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을 걸으며...
매주 월요일 아침은 희옥과 한라수목원에 가는 시간이다. 사실 엄마의 좋지 않은 허리를 위해 주말까지 약 2-3번은 가려고 노력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온갖 꽃들이 피어있는 한라수목원의 봄을 즐기며 걷다 보면 비단 운동과 데이트뿐만 아니라 푸른 녹음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이 되곤 한다.
오늘은 수목원 둘레길을 걸으며 희옥에게 툭 질문을 던졌다.
‘사람은 죽기 전에 주마등이 스쳐 지나간대. 엄마는 죽기 전에 무엇을 후회하거나 생각할 것 같아?’
희옥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갑자기 외할머니 생각이 났나 보다.
‘나는... 글쎄.. 꼭 너에게 유언을 남겨야지..
네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날도 정신이 맑으셨었는데 왜 유언을 안 남겨주셨을까... ‘
할머니 돌아가시는 날, 마지막으로 옆에 있던 딸인 희옥은 외할머니가 당신의 인생의 마지막 말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고아가 된다.
매일의 삶에서 너무나 자주 그 사실을 잊곤 하지만 우리는 유통기한이 정해진 삶을 살고 있고 심지어 별일 없다면 나를 낳아준 사람이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
엄마 생각을 하며 눈시울이 붉은 희옥을 쳐다보면서 나 역시 생각했다.
오래 살아야지. 오래 살아서 희옥이 마지막으로 남길 유언도 듣고, 그전에 희옥에게 빨간 립스틱도 선물하고,
한 잔에 국밥 가격이라 엄마 돈으로는 절대 안 마시는 아메리카노도 함께 마시고, 쓸데없이 비싸기만 한 가방도 사드려야지.
소소한 일상들을 공유하고 미주알고주알 얘기해야지.
그림을 그리듯 가끔 삶을 멀리서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다.
목표를 위해 달리다가 숨 가쁠 때 특히 그런 것 같다.
그럴 때 나는 조금 특이하지만 가족의 죽음을 생각한다. 지금 당장 나의 죽음이 닥친다면, 희옥이, 아빠가 죽는다면 무엇을 하고픈지.
그러면 인생의 우선순위가 다시 서는 것이다.
생명력이 넘치는 숲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결코 슬프지 않았다.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금 새기며 나는 옆에 있는 희옥과 햇살을 즐기는 것이 행복했다.