 내가 월등히 잘하는 건 뭘까. 그건 아마도 ‘네버엔딩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평생 동안 꿈이나 성공 이야기 잇기로 산 내 모습. 선라이즈… 선셋… 서서히 내 인생도 선셋 스토리로 이어져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친구의 꿈도 내 꿈도 붉은 노을처럼 타고 있다. 그렇게 뜨겁지는 않지만. 친구처럼 생활 공예 공방에서 작은 북카페 주인으로 나를 위한 시간, 그리고 타인을 위한 시간으로 맛있는 이야기 뜬구름 잡는 소리하며 그곳에서 즐겁게 살고 싶다. 따뜻한 스토리텔러로!
나의 꿈, 나의 미래! 평생 동안 정답게 이야기 나누고 싶은 성공스토리, 은아 화담(和談)이다.
"난 내가 정말 잘하는 게 뭔지 아는 상태에서 죽길 원하는 것 같아. 그냥 좋은 아내, 엄마가 되는 것보다 내가 남들보다 월등히 잘하는 게 있다는 걸 알고 싶은 거지. 이야기는 나의 힘이란 걸"
디제잉 오드리의 추천 노래, 빅뱅의 〈♪붉은 노을〉
‘♫ 해가 뜨고 해가 지네
노을 빛에 슬퍼지네
달이 뜨고 달이 지네
세월 속에 나 또한 무뎌지네
난 너를 사랑해
Oh I love you girl’
세대를 넘어 부르는 노래예요. 예전 가수 이문세가 불렀던 노래를 이젠 20대 아들과 함께 빅뱅의 〈♪붉은 노을〉을 춤추고 노래 부르곤 하죠. 이 노래를 부르면 신나기도 하지만 문득 사라지는 것에 대해 서글퍼지는 마음도 들곤 해요. 어쩔 수 없죠.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인생 지혜가 필요함을 스스로 깨닫고 후회 없이 그저 붉게 타주길 바랄뿐.
자, 여러분도 함께 노래 불러 봐요. 인생 속 리듬 타는 나를 발견하면서…
“♫ 이 세상은 너 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후횐 없어 그저 바라볼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