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7월 어느날 삼성 서초사옥 회의실.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는 ‘사물인터넷 시대의 넥스트 10년을 준비하라’는 강연 주제로 삼성 사장단 앞에 섰다. 그는 이날연단에서 이런 말들을 쏟아 냈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과 협력을 강화해 생태계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매출 우선 중심 기업 운영에서 벗어나 아이폰처럼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제품을 내놓으라"
(중앙일보 2014년 12월 11일, 아시아투데이 2014년 7월 16일)
2017년까지 삼성그룹에는 '수요 사장단 회의'라는 게 있었다. 매주 수요일 계열사 사장과 미래전략실 팀장(사장급) 등 수뇌부 40여명이 모이는 자리였다. 이곳에서 최고 경영진들은 한시간 동안 저명한 교수의 강연을 듣고, 나머지30여분 동안에는경영 현안을 논의했다.
삼성 미래전략실은 이 회의를 그룹의 미래 먹거리 아이디어를 얻는 자리로 적극 활용했다. 계열사 경영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필요한 자리로도 여겼다.
재계 출입 기자들은 매주 수요일 아침 삼성 서초사옥으로 출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기자들은 회의를 마치고 로비를 나서는 계열사 사장들을 붙잡고, 이것 저것 질문을 던졌다. 사장들은 언론을 활용할 줄 알았다.삼성은 기사를 시장과의긍정적소통창구로 썼다.
그런데 이 수요 사장단 회의가 이재용 부회장이 처음 구속된 2017년 상반기 중단됐다.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것도 이 즈음이다. 그룹 경영을 컨트롤하던 회의체와 조직이 동시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컨트롤타워 해체 직전 삼성전자가 인수했던 기업이 있다. 음향장비 분야 글로벌 기업 하만이다. 하만은 오디오 장치를 자동차 메이커에 공급하는 몇 안되는 회사다. 다양한 사물인터넷 기술을 보유하는 등 전장사업에도 상당한 강점이 있었다.
자동차 산업이 전장 중심으로 옮겨 가는 상황이었기에, 삼성은 거액 베팅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인수 가격은 80억 달러(약 9조원). 국내 기업 M&A 역사상 최고가였다.
하만 인수는수요 사장단 회의 때 강연 내용과도 연결된다. 사물인터넷 시대를 준비하는 한편, 마니아층을 흡수할 수 있는 제품을 품어야 한다는 것. 아울러 하만은 전장사업에 적극 뛰어들 준비를 하던 삼성전자에최적의 M&A 대상이었다.
그렇게 장밋빛 미래를 꿈꿨던 하만실적이 최근 곤두박질 치고 있다. 피인수 직전인 2016년 매출은 약 72억달러(약 8조200억원), 영업이익 6억1000만달러(약 6800억원). 그러나 2020년엔 매출 9조1800억원, 영업이익 600억원으로 기록됐다. 영업이익이 4년만에 10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글로벌 전장 시장이 커지는 상황에서 실적은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하만 인수주체였던 미래전략실이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오너 주재 사장단 회의가 지속됐더라면? 조직 긴장감은더 팽팽하게 유지됐을까?단언할 순 없지만 가능성은 더 높았을 거라 확신한다.반도체와 전장 사업, 커넥티드카를 연결하는데 활용 여지가 충분했을 것이다.
경영진의 전략과 대응부재로 일어난 실패가 분명했다.전장 시장은 빠르게 변하는데 적극적으로 대처할 인수 주체가 없었다.'관리의 삼성'에 이상 신호가감지된 것이다.
삼성메모리반도체와 스마트폰은 여전히 세계 1위다. 하지만위태롭다. 다품종 소량생산 트렌드에 올라탄 반도체 시장은 파운드리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분야에서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아성은 더 공고해지는분위기다. 무엇보다 10년 뒤 먹거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수년 째 이어지고 있는 컨트롤타워의 부재, 리더십의 위기.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막기 위해 행해진 다양한 경영 오류들. 삼성이 불안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